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의 모든 방이 예배당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 새벽도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어김없이 귀를 파고들었다. 기도가 끝난 후에도 20분이나 되는 노래가 한 시간가량 반복되었는데, 마치 여러 곡을 한 곡처럼 교묘하게 편집해 둔 듯했다.
잠을 설치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눈을 붙였다. 그런데 꿈속에서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 바로 여자친구가 생기는 꿈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아담한 체구였는데, 지금은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예뻤던 것만은 분명하다. 여행중에 별 꿈을 다 꾼다.
침낭을 정리하고 건물에서 내려와 씻고 있는데 목사님이 나오셨다. 목사님께서는 아침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5000원을 주셨고 아침을 사먹으라 하셨다. 나는 감사히 돈을 받고 인사를 드리고는 짐정리를 했다.
교회를 나와 순창으로 향하는 도로에 섰다. 운 좋게 CJ 택배 차량을 얻어탈 수 있었지만, 기사님은 순창까지 가시는 게 아니라 중간 지점인 강진까지만 가신다고 했다. 결국 강진에서 내려 다시 순창 방면으로 가는 차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지나가던 그랜저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난생처음 그랜저를 타보는 순간이었다. 운전하시던 아저씨께서는 순창에 가면 강천사와 민속마을을 꼭 들러보라고 권하셨다. 차 유리창에 붙은 정부 마크와 '도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일지 차 안에서 내내 궁금해하며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아저씨는 대학교 3학년인 아들 이야기부터 전주에 살지만 고향은 이곳 강진이라는 점, 그리고 순창 사람들이 참 착하다는 이야기까지 정겹게 들려주셨다.
순창에 도착해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도 들를 겸 근처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에 계시던 순경 형님은 내가 여행 중인 걸 대번에 알아보시고는 이것저것 친절하게 가르쳐주며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눈앞에 비데가 있었다. 난생처음 비데를 써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순창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체국 안에 마련된 인터넷 카페에서 11시 30분까지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담양과 강천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담양으로 가는 길과 강천사로 향하는 길이 나뉘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문득 강천사까지 이대로 계속 걷다가는 담양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차를 얻어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엑센트 한 대가 지나가기에 손을 흔들었고, 다행히 얻어탈 수 있었다. 차 안에는 세 명의 여성분들이 타고 있었다. 강천사로 향하는 길목마다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간간이 보였지만, 왠지 그 숫자들을 온전히 신뢰하기엔 조금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강천사 입구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자리를 잡고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 매표소 직원분께 여행 중인 사정을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부탁을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당연하다는 듯 흔쾌히 들여보내 주셨다.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걸어 들어간 끝에야 비로소 강천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경내를 소개하는 표지판을 천천히 읽어보니, 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61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라 적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화려함보다는 전체적으로 수수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오히려 나는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의 이런 절이 좋았다. 절 안에는 구경하는 관광객은 없고 스님들께서 조용히 밭일을 하고 계셨다.
절을 나서니 계곡 건너편에서 부녀회 모임을 오신 듯한 아주머니들이 한창 수건돌리기를 하고 계셨다. 특히 '뽀뽀뽀'를 열창하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강천사를 내려와 병풍폭포 앞을 지날 때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폭포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자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나를 차에 태워주셨던 여성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폭포수도 그 결에 맞춰 춤을 추듯 살랑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갈 때쯤, 너무 오래 머물면 시간이 늦어버릴 것 같아 서둘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발길을 돌리기엔 못내 아쉬워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필 그 순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별수 없이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30분 동안이나 부동자세로 기다려야 했다.
그때 마침 혼자 올라오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보였고, 나는 얼른 다가가 사진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막상 셔터가 눌러지려는 찰나, 평범한 포즈로 찍는 건 왠지 밋밋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찍고야 말았다....!
산에서 내려와 식당가를 지나칠 때쯤, 한 아주머니께서 내가 무전여행 중인 것을 알아보시고는 밥 줄 테니 쉬다 가라고 손짓하셨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입에서는 "괜찮아요"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다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내디뎠다. 속마음은 온통 밥 생각뿐이었는데 말이다.
강천사를 벗어나 다시 길을 걷던 중, 고맙게도 아까 여성분들을 다시 만났다. 덕분에 순창고추장 민속마을까지 단숨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까 담양과 강천사로 갈라지던 그 길목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들은 전주에 사는데, 담양에 들렀다가 다시 전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들과 헤어진 뒤 민속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직접 보니 마을이라기보다는 고추장 판매점 밀집 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집집마다 '6시 내고향'이니 '아침이 좋다'니 하는 방송 출연 간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모든 집에 그런 간판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제작진들이 소재가 떨어지면 이 동네에 와서 집집마다 한 바퀴씩 돌고 간 모양이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길을 떠나기 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까 목사님께서 주신 5,000원을 순수하게 '식비'로만 사용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마침 근처에 4,000원짜리 한식 뷔페가 보였다. 덕분에 간만에 밥다운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향하는 길을 택한 건, 그 도로가 정말 아름답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고 싶어 기꺼이 걷기로 했다.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14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마주했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후 13km, 12km 지점의 표지판을 차례로 지나며, 내가 1km를 걷는 데 대략 14분 정도 걸린다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한창 걷는 도중 안전벨트 단속을 하던 경찰 형님들을 지나치자, 드디어 '전라남도'를 알리는 안내 문구와 함께 말로만 듣던 가로수길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멋드러지게 뻗은 길을 사진으로 남겨보려 했지만, 간간이 가로수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음식점 간판들이 자꾸만 시야를 방해했다. 결국 완벽한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에 셔터 누르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그 길을 묵묵히 걷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로수길은 분명 멋있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소문만큼의 감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담양댐으로 향하는 길목, '맛선'이라는 음식점 앞에 멈춰 서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역시 걷는다는 건 고단한 일이다. 아니, 고단함을 넘어 지루함이 극에 달한다. 혼자 길을 헤쳐 나가는 적막함이 정점에 이를 때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차를 얻어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며 가로수 사이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옮기던 그때였다.
