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는 날고, 나는 얻어 탔다
아침 7시쯤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했다.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목사님은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며, 목사님께 감사 인사를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방 옆주머니에서 초콜릿이 눈에 띄어 아이에게 주려 했더니, 아이는 부끄러운지 도망쳐 버렸다. 할머니께 초콜릿을 전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수덕사 방향 45번 국도로 길을 나섰다.
산을 넘는 도로라 제법 힘이 들었다. 산과 도로가 어우러진 지점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다. 공사 중인 도로가 조금 아쉬웠지만, 봉긋한 산과 그 푸르름이 비친 수면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걷다 보니 어디선가 오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수지에서 헤엄치던 오리가 갑자기 푸드덕 날아올랐다. 순간 ‘오리 날다’라는 노래가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한서대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 대학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고 다시 걷자, 송덕암이라는 전통 사찰이 보였다. 사찰에 들어서자 오른쪽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종 옆에 앉아 쉬며 일기를 썼다. 심심해서 다가가자 다시 으르렁. 잠시 눈싸움을 벌였고, 개는 결국 자기 집으로 물러났다. 그때 차 한 대가 들어오며 아주머니와 아이가 내렸다. 아주머니는 내 가방의 ‘무전여행중’ 문구를 보고 관심을 보이시며 라면을 주겠다고 하셨다. 짐이 될 것 같아 사양하고, 대신 아이에게 비타민 C를 건넸다.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에 올랐다.
걷고 있는데, 한 차가 멈추더니 아저씨가 내려 사진기를 꺼냈다. 내 뒤로 가서 걷는 모습을 찍으셨다. 차 안에는 사모님과 귀여운 딸아이가 타고 있었다. 응원의 의미라며 사탕을 건네주셨다. 뜻밖의 ‘모델료’였다.
조금 더 걷자, 아까 지나쳤던 차가 다시 돌아왔다. 수덕사까지 간다고 하자 태워 주겠다고 했다. 그분은 내가 부럽다며, 자신은 용기가 없어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힘들 때 연락하라며 명함과 만 원, 동전 몇 개, 캔커피까지 챙겨주셨다.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수덕사로 들어갔다.
입구 화장실에서 잠시 쉬며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다, 입장료 2,000원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앉아 있는데, 나이 든 부부가 내 사정을 듣고 관리인에게 대신 말을 전해 주셨다. 내가 직접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어쨌든 들어가라는 말에 입장했고, 안에서 아까 사진을 찍어 주셨던 가족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의자 쪽에 앉아 쉬려는데,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러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어느새 수십 명이 개 주위로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고 떠들어도 개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 태연함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관리인은 대웅전이 700년 되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고, 나는 결국 그 유명한 개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산중턱에 정자가 보이길래 무작정 올라갔다가, 등산로로 이어져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 버렸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왔는데, 짐 때문인지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하고 힘들었다.
수덕사를 나와 홍성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주차관리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길로 쭉 내려가서 사거리 나오면 우회전하면 돼.”
“우회전이요?”
“그래, 우회전. 서울 사람들은 길 잘 안 가르쳐주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잘 가르쳐줘.”
사거리에 도착해 보니, 표지판은 좌회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바닥이 뻐근해 더는 걷기 힘들어, 차를 얻어 타고 홍성까지 이동했다. 잘 곳을 찾던 중 ‘홍성기능대학’이 눈에 들어왔다. 배가 고파 대학 식당으로 들어가 아주머니께 말했다.
“밥 한 끼 주시면, 설거지든 뭐든 다 도와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밥통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퍼서 드세요.”
국까지 떠주셔서 든든하게 먹었다.
설거지를 돕겠다고 하자, 괜찮다며 기숙사로 가서 사감선생님께 잘 곳을 부탁해 보라고 하셨다.
기숙사에 가자,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달라고 하셔서, 나는 길 위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사감선생님은 맞장구를 치며, 젊었을 때 춘천에서 홍천까지 걸어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번 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고도 하셨다. 그날 밤은 직원이 쓰는 침대에서 잘 수 있게 해 주셨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나오니, 사감선생님은 영화를 보고 계셨다. 나도 잠시 함께 보다가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자, 간단한 술과 안주를 꺼내 오셨다. 나는 술을 잘 못한다고 말했지만, 분위기에 맞춰 조금만 마시고 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은, 길 위의 또 다른 하루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