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쯤, 곁에서 잠든 아저씨의 우렁찬 코골이 소리에 결국 잠이 깨고 말았다. 수건 세 장으로 겨우 몸을 덮고 자려니 감질나서 안 되겠다 싶어, 아예 침낭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밖으로 나오니 주인아저씨와 어떤 손님이 나란히 앉아 열심히 K-1 경기를 시청하고 계셨다. 시원하게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수면실로 들어가, 침낭 속으로 몸을 푹 밀어 넣고 잠을 청했다.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조금만 더 누워있자는 생각에 눈을 딱 한 번 깜빡인 것 같은데, 다시 시계를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침낭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마지막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잠이 덜 깨서인지 평소처럼 탕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당히 몸을 씻고 나와 짐을 챙기고, 차분히 앉아 어제의 일지를 써 내려갔다.
이틀간의 사우나 생활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코끝에 닿는 바깥공기가 상쾌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하니 생각보다 덤덤했다. 30분 정도를 걸어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경기장의 모든 문은 굳게 잠겨 있는 듯 보였다. 멀뚱멀뚱 서서 겉모습만 바라보다가, 이대로 포기하긴 아쉬워 어떻게든 열린 틈을 찾아보기로 했다. 경기장 주변을 한참 돌다 보니 정문과 비슷하게 생긴 곳이 나타났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들어가려는데 경비실에 있던 형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여행 중에 경기장을 구경하러 왔다고 답하자, 형님은 경기장 내부까지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만 구경하라고 일러주었다.
경기장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나니, 내부를 보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생겼다. 몰래 숨어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부탁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경비실로 향했다.
막상 경비실 앞으로 다가가니 소심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차마 바로 말을 걸지 못하고 경비실 옆에 앉아 지도를 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런데 그때, 경비 형님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저쪽 문이 열려 있으니 사진만 찍을 거라면 들어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마침 오늘 오후에 경기장에서 드라마 촬영이 예정되어 있어 문을 열어둔 모양인데, 아직 오전이라 출입을 허락해 준 듯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 안으로 발을 들이니, 이미 촬영 준비로 분주한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촬영에 방해가 될까 봐 차마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경기장을 지켜보았다. 경기장을 천천히 둘러보니 다른 월드컵 경기장들에 비해 규모가 아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통 경기장들은 관중석과 필드 사이에 난입을 막기 위한 깊은 해자 같은 틈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런 칸막이 없이 관중석과 필드가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촬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스태프들은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촬영을 이어갔다.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스태프 한 분이 다가와 내 카메라 방향이 이쪽이라며 자리를 옮겨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관중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보다 필드와 가까워진 덕분에 배우의 얼굴이 슬쩍 보이긴 했지만, 거리가 있어 누구인지까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후 또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에 이번에는 왼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나서, 드라마 촬영 현장도 한 번 찍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스태프인지 매니저인지, 혹은 뒤를 봐주는 사람인지 모를 한 남자가 나를 매섭게 째려보기 시작했다. 옆 사람과 뭐라뭐라 귓속말을 나누더니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카메라 좀 봐야겠다고 말했다.
아래로 내려가 카메라를 건네주니 그는 조금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아마 디지털카메라인 줄 알고 찍은 내용을 바로 확인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는 카메라를 돌려주며 사진을 찍으면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며 경고조로 말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골치 아프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옆에 있던 경기장 관리인까지 일반인 출입 금지라며 얼른 나가라고 재촉했다. 이미 촬영 구경에는 흥미가 싹 달아난 뒤였다.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경비실에 들러 아까 그 경비 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미련 없이 월드컵 경기장을 벗어났다.
광주를 벗어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길을 헤매고 말았다. 장성이나 정읍으로 향하려면 1번 국도나 고속도로를 타야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영광으로 빠지는 도로를 걷게 된 것이다. 그 사실도 모른 채 땡볕 아래서 세 시간이나 묵묵히 걸었다.
기운은 빠질 대로 빠졌고 배고픔까지 밀려와 더는 걷기 힘들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과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편의점을 나와 조금 더 걷다 보니 어룡동사무소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비어있던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다시 나가려다 마침 컴퓨터 한 대가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켜보았지만, 아쉽게도 인터넷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동사무소를 나와 영광 방향인 22번 국도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원래는 정읍으로 가야 했지만 이미 길을 잘못 든 상태였기에, 일단 영광 쪽으로 가다가 장성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 판단했다.
'영광, 장성 태워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차가 멈추길 기다렸다. 마침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나를 지나쳐 한참 앞에 멈추더니, 이내 후진으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영광 가는 길목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니 흔쾌히 타라고 하셨다.
차에 오르자 아저씨께서는 내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광주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사는데, 지금은 영광으로 낚시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내게 광주 인심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틀 내내 사우나에만 머무느라 광주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신 어제 만난 친절한 누님이 담양에서 광주까지 태워주고 저녁 식사에 용돈까지 챙겨주신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목적지에 도착해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려는데, 아저씨께서 물티슈와 얼음물, 그리고 2만 원을 내미셨다. 아저씨는 "무전여행의 의미는 조금 퇴색될지 몰라도 밥이라도 꼭 사 먹으라"며 굳이 돈을 쥐여주셨다. 뜻밖의 호의에 너무나 감사했다.
아저씨와 헤어진 뒤 24번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장성까지 가는 차를 다시 얻어 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도로는 적막할 정도로 차가 다니지 않았다. 어쩌다 한 대씩 지나가는 차들도 나를 무시한 채 쌩하니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다.
