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7일 월요일

by 최규성

새벽 4시쯤 새벽기도가 시작되었다. 절묘하게도 유아방 스피커가 목사님의 마이크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2시간 동안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해야 했다. 잠에서 깬 건 7시쯤이었지만 일어나기 귀찮아 한참을 뒤척이다 8시 15분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열악한 세면대에서 머리까지 감으며 씻고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있으니, 동갑내기 아들이 밥을 가져다주었다. 식사를 마친 뒤 이불과 밥그릇을 반납하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교회에서 나왔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고, 전주에 계시는 아버지의 직장 후배였던 아저씨를 만나기로 했다. 솔직히 모르는 분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에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무작정 회사 위치를 가늠하며 길을 향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날씨가 덥고 걷는 것도 귀찮아져서 춘천대교 근처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아저씨가 오실 테니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지나가는 수많은 차를 멍하니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내게 물어보시더니, 검은색 SM 차량을 잘 찾아보라고 하셨다.


몇 분 정도 기다리니 번쩍이는 검은색 SM 차량 한 대가 내게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께서는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나를 맞아주셨다. 아저씨와 함께 회사 공장 사무실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내 건강과 여행에 관한 담소를 나누었다. 아저씨께서는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은 꼭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점심 식사를 제안하셨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전주 호남각이라는 식당이었다. 놀랍게도 이 식당은 내가 전주 시내를 방황하며 걸어다닐때 이미 세 번이나 지나쳤던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저씨와 남은 여행 경로에 대해 상의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아저씨는 아버지가 대단한 고집쟁이라며 예전에 참 많이도 싸우셨다며 웃으셨다. 식사를 마친 후 아저씨께서는 나를 진안으로 향하는 26번 국도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헤어지기 전, 아저씨는 여행 경비가 담긴 봉투와 귤 주스를 건네주셨다. 나는 감사히 인사를 드리고 차에서 내렸다.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5만 원이 들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안 방향으로 가는 무쏘 차량을 얻어 탈 수 있었다. 차 안에는 국립산림과학원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차에 계시던 두 분 중 한 분이 내게 가볼 곳을 미리 알아두었는지 물으셨다. 내가 미처 그러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여행하면서 어떻게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느냐며 가벼운 충고 섞인 말씀을 건네셨다.

나는 "경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미리 아는 것보다 모르던 곳을 새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더 크다"라고 내 나름의 철학을 말씀드렸지만, 아저씨는 그래도 미리 알아보는 편이 좋다며 고집하셨다.


진안으로 향하는 26번 국도는 구도로와 신도로로 나뉘어 있었다. 아저씨께서는 구도로를 택해 차를 몰으셨는데, 그 덕분에 산등성이를 굽이치며 올라가는 길을 지날 수 있었다. 예기치 않게 마주한 그 길은 정말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다.

이윽고 진안에 들어서며 차에서 내렸다. 정확히는 진안 읍내가 아니라 마이산으로 빠지는 갈림길 부근이었다. 나는 그곳에서부터 마이산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000031.JPG


그곳은 이미 소풍을 온 중학생들로 점령당한 상태였다. 잠시 쉴 겸 계단에 앉아 있는데, 근처의 한 학생이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멀미 때문이란다. 나는 아까 아저씨께 받은 귤 주스와 가지고 있던 비타민 C를 건네며 먹어보라고 했다. 이 녀석, 먹을 것만 챙겨서는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산 입구 매표소로 향했다. 매표소 직원분께 조심스레 부탁을 드리니 웃으며 그냥 들어가라고 배려해 주셨다. 마이산은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중간 지점에 도착했는데, 정상을 향한 여정치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었다. 숫마이봉 쪽에는 화엄굴이라는 작은 굴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마신 약수 한 모금에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숫마이봉은 산행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암마이봉은 오를 수 있는 듯했다.

본격적인 등반 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일지를 썼다. 그사이 아까 보았던 중학생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자 교사 한 분이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 학교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무서운 선생님의 등장에 아이들은 야유를 보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이 다시 고요해진 후에야 나는 암마이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표지판에는 분명 낙석 사고로 인한 등산 금지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밧줄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알아서 조심하라는 묵시적인 경고처럼 느껴졌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밧줄 하나에 의지해 암벽을 타야 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등반이 시작된 셈이다. 내 옆에서 함께 오르던 한 남녀 일행이 있었는데, 여성이 겁을 먹고 주저하자 남자는 위에 올라가면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내려올 때는 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농담 같은 말을 내가 순간 믿어버리고 말았다.



000028.JPG


겨우겨우 도착한 정상에는 사람들이 정성껏 쌓아 올린 돌탑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 역시 그 위에 돌 두 개를 조심스레 얹으며 무사 등반을 기념했고, 아까 그 남자분께 부탁해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잠시 숨을 돌리며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아까 아저씨께서 건네주신 봉투를 확인해 보니, 무려 5만 원이라는 큰돈이 들어 있었다. 따뜻한 호의에 마음이 벅차오르면서도, 무전여행 중에 이렇게 쉽게 돈이 모여도 괜찮은 건가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산행을 통해 다시금 절감했지만, 무거운 짐을 졌을 때는 오를 때보다 하산할 때가 훨씬 고되고 위험하다. 내려오는 길에 발이 미끄러져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부부가 다가와 산행이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연히 힘들다며, 방금 겪은 밧줄 등반의 실상을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답해드리자, 부부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다.


