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6일 일요일

by 최규성

밤에는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옥상이 새벽이 되자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됐다. 신문지를 깔고 잤는데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마치 뼈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8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짐을 대충 정리한 뒤, 어제 먹다 남은 토마토를 꺼내 아침 대신으로 간단히 먹었다.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14층에서 문이 열리더니 여자아이가 하나 탔다. 순간 괜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 말 없이 같이 내려가다 보니 1층에 도착했는데, 그 아이가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내리라고 말을 해주고 나서야 나는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어제 씻었던 상가 건물 화장실로 가봤다. 그런데 아직 문이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다른 화장실을 이용한 뒤, 유성 IC 쪽으로 향했다. 유성 IC는 대전 월드컵경기장 바로 앞에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로 주변이 꽤 붐볐다.

나는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잠깐 일지를 쓰다가, 종이에 ‘전주까지 태워주세요’라고 적어 들고 서 있었다. 그런데 서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화물트럭 한 대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트럭에는 화학 염산을 싣고 있었다. 그것도 순도 98%짜리였다. 운전하던 형 말로는 몸에 닿으면 그대로 녹아버릴 정도라고 했다. 괜히 조금 섬뜩해졌다.

그래도 차 안에서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운전하는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전주로 향했다. 여행 이야기, 낚시 이야기, 히치하이킹 이야기까지 주제가 계속 바뀌었다. 형은 전국 도로지도를 가져가라고 권했지만, 짐이 무거워질 것 같아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나중에 연락하면 또 차를 태워주겠다며 명함을 하나 건네주셨다. 괜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전주에 도착한 뒤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중간에 송천역 근처에서 한 번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길을 잡았다. 햇살은 따끔따끔할 정도로 뜨거웠고, 배도 슬슬 고파졌다. 결국 도로 중턱에 잠시 앉아 쉬고 있었다. 차를 잡아볼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봉고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기에 월드컵경기장까지 간다고 하자 타라고 하셨다. 차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저씨도 대학생 때 무전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한겨울에 했다고 한다. 왜 하필 겨울이었냐고 물었더니, 그냥 제대로 한번 고생해 보고 싶어서였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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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 도착해 월드컵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안으로도 잠깐 들어가 보았는데, 마침 남자 두 분이 들어오시기에 사진을 부탁드릴 수 있었다. 덕분에 사진을 몇 장 남길 수 있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일지를 조금 더 썼다. 그러다 아부지께 전화를 했다.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전주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살던 집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문제는 정확한 주소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부지께 전화를 걸어 대략적인 위치라도 물어봤고, 그 설명을 토대로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걷는 게 귀찮았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버스정류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배도 고파서 가방에 있던 양갱이라도 꺼내 먹을까 하던 참이었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추더니 전주대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여행 중이라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혹시 조금 태워주실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방향을 모르면 곤란하다며 난처해하셨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던 지도를 잠깐 확인하시더니 종합경기장 근처까지는 가는 길이라며 태워주셨다.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보려고 기억을 더듬으며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길이 많이 바뀌어 있어 위치조차 제대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헤매다 결국 집 찾는 건 포기하고, 대신 예전에 다녔던 금암초등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학교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워낙 오래전 기억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학교 건물이 보이자 묘하게 기억들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여기저기 조금씩 바뀐 곳도 있었지만 건물 자체는 거의 그대로였다.