마침 귀엽게 생긴 누나 한 분이 차를 세우더니 광주까지 가느냐고 물어왔다. 담양까지 간다고 대답하자마자 그 누나는 고민도 없이 타라고 손짓했다. 순간 엄청난 갈등이 밀려왔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끝까지 걸어가야 할까, 아니면 기대보다 평범한 이 가로수길을 뒤로하고 편하게 담양으로 가버릴까. 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그 누나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의 의지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차에 올라탔고, 차는 담양을 향해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차에 타자마자 누나는 매실 음료와 초코바를 건네주었다. 그 따뜻한 호의 속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치열한 갈등에 빠졌다. 원래 목적지인 담양에서 내릴 것인가, 아니면 이 누나를 따라 광주까지 쭉 가버릴 것인가. 결국 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귀차니스트의 강을 건너버렸고, 염치 불구하고 누나에게 광주까지 직행해달라고 말해버렸다.
한참 잘 가고 있는데, 문득 도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광주와 담양은 오른쪽이라는 표시였다. 하지만 누나는 그대로 직진을 했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너무나 멋진 가로수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나는 이 도로가 TV 촬영지로 자주 쓰이는 유명한 곳이라며, 원래는 없어질 뻔했지만 워낙 풍경이 빼어나 드라이브 코스로 남겨두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길을 보는 순간 깊은 후회감이 밀려왔다. 차를 타지 않고 조금만 더 걸었더라면, 내 발로 직접 이 멋진 곳에 닿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길이고, 후회하기엔 늦어버렸다.
차는 그대로 광주를 향해 달렸고, 나는 월드컵 경기장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누나가 갑자기 핫도그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물어보나 마나 "예스"였다. 누나는 전남대 정문 근처 먹자골목에 차를 세웠고, 우리는 길거리 분식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떡볶이만 먹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상당히 불친절하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2,000원어치를 주문했다가 양이 많을 것 같아 1,000원어치로 바꿨더니, 접시에는 떡 두 개와 어묵 한 개뿐이었다
불친절한 떡볶이집을 나와 먹자골목 안쪽에 있는 '깨순이김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제육덮밥과 소고기김밥을 시켜 누나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니, 차가 어느 주점 입구를 막고 있었던 모양이다. 종업원이 나오자 누나는 미안한 기색으로 연신 사과의 말을 건넸다.
누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 친구 집에 잠시 들러야 한다고 했는데, 마침 그곳이 월드컵 경기장 근처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 도착해 보니 사방이 너무 어두워져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구경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에 근처 아파트 단지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헤어지기 전, 누나는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내장산에 갈 계획이라고 답하자 누나는 내장산에 가면 꼭 자전거를 빌려 타보라고 권해 주었다. 내가 "그거 공짜예요?"라고 묻자, 그제야 내가 무전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는 듯 "맞다, 맞다!" 하며 해맑게 웃으셨다.
누나와 헤어질 때, 그녀는 내 손에 10,000원을 쥐여주며 나중에 내장산에 가면 꼭 자전거를 타라고 당부했다. 연락처를 적어드리고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멀어지는 차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곧바로 근처 아파트로 들어가 경비 아저씨께 경로당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지 여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관리소장의 허락을 받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아파트 단지들도 몇 군데 더 돌아보았지만, 이미 관리사무소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결국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한 채 근처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늘 하루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일지를 써 내려갔다.
잠잘 곳을 찾아 계속 걷던 중, 문득 24시간 목욕탕 광고 카드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가격이 단돈 3,000원이었다. 마침 사우나에서 푹 쉬며 피로를 풀 타이밍이기도 했고, 여기서 이틀 정도 버텨보자는 생각에 동원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사우나를 찾아갔다. 운 좋게도 바로 어제부터 세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다. 세일 가격이라 시설이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기대 이상으로 고급스러웠다. 열탕과 온탕은 물론이고 약탕, 냉탕, 물안마 시설에 게르마늄과 천기토 맥반석 찜질방까지 갖춰져 있었다. 스파 시설도 훌륭해 여행의 피로를 녹여내기엔 그야말로 최고였다.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와 TV 드라마를 보며 오늘 하루를 기록했다. 그러고는 수면실로 들어가 깊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