000035.JPG


산에서 내려와 탑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암마이봉을 오를 때 마주쳤던 커플을 다시 만난 덕분에, 돌탑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더 남길 수 있었다. 이곳 탑사의 풍경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한 개인이 어떻게 이토록 수많은 탑을 쌓아 올릴 수 있었는지 말 그대로 미스터리였다. 돌의 크기와 무게를 홀로 감당하며 이 거대한 역사를 완성했다는 사실에 깊은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탑사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요한 호수와 마주했다. 수면 위로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며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이 보였고, 그 아래로는 청거북 한 마리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롭고 볼만한 풍경이었다. 마이산은 이번 여행 중 단연 최고의 장소라 할 만했다.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에는 다람쥐를 무려 여덟 번이나 마주쳤을 정도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호수를 지나 평지로 내려오니 웬 진돗개 한 마리가 길목에 앉아 있었다. 휘파람을 불며 관심을 끌어보려 했지만, 녀석에게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내가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야 녀석은 슬며시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미동조차 없는 부동의 자세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표정이란. 녀석의 얼굴만 보고 있자니, 마치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닫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도사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이산을 벗어나 30번 국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길을 걷던 중 개천 너머에 묶여 있는 새끼 흑염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간절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녀석을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겨우 다잡으며 흑염소의 시야에서 서둘러 벗어났다.

30번 국도에 도착해 잠시 자리에 앉아 지도를 살피고 있는데, 난데없이 오토바이를 탄 두 형님이 나타났다. 두건과 선글라스, 마스크에 가죽 재킷까지 갖춰 입은 그들은 마치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탈 법한 웅장한 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부릉"거리는 위압적인 엔진 소리와 함께 멈춰선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의견 차이가 생긴 듯 고성이 오갔다. 하지만 곧 별일 아니라는 듯 옷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다시 거친 엔진음을 남기며 홀연히 사라졌다.


30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임실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임실 태워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차편 자체가 드문 데다, 어쩌다 지나가는 차들마저 나를 무시한 채 쌩쌩 지나칠 뿐이었다. 다행히 중간에 만난 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마령면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30번 국도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간혹 무쏘나 카렌스 같은 차량이 지나갔지만, 야속하게도 나를 외면한 채 멀어져 갔다.

그러던 중 마침 지나가던 경찰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운까지는 태워다 주시겠다며 선뜻 문을 열어주셨다. 경찰 아저씨는 지름길을 꿰고 계신지 국도가 아닌 샛길로 차를 모셨다. 대화 도중 경찰 한 분이 말씀하시길, 5년 전 개그맨 이혁재 씨가 국토대장정을 할 때 이 동네를 지나갔다고 한다. 당시 마을 회관에서 재워주고 통닭까지 사다 날랐던 추억을 들려주셨다.

백운면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차 싶었다. 경찰차 뒷좌석 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그제야 떠올랐다. 결국 경찰 아저씨께서 직접 밖에서 문을 열어주셨고, 나는 마치 검거된 범죄자가 된거 같은 묘한 기분으로 차에서 내렸다.


경찰차에서 내려 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까 경찰 아저씨가 선택한 길이 지름길이긴 했는지, 한참 전에 나를 지나쳐 갔던 카렌스 차량이 다시 내 앞을 지나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마주쳤던 무쏘 차량이 내 옆을 지나가다 멈춰 서더니 선뜻 나를 태워주었다. 차에 올라타자 운전하던 형은 내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길가에서 ‘임실’이라고 적힌 종이를 묵묵히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임실에 들어서니 덩그러니 서 있는 아파트 한 동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파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형은 저 아파트에 입주한 가구는 단 두 곳뿐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건설 도중 회사가 세 번이나 부도가 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교회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도록 부탁드려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있길래 목사님을 뵐 수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며 목사님이 전주에 가셨다고 답했다. 다른 분은 안 계시는지 묻자 엄마가 있다고 하기에, 아이에게 만나 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수줍게 엄마를 찾으러 갔고, 잠시 후 사모님과 함께 나타났다. 나는 사모님께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지 여쭈었으나, 마땅한 잠자리가 없다며 조금 부담스러워하셨다. 예배당이라도 상관없다는 내 말에 사모님은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예배당 위 유아방에서 자게 해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올라와 짐을 풀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한기 걱정은 없을 듯했다. 옆에 난로도 있어 정 추우면 사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내려가 씻고 올라와 짐을 정리하며 일지를 썼다. 아무래도 저녁은 주지 않으실 듯해 배고픔을 달래려 과자와 양갱을 먹으며 지도를 살폈다. 앞으로의 일정을 짜고 있는데 사모님께서 전기장판을 들고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저녁을 먹었는지 물으셨는데, 나도 모르게 원래 저녁은 안 먹는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사모님께서는 내일 아침은 꼭 집으로 건너와 같이 먹자고 말씀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서둘러 장판을 깔아 전기를 연결했다. 마지막 정리를 마친 뒤 침낭 속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화, 금 연재
이전 12화2004년 5월 16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