근처 벤치에 앉아 잠깐 쉬려고 했는데, 어떤 여자가 근처 동상을 발로 툭툭 차고 나무를 툭툭 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괜히 옆에 있기 불안해서 자리를 슬쩍 옮겼다. 학교 안에는 부설 유치원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다녔던 곳이 바로 그 유치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억력이 제법 괜찮은 편이다. 유치원 건물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내부는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신 그 앞에 있던 초등학교 건물을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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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묘하게 추억이 올라왔다. 한동안 학교 건물을 사진으로 몇 장 찍은 뒤 교문을 나왔다. 이번에는 학교를 기준으로 다시 예전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막상 다시 길을 잡고 걸어가 보니, 길은 새로 포장되고 모양도 조금 달라졌지만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국 변한 건 길뿐이었고, 동네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셈이다. 집 주변도 천천히 둘러보고, 예전에 친구가 살던 집 쪽도 가봤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집 건물 사진을 몇 장 찍고 이제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차 한 대가 집 앞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내가 예전에 살던 시절 2층에 살던 가족이었다. 혹시나 싶어 말을 걸어봤지만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눈치였다. 내가 예전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며 설명하자 그제야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결국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끝내 기억을 못 한 채로 그냥 올라가 버렸고, 나는 잠깐 기다려 봤지만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나도 더 머물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오늘 저녁 7시에 전북과 울산의 경기가 있다는 걸 알고 다시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걷는 게 너무 귀찮았다. 게다가 거리도 제법 되는 편이라 결국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마침 정지선 앞에 멈춰 있던 차 한 대가 보여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께 경기장 근처까지 태워줄 수 있겠냐고 부탁드렸더니, 경기장 바로 앞까지는 아니지만 근처까지는 간다며 흔쾌히 태워주셨다. 덕분에 감사히 차를 탈 수 있었다. 차는 경기장 근처 아파트 앞에서 멈췄다. 인사를 드리고 차에서 내린 뒤 다시 경기장 쪽으로 걸어갔다. 앞쪽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재잘거리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경기장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차 안에 있던 부부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힘내라며 오이와 칙촉, 그리고 야채 크래커를 건네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간식이었다. 나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경기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를 관람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매표소 앞을 서성이며 표를 구매하는 분들께 조금씩 잔돈을 보태 받은 덕분에 마침내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과정은 상당히 고되었다. '이상한 놈' 취급을 받기도 했고(사실 부정할 순 없지만), 대놓고 무시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다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입장 전 경품이 냉장고라는 설문조사가 있길래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 그때 연락처를 적어준 게 화근이었을까.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전북 경기 때마다 문자가 날라와 꽤나 애를 먹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잠시 화장실에 들러 오이를 깨끗이 씻었다. 자리에 앉아 초고추장을 듬뿍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내가 앉은 곳은 전북 측 2등석. 아무래도 울산 쪽에 앉는 것보다는 신변 보호(?)에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될 즈음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 정말 부러웠다. 날씨마저 점점 쌀쌀해지니 따끈한 라면 국물 한 모금이 간절해졌다. 일단은 오이로 버텨보기로 했다.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가 사 먹으리라 다짐하며.


생각보다 관중석은 인파로 북적였다. 전북 측 2등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1등석도 제법 자리가 차 있었다. 물론 빈틈없이 꽉 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국민의례가 시작되자 모두가 일어섰고, 나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몸을 일으켰다. 경기 시작 전 팬 서비스로 공을 날려주는 순서가 지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울산이 선제골을 터뜨렸다. 내심 전북을 응원하고 싶었지만, 마음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나 보다. 울산의 골이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야!"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필이면 전북 응원단 한복판에 앉아 있는 처지였는데도 말이다. 골이 나왔음에도 경기장 안은 울산 서포터즈를 제외하곤 묘하게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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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반 종료 2분을 남기고 전북이 동점 골을 넣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그 순간 폭죽이 터지고 전광판에는 환호 문구가 도배되었으며, 관중석의 함성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역시 홈팀다운 화끈한 대우였다. 전반이 끝나자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지만, 간절했던 라면은 결국 포기했다. 전반 종료와 동시에 시작된 사람들의 엄청난 대이동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반전은 전북이 주도권을 잡고 몰아붙였으나, 최종 결과는 2대 1 울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장을 나와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몰래 하룻밤 지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한 마음에 무단횡단까지 하며 아파트로 향하던 중, 마침 멀리서 십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간절한 마음에 교회 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하룻밤을 부탁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목사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서둘러 몸을 씻고 유아방에 짐을 풀었다. 그때 사모님께서 오시더니 식사는 했는지, 덮고 잘 이불은 있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잠시 후, 목사님 아드님이 내려와 따뜻한 밥과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나와 동갑내기인 듯 보였는데, 혼자 여행하는 내가 부럽다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식사를 마치자 목사님께서 들어오셔서 약 한 시간 동안 '영접'을 권유하기 시작하셨다.


정중히, 그러나 끝까지 사양하고 나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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