한 제과제빵 경연을 바라보며
흑백요리사의 흥행에 힘입어, 제빵을 다룬 또 하나의 경연 프로그램이 제작 됬다. 아류라고 해야 할지, 연장선에 놓인 기획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다. 나에게도 작가를 통해 세 차례 정도 섭외 전화가 왔지만, 모두 정중히 고사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일정상의 문제였지만, 몇 번의 통화를 거치며 느낀 인상은 달랐다. 준비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채 급하게 밀어붙여지는 느낌과 섭외가 잘 이뤄지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 그리고 결국에는 흑백요리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수많은 출연자 중 하나로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선택지에서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얼마 전, 그 경연 프로그램이 첫 방송을 했다. 요리가 주를 이루는 방송 포맷 속에서 제과 제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나로 하여금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고, 업계의 특성상 화면 속에는 몇몇 지인들과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방송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남게 되었다.
방송 전부터, 그리고 방영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이슈들이 이어지며 비판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이 모든 혼선의 근원은 결국 제작진의 방향 설정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송이자 경연이라 하더라도, 모든 시작과 과정에는 분명한 목적과 취지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지 끝내 명확하게 읽히지 않았다.
그 혼란은 가장 먼저 심사 구조에서 드러났다. 연예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전문가의 미식적 감각은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다만 그 선택은 동시에 이 경연이 더 이상 흑백요리사와 같은 수준의 전문성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심사의 기준이 끝내 정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심사위원 누군가는 맛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심사위원은 상품성과 시장성을 논한다. 브랜딩 전문가인 심사위원의 관점에서 상품성을 평가하는 시선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기준들이 하나의 축으로 수렴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보니 참가자는 물론 시청자 역시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반복된다. 애초에 제작진은 이 경연이 상품성을 중심에 둔 것인지, 혹은 맛과 완성도에 무게를 둔 것인지부터 명확히 정리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방향성에 대한 기준을 심사위원들에게 충분히 공유하고, 하나의 언어로 합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로 짚고 싶은 지점은, 제작진의 제과 제빵에 대한 이해도다. 현재 가장 크게 회자되는 논란 중 하나는, 방송의 타이틀은 ‘제빵’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연에서는 왜 ‘제과’를 하고 있냐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용어의 혼용을 넘어,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드러난 인식의 간극처럼 보인다. 아마 제작진은 준비 과정 내내 “제과와 제빵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자문 과정에서도, 참가자 섭외 과정에서도 이 구분은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그 차이를 끝내 반영하지 않았고, 혹은 의도적으로 간과한 채 촬영을 진행한 듯한 인상을 남겼다.
제과와 제빵은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경과 공정, 기술에 민감한 작업이다. 작은 변수 하나가 결과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고, 한 번의 실수는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경연 현장의 셋팅은 단순한 공간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이해와 학습, 그리고 무엇보다 참가자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설계되었어야 한다. 그 준비의 밀도가 부족했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근본적인 한계로 느껴졌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정성이 모자랐던 것인지, 혹은 애초의 태도 문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눈에 띄는 오류들이 반복된다. 자료 화면에서는 알랭 뒤카스가 아닌 인물을 알랭 뒤카스로 표기하는가 하면, 특정 참가자의 이력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전혀 무관한 프랑스 업장의 제품 이미지를 사용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실수들은 단순한 편집 오류를 넘어, 제작 전반에 깔린 제작진의 마음가짐 온도를 드러내는 징후처럼 느껴진다.
제과 제빵은 요리에 비해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업계인이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송이 제작되는 것 자체를 환영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흥행으로 이어져 업계가 탄력을 얻어 힘들게 버텨온 자영업자들 그리고 그에 비해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던 기술자들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 프로그램이 안겨주는 실망감은 나를 더욱 복잡한 마음에 놓이게 한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끝내 흥행하길 바라는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