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지된 삶, 출발을 준비하다

by 최규성

중학교 2학년의 봄, 나는 백혈병에 걸렸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내 삶의 흐름은 그 순간 모두 정지된 듯했다. 그날 나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고, 학교는 자퇴했다. 몇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나는 생활 반경이 극도로 제한된 채, 병실과 집을 오가는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억압된 삶 속에서, 마치 분출처럼 무전여행에 대한 막연한 꿈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움직일 수 없던 시간들이, 오히려 언젠가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놓고 있었다.


검정고시를 통해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멈춰 있던 학창 시절이 다시 이어졌다. 고3이 되었을 무렵, 나는 대학 진학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아직 무엇을 할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맞는 일을 먼저 찾아보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지원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되었다.


결정이 내려지고 나니, 새로운 장소에서의 시작을 앞두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내 기억 속의 주머니에서, 무전여행이라는 단어 다시 끄집어내었다. 병실에서 막연히 그려보던 상상이, 이제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준비하기보다, 가진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길 위에 서는 것. 정해진 계획보다, 그날의 상황에 몸을 맡기는 방식. 그것은 여행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시험해 보는 일이기도 했다.


큰 틀은 정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월드컵 경기장을 가보는 걸로. 온 국민이 열기에 휩싸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집에서 티비으로만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길거리에서조차 현장의 공기를 직접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늦었지만, 화면 너머가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고속도로 교통 책자를 지도 삼아.


2004년 5월. 그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