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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May 02. 2024

소문난 여자, 막달라 마리아

성서의 인물들 가운데 이름난 여성은 그리 많지 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등장하는 여성은 한결같이 빼어난 여성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 여럿이 등장한다.  

   

  신약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리아 가운데서,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하면, 단연 막달라 마리아가 돋보인다. 그는 그의 고향인 막달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소문난 여자로 알려진 것과 고향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인습적이기는 하지만 그 고장을 특별히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막달라는 오늘의 메즈델에 해당되는 곳이다. 예수가 펼친 갈릴리 선교의 한 거점인 가버나움에서 서쪽으로 약 십리 떨어진 해변가에 위치한다. 상업적으로 번창하여 부촌이었던 만큼 도덕적으로는 좀 문란했던 모양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마리아가 소문난 여자로 등장한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 복음서에 그에 대한 다양한 묘사가 있다. 먼저 ‘죄인’(눅 7:37)으로 설명되는 이 여인은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눅 8:2) 여자로 묘사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먼저 가치관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높이(CE⁴-Level=See-Level), 곧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과 배경에는 문화(Culture), 교육(Education), 경험(Experience), 환경(Environment), 그리고 기대(Expectation)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맹모삼천설을 상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부유하나 부도덕한 고장에서 자라난 것을 간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른바 대처에서 자라나고, 부도덕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부도덕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막달라 출신 마리아의 성격 형성 과정을 살펴  보게 된다.     


  4 복음서에 고르게 소개된 것만으로도 이 여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소문난 여자로 등장한 데서 시작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맨 먼저 만났고 또 제일 처음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첫 번째 증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드러낸 단면들을 통틀어 생각하자면 그가 건강하지 못하였을 때나 건강할 때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드러낸 특징은 남에게 잘 주고 잘 돌보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성격이라 할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2번 유형은 먼저 ‘주는 사람’, ‘돕는 사람’, ‘돌보는 사람’으로 성격의 특징이나 성향이 묘사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필요는 기피하면서 ‘나 몰라라’ 하고 사는데 비하여, 남의 필요는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자기의 손길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쭉 늘어선 것처럼 보이듯이 봉사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2번 유형이 빠지는 함정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유’라고 할 것이다.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자유에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성향에다 야심과 함께 허영에 들뜨기 쉬운 성향인데다 ‘궁핍’을 기피하려 한다. 따라서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소문난 여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기 쉽다.       


2. 섬기는 여인막달라 마리아     

  남에게 잘 주고 잘 돌보는 2번 유형은 만 여섯 살 전후하여 아버지와 애증이 엇갈린 상태에서 자란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줄은 알겠는데 왠지 편하게 사랑을 받아들일 수 만은 없다. 아버지가 싫지는 않으면서도 그리 편하지 만은 않다. 자연히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대하여 어린 마음에도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아버지 또는 아버지 같은 인물과 애증이 엇갈린 상태로 동일시하며 자란 어린이는 아버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열심히 찾으며 그것을 채워줌으로써 보상하려는 심리가 발달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며 봉사하는 특징이 강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이런 성향이 나타난다.

  ‘죄인’이라 묘사된 막달라 마리아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당시의 ‘죄인’이라는 사람들은 소외된, 밀려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까지 여기에 다 포함되었다. 


전통적으로 창녀로 이해되었던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물질적으로 궁핍한 것을 기피하려고 애썼을 가능성이나 아니면 허영에 들떠서 쾌락을 좇다가 그만 소문난 여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에게서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사실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적잖은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치유하여 건강을 회복한 마리아는 예전의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죄인’이었을지라도 그는 사람들의 관습이나 상상을 뛰어 넘어서 섬김의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섬길 줄 아는 사람의 전형을 보인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으로도 잘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는 필요에 따라서 큰마음 먹고 주기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계산하는 것을 훌쩍 뛰어 넘는다. ‘향유가 담긴 옥합’(눅 7:37)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눅 7:38)고 누가는 상세히 기록한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보다 더 극적이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막14:3)고 기록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서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막 14:4-5)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점을 생각할 때,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허비한다고 화를 낼만큼 엄청나게 값진 향유는 한 노동자가 일 년 내내 벌어서 먹지도 쓰지도 않고 모아야 할 돈이 들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토록 값진 향유를 흔쾌하게 예수께 바치며 헌신적인 봉사를 한 것에서 에니어그램 2번의 특유성이 돋보인다.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앞서 언급한 불평을 대표로 발언한 것(요 12:4-5)과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요 14:7-8)                  

3. 사심 없는 봉사자막달라 마리아     

  성격 유형이 어떻든지, 누구나 건강하면 성자 같고 천사 같이 된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자신의 성격과 격정 때문에 정신 상태가 건전하지 못하였고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타락하였고, 소문난 여자로 창녀 생활까지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곱 귀신이 떠나가게’ 해 준 이후로, 에니어그램으로 말하자면, 격정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그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다. 누구나 격정에 사로잡히면 불건강해지기 마련이고, 자신의 단점을 여지없이 드러낼 뿐 아니라, 평소에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감추려고 애쓰던 추한 모습, 부끄러운 단면을 몽땅 드러내고 만다. 


