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1일 금요일

by 최규성

잠에서 깨어나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9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서둘러 일어나 이불을 개고 씻은 뒤 밖으로 나서니, 새벽녘 내린 비에 산과 나무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선호하는 공기다.

내가 나타나자 어미 개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짖어댔다. 대문 밖 철길 너머로 보이는 입암산과 내장산의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함이 느껴졌다. 다시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개가 또 한 번 짖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번에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짖어댄다. 내가 쓰다듬어 줄 듯한 액션을 취하자, 녀석은 은근히 손길을 바라는 눈치면서도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개줄이 작은 기둥에 엉켜 있어 녀석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무척 좁아 보였다. 엉킨 줄을 풀어주자 그제야 짖음을 멈춘다. 그 곁에서 새끼 강아지들은 어미의 젖을 물고 놓아줄 줄을 몰랐다. 새끼 한 마리를 들어 살짝 높은 난간에 올려두었는데, 아래로 내려오려던 녀석이 그만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울 정도의 타격이었다. 새끼는 '깨갱' 소리를 내며 울더니, 이내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어 다시 젖을 물고서야 조용해졌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던 중, 사모님께서 들어오시며 우유를 한 잔 건네주셨다. 곧이어 밥상까지 차려주셨, 식사 후 끓여주신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강아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집 옆으로 걸어가 보니 미처 몰랐던 개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사모님 말씀으로는 방금 본 어미개의 어미라고 하셨다. 수컷은 어디 갔냐고 여쭈었더니, '맨날 그 짓만 해서' 팔아버렸다고 한다.


사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목사님께서 내장산 입구 매표소까지 차로 배웅해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목사님과 헤어진 나는 매표소로 향했다. 관리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사정을 설명하며 입장을 부탁드렸으나, 돌아온 것은 2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불쾌함인지 어이없음인지 모를 그 묘한 기색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적막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찰나, 그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성남에서 왔다고 답하자, 그는 "좋은 구경 하세요"라는 말을 툭 내뱉으며 나를 들여보내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안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마지막 그 한마디조차 묘하게 불쾌한 여운을 남겼다.


목사님께서는 일주문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서래봉과 불출봉을 거쳐 내장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해 주셨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일주문을 지나쳐 곧장 내장사까지 발걸음이 닿았다. 막상 마주한 내장사는 기대만큼의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6.25 전쟁 당시 소실된 후 복원된 건물들이라 그런지, 고즈넉한 세월의 깊이보다는 새것의 생경함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내장사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평일인 데다 새벽에 내린 비 때문인지 산행객은 커녕 기척조차 드물었다. 적막 속을 오르다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게 되어 뜻하지 않게 불출봉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산을 오르던 중 아주머니께서 "어디서 오셨수까?"라고 내게 물어오셨다. 투박한 말투에 배어 있는 제주도 사투리가 반가워 조심스레 여쭈니, 예전에 제주에 사셨노라 답하신다.


드디어 도착한 불출봉. 이곳이 정상인 줄 알았건만, 아쉽게도 진짜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산 아래를 굽어보며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남겼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리며 짧은 휴식을 마친 뒤, 다시 서래봉 방향으로 발을 뗐다.


산을 오르는 사이 준비한 물을 다 마셔버려 갈증이 심하던 차에,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아주 작은 약수터를 발견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물통을 채우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보니 '서래약수(西來藥水)'라고 적혀 있었다.

서래봉으로 향하던 중 마주친 한 젊은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면 나갈 수 있느냐고 묻기에, 표지판에서 본 대로 서래매표소 방향이라고 일러주었다.

다시 길을 잡고 산을 오르다 보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런 곳에서 호랑이라도 마주쳐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언론에 제보한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었다. 홀로 산행을 하다 보면 이토록 묘한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덧 도착한 서래봉에는 작은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꼭대기에 작은 돌 두 개를 더 얹어놓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000042.JPG 서래봉에서


절벽 난간에 서서 두성 바이브레이션을 섞어 '야호'하고 호기롭게 외치고도 싶었지만, 대신 '아~'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 뒤 하산을 시작했다.

내장산 등산 중 나를 가장 성가시게 했던 것은 거미줄과 파리 떼였다. 거미줄은 한동안 이 등산로를 이용한 사람이 없다는 증거였고, 파리들은 주로 정상 부근에 몰려 있었다. 힘들게 올라와 쉬려 하면 똥파리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드는 통에, 휴식도 포기하고 서둘러 내려오게 되었다.

산에서 내려와 벽련암과 일주문을 지나 계곡 앞 벤치에 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일지를 써 내려갔다. 이번 등산을 통해 왜 내장산이 가을 단풍으로 그토록 유명한지 깨닫게 되었다. 산 전체가 온통 단풍나무과 나무들로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000044.JPG 내장산


매표소를 지나 식당가를 거쳐 한참을 걸었다. 도로표지판에서 정읍 방향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히치하이킹을 준비했다. 목적지를 적은 종이 카드를 들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서 있자, 이내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 안에는 직장인 혹은 동네 아저씨로 보이는 두 분이 타고 계셨는데, 한 분은 대시보드 위로 다리를 올린 채 무척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계셨다. 원래는 정읍까지 가기로 했으나, 김제를 거쳐 전주로 가신다기에 정읍을 지나 적당한 중간 지점에 내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저씨들은 내 여행 이야기를 묻더니, 혼자 다니는 게 걱정되셨는지 "지나가는 여자들이 잡아먹으면 어떡하냐"는 농담 섞인 걱정을 건네기도 하셨다.

