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 주방에서 버터, 달걀, 우유 그리고 설탕은 성역과도 같다. 특히 프랑스 제과의 역사는 곧 동물성 지방과 설탕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고지식한 미식의 중심인 프랑스에서 그리고 전 세계 제과 씬에서는 이 견고했던 성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비건 파티세리'의 등장이다.
비건의 시작은 소비자의 건강과 체질적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개념은 더욱 확대되어, 체질과 상관없이 종교적 이유나 개인의 신념에 따른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사람의 기술인으로서 초창기 비건 제과를 마주했을 때는 흥미롭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무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무시하고 간과하기에 그 시장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졌다.
그렇다고 그 영역에 손을 뻗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이유는 말 그대로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제과와 제빵은 흔히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내가 경험한 제과는 화학에 가깝고 제빵은 생물학에 가깝다. 제빵은 살아 숨 쉬는 효모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승부이며, 제과는 각 재료의 화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승부이기 때문이다. 제과 셰프의 관점에서 비건으로의 전향은 동물성 재료를 식물성으로 치환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정립된 화학적 설계도를 통째로 다시 그리는 일이다. 비건 파티세리는 동물성 재료로 완성된 이 '완벽한 퍼즐'을 식물성 재료만으로 처음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사실 이 단계에서 이미 어지간한 기술인은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현재 대다수의 제과 기술자들은 수백 년간 정립된 화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반복적인 수련을 해왔을 뿐, 동물성 재료의 화학적 기능을 식물성 성분으로 치환하여 적용하는 것은 연구원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비용적인 문제다. 동물성 재료를 대체하기 위한 식물성 재료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버터나 생크림보다 훨씬 고가인 경우가 많다. 기본 재료인 우유를 대신할 두유만 해도 이미 배 이상 비싸며, 버터를 치환하기 위한 코코넛 오일이나 카카오 버터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고스란히 원가 관리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클래식한 프랑스 제과의 원가율도 결코 낮지 않은 상황에서, 생소한 대체 식재료들의 수급 불안정성과 높은 단가는 경영 효율성을 중시하는 운영자에게 커다란 진입 장벽이 된다.
마지막 이유는 비건 제과에 대한 미식적 거부감이다. 셰프라는 타이틀로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맛은 항상 최우선으로 지향하는 지점이다. 버터가 주는 그 깊고 진한 풍미와 달걀이 완성하는 부드러운 유화의 질감을 과연 식물성이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슬프게도 아직까지 그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 기술적 구현과 비용적 부담을 모두 극복하더라도, 마지막 순간 고객에게 '비건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다'가 아니라 '비건이라서 더 맛있다'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영역에 섣불리 손을 뻗는 것은 기술자로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사실 비건 제과를 향한 나의 주저함은 단순한 고집이나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다. 기술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건의 영역은 오히려 대단히 흥미로운 실험실과 같다.
하지만 기술적 흥미가 반드시 미식적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과에서 유제품의 존재는 단순한 유화나 팽창 같은 기능적 역할을 넘어, 맛의 본질적인 지분을 장악하고 있다. 버터의 지방이 혀 위에서 녹아내리며 전달하는 풍미의 폭발력, 그리고 우유 단백질이 가열되며 만들어내는 마야르 반응의 그 깊은 감칠맛은 식물성 유지나 곡물 음료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결국 내가 비건 파티세리에 선뜻 손을 뻗지 못하는 것은, 기술적 구현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미식적 감동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수많은 비건 디저트들은 '건강한 대안'이 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클래식한 프랑스 제과가 선사하는 그 압도적인 맛의 충족감을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나에게 제과란 그 결과물이 반드시 '맛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충족해야 하는 일이다. 식물성 재료가 주는 기능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동물성 지방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미식적 쾌락을 줄 수 있는 지점.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술적 확신과 맛의 증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비건이라는 시도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