  이와 대조적으로 격정을 꽉 붙잡으면 자신의 장점과 아름다운 덕목을 나타낸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절 첫새벽에 무덤에 갔던 일을 떠올리고 보면, 그가 사심 없는 봉사자로서 특징을 잘 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남에게 잘 주며 보살피면서도, 격정이 자랑으로 잘 나타난다. 그러나 건강해져서 ‘하나님의 은총을 함께 나누었다’ 하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멈추거나 포기하기 때문에 겸손해진다.


  2번 유형이 이처럼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며 오로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때, 그는 스스로 겸허하게 사심 없는 봉사자가 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절 새벽에 무덤에 달려갈 때 그는 자신의 안전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시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요 20:19)과는 대조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이 묻히신 무덤으로 달려갔다.


  2번 유형은 정신 건강이 평균 상태를 유지할 때에도 남에게 친밀하면서도 소유욕이 강하게 작용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마치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느끼며 산다. 감정 표현을 해도 거창하게 잘 하고, 남이 듣기 좋은 말을 하려는 성향 때문에 아부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은 항상 지나치게 선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버거워할 정도로 제안을 잘 한다. 그리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편한 심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통합의 방향으로 이행하면서 건강해지면,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을 키워주는 협조자가 된다. 사랑 받기 위하여 남을 돕고 주던 것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해방된다. 자신은 있는 그대로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고,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도움을 준다.


  2번 유형이 스스로 격정을 다루는 상태에 이르면, 사랑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던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자기가 남에게 주든 안 주든, 돌보든 안 돌보든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된다. 다만 자기 스스로의 필요나 욕구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며 대처할 뿐 아니라, 남의 필요를 간파하거나 감지하게 되었을 때, 편한 마음으로 소박하게 돌보는 사람이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될 때,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스스로 건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며, ‘나는 돌보는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이입이 잘 되고, 공감하기를 잘 한다. 2번 유형이 건강해지면 4번 유형의 덕목을 향하여 움직이며, 감정의 균형이 잡히고 침착하며, 예술 감각이 풍부해진다. 직관력 또한 풍부해지며, 다른 사람의 아픈 곳이나 상처를 싸매 주고 위로하는 일 또한 잘 하게 된다.                         

4. 돌보는 사람이 입는 영광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면 모든 흠이 덮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도 끝에 가서 분명히 초점이 맞춰진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예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았고 행실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 더 이상 이야기될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활동을 돕는 일단의 여인들이 있었다. 선교 활동에 열두 제자도 동행하였다. 그러나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기록된 장본인은 바로 그 여자들이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헤롯의 재무 대신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밖에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이가 그 여자들을 언급하면서,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꼽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눅 7:36-50)에 이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다른 각도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돋보이게 보도한다. 먼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 끝에다 덧붙인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막 14:8-9)


  도무지 이보다 더 큰 영광을 누가 감히 바랄 수 있겠는가. 어디 그 뿐이랴. 부활 기사에서도, 예수께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사 가지고 무덤으로 갔던 사람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이다.(막 16: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도 남성 제자들은 간 데 없이 사라졌는데 끝까지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던 여자들 가운데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제일 앞에 나온다.(막 15:40)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그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장례를 치를 때에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이름들 가운데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거명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록을 살펴봐도,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막 16:9)고 명백히 쓰여있다.


  무엇보다도 부활의 기쁜 소식을 역사상 제일 먼저 선포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는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막 16:10) 부활의 증언에 있어서 제일인자일 뿐만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막 16:11)는 기록을 뜯어보면, 남성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내내 ‘맹목성’을 드러내며 청맹과니처럼 굴던 모습을 여기서도 다시 드러내는 데 반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 신앙에 있어서 탁월성을 보이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처럼(막 14:9),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여성신학의 발전과 더불어 그에 대한 평가와 존중이 나날이 새로워질 따름이다. 이토록 큰 영광을 입게되는 건강한 2번 유형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 거룩한 의지를 드러내는 데 빼어난 사람이다. 


다른 곳에서 퍼온 글인데 출처를 잊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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