태인에서 내린 나는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카드를 들었다. 마침 트럭 두 대가 연달아 지나갔는데, 앞차는 안 간다는 손짓을 하며 지나쳤지만 뒤따르던 트럭은 얼른 타라며 손짓을 보내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저씨는 앞 트럭을 놓치면 안 된다며 엄청난 속도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불륜 현장을 덮치러 가는 스릴 넘치는 상황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모래를 푸러 가는 길이라 하셨다. 부안까지 가는 줄 알았으나 백산까지만 가신다기에 지도를 확인해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백산에서 내리자마자 운 좋게 부안 방향 승용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차 안에는 '왁스'의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운전하던 형님은 원래 부안읍까지 가려 했으나 내가 변산으로 간다는 말에 일부러 변산 방면 도로까지 태워다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나는 다시 변산 방향 카드를 든 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늦어서인지 지나가는 차를 마주하기조차 쉽지 않았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차들도 나를 태워주려 멈춰 서지 않았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길을 걸으며 차를 잡던 중, 운 좋게 커플 한 쌍이 탄 승용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를 둔 부부였다. 이들은 변산이 처음이라 내 목적지인 새만금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른다고 하셨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나의 여행으로 이어졌고, 부부는 홀로 길을 나선 내게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마침 가고자 했던 새만금 장승 부지가 시야에 들어와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드렸다. 지형이 낯설었던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나는 목적지에 발을 내디뎠다.

이곳은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며 사업 중단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장승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때마침 일몰 시간과 겹쳐 카메라를 들고 낙조를 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장승들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촬영 중이던 분들께 부탁해 내 모습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000048.JPG 새만금에서


장승 너머 갯벌로 내려가니 모래 대신 굴껍질이 온통 바닥을 덮고 있었다. 장승마다 새겨진 간척 사업 반대 문구들을 읽으며 드넓게 펼쳐진 새만금 갯벌을 바라보자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시선은 자연스레 발아래로 향했다. 갯벌 위에는 게들이 사는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백, 수천 개의 생명의 흔적이 점을 찍듯 흩어져 있었다. 간척 사업이 강행되면 이 수많은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건 정말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몸을 감추자 주위가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더 어두워지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아 서둘러 차를 잡기로 했다. 새만금 근처에도 마을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번화한 변산 쪽으로 나가는 편이 잠자리를 구하기에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시간이 늦어 지나는 차가 거의 없었으나, 다행히 운 좋게도 하얀색 쏘렌토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 올라 운전하던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처가에 상을 당해 급히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시선을 창문 밖으로 옮겼고, 초점이 흐려짐에 따라 고개도 슬며시 뒤로 젖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늘한 기분에 뒤를 돌아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웬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저씨와 단둘이 차에 타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터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오늘 묵을 곳을 걱정하자, 아주머니께서는 선뜻 재워주고 싶지만 하필 오늘 상을 당해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라 어렵겠다며 미안해하셨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스치는 아쉬운 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아파트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든 잘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이자, 변산에 아파트가 딱 한 군데 있다며 길을 일러주셨다. 변산에 도착해 부부와 작별 인사를 나눈 나는, 일단 아파트보다는 근처 교회를 먼저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근처에 교회가 보였지만, 순간 갈등이 밀려왔다. 정확히는 망설임이었다. 늘 겪는 일임에도 사람과 대면하는 순간보다, 대면하기 직전의 찰나가 훨씬 더 떨리고 겁이 난다. 교회 건물 안쪽으로 희미한 불빛이 비쳤으나 정작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합리화했고, 그 핑계 뒤로 나의 창피함을 숨긴 채 서둘러 교회를 벗어났다. 스스로가 참 약해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하룻밤을 청하기로 마음먹고,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오늘은 웬지 밥을 꼭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침 자장면집 두 군데가 눈에 띄었다. 다른 음식점들은 혼자 들어가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한 곳은 오랜 전통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집이었고, 다른 한 곳은 전통도 없고 인테리어도 허름해 보였다. 다만 그곳에서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순간 잘하면 저 가족적인 분위기를 틈타 하루 신세를 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토록 치사하고 약해 빠진 놈이다.


어쨌든 허름한 자장면집에 들어가 3,500원짜리 곱배기를 주문했지만, 가족 단위의 손님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장면이 나왔는데 양은 상당히 많았다. 한마디로 양으로 승부하는 식당이었다. 괜히 거금만 들여 배만 채웠다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식당에서 나와 같은 건물에 있던 화장실에서 씻은 뒤 아파트로 향했다. 변산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아파트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동짜리 건물에, 십자 모양의 구조였으며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아파트로 올라가 보니 제법 빈집들이 있어 보였다. 혹시 집 안으로 들어가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어쨌든 옥상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놓았으나 맨바닥에서 자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짐만 두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쓰레기 분리수거함 근처에서 빈 박스 두 개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왔다. 박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덮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일지를 쓰고 나니 어느덧 밤 10시 12분이었다. 책이라도 좀 읽다 잠들 계획이었으나, 밀려오는 피로에 그만 곧장 잠이 들어버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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