피로가 무겁게 짓누르는 몸을 이끌고 걷던 중, 저 멀리서 대형 화물트럭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이라는 마지막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장성까지 태워달라며 온몸으로 간절한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내 마음이 닿았는지 트럭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운전하시던 아저씨는 대화를 꽤 즐기시는 분 같았다. 차 안에서 내게 이것저것 궁금한 점들을 물으시더니, 당신도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며 특히 강원도를 추천해 주셨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일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저씨는 장성 버스터미널에 내려줄 테니, 거기서 기사님께 정중히 부탁해 정읍까지 가보라고 권하셨다. 예전에 버스를 운전하셨을 때 무전여행 하는 학생들이 기특해 자주 태워주곤 했다는 경험담도 덧붙이셨다.
장성으로 오는 길에 황룡천이라는 1급수 하천을 지나쳤다. 아저씨는 시간이 되면 여기서 낚시나 한 번 해보라며 슬쩍 말을 건네셨다. 이곳 물이 워낙 맑아 장어가 잘 잡히는데, 한 마리 잡아다 팔면 무려 20~30만 원이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이긴 해도 아예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까지 있다며 짐짓 진지하게 설명해 주셨다. 미끼로는 주로 소금에 절인 고등어나 미꾸라지를 쓴다는 구체적인 비법(?)까지 전수해 주셨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나그네에게 건넨 실없는 농담이었는지는 지금도 나만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터미널에서 아저씨와 작별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어째서인지 정읍으로 향하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쉴 겸 터미널 의자에 앉아 오늘치 일지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터미널 한구석에 놓인 인형 뽑기 기계가 눈길을 끌었다. 안에는 인형 대신 양주나 순금 같은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상품들이라 그런지, 기계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버스를 얻어타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장성IC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고속도로가 나타났고, 굳이 IC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 충동적으로 고속도로에 무단 침범을 감행했다. 국도와 고속도로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해서 국도에서 차를 잡아볼까도 했지만, 지나가는 차가 너무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트럭 한 대가 멈춰 섰고, 내장산IC까지 신세를 지게 되었다. 처음엔 정읍이 목적지라고 말했지만, 내가 내장산에 가려는 걸 아신 아저씨께서 굳이 정읍까지 갈 것 없다며 IC 근처에 바로 내려주신 것이다.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를 따라 IC까지 걸어갈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직원에게 들키면 크게 혼날 것 같아 옆에 있는 논밭 쪽으로 몸을 숨겨 넘어 들어갔다. 논길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전라도의 넉넉한 인심을 믿고 하룻밤 신세를 질 요량으로 지나가던 아주머니께 마을회관의 위치를 여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는 바로 옆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셨다.
어찌 됐든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니 교회와 주거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조심스레 집 쪽의 문을 두드리자 목사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오셨다. 하룻밤 재워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부탁을 드리니, 목사님께서는 허허 웃으시며 일단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나를 재워줄 수 있도록 확신이 서게끔 내 이야기를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나의 출생부터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 목적, 그리고 지금까지 거쳐온 도시들과 앞으로의 일정까지 상세히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신 목사님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하룻밤 묵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게다가 내일 내장산까지는 직접 차로 태워다 주시겠다는 든든한 약속까지 덧붙여 주셨다.
목사님께서 안내해 주신 방에 짐을 풀고 화장실에서 가볍게 씻고 나왔다. 밀린 빨래를 세탁기로 돌리고 싶었지만, 안에는 이미 가족분들의 세탁물이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내 손으로 직접 옷을 빨기로 했다. 사실 말이 빨래지, 평생 무언가를 직접 빨아본 적이 있어야 말이다. 대야에 물을 받아 옷을 담그고 비누로 대충 거품을 낸 뒤, 손으로 휘휘 젓다가 헹궈서 널어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교회 마당에는 어미 개 한 마리와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미는 나를 볼 때마다 경계하며 짖어댔고, 새끼들은 나만 보면 좋다고 졸졸 쫓아다녔다.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던 중 집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신 목사님은 잠시 시내에 다녀오겠다며 차를 몰고 나가셨다. 혼자 남은 시간이 지루해져 양갱 하나를 들고 개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어미 개는 나를 보자마자 짖기 시작했고, 새끼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양갱을 조금 떼어 어미 개에게 던져주니 냉큼 받아먹더니, 이내 다시 짖어댔다. 다시 한 점을 주니 또 먹고 나서 또 짖는다. 그렇게 양갱 하나를 홀랑 다 받아먹고 나서도 녀석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짖어댔다. 이 녀석이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책을 읽는데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집 안의 문을 단단히 단속하고, 밖에 걸어두었던 빨래도 서둘러 걷어 들였다. 밤 8시 30분쯤 사모님이 귀가하셨다. 사모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김밥을 내어주시며 모자라면 라면도 끓여 먹으라며 정을 베푸셨다. 김밥을 다 먹고 그릇을 치우려 하자, 사모님께서 라면을 직접 끓여주시려 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여행자 스스로 편하게 끓여 먹게 놔두라며 웃으셨다. 내가 직접 라면을 끓이는 동안 사모님은 밥이 없어 어쩌느냐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그러고는 김치와 고기 장조림을 반찬으로 챙겨주셨고, 심지어 덜 마른 내 빨랫감들을 드라이기로 일일이 손수 말려주시기까지 했다. 방까지 깨끗이 닦아 이불을 펴주시는 따뜻한 배려에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드렸다.
자기 전, 아늑한 방 안에서 책을 좀 더 읽다가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