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기를 드러내 뵈이려 할 때에 취하는 행동들
[제1장] 드러나 보임과 드러내 보임
❶[드러내다(자기 제시)]의 의미
①“자기(自己)를 상대적(相對的)으로 우월(優越)하게 제시(提示)함{상대적인 우월 제시}
갈래가 복잡하게 얽힌 인간 행동의 한 근원을 필자는 일단〘자기를 드러내 보임{자기 제시}〙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하면서 본고를 시작하는데 이 개념은 “자기(自己)를 상대적(相對的)으로 우월(優越)하게 제시(提示)함{상대적인 우월 제시}”라는 명제를 줄인 것으로, 때때로는 [제시 본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성〙이란 사물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으로 생명체, 특히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달리 규정할 요소를 덧붙일 것이 없이 오로지 그 대상만이 지닌 〘성질〙임을 가리킨다. 제시 본성은 생명체, 특히 사람이 이 세계에, 그리고 사회에서 그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려는 온갖 행동을 하는데 이것이 가장 두드러진 본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표현이다.
*상대적인 우월 제시의 개략: 본고는 [상대적인 우월 제시]를 해설하려고 쓰는 것이므로, 앞으로 이들 개념을 차례로 개진하게 되겠지만 우선 이 명제를 개략적으로 초들면 다음과 같다. [싱대적인 우월]이란 제시, 곧 드러내 보임에는 그 내용에 우열이라는 값을 내세우는데 그 값의 평가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의미이다.
제시 본성은 다만 인간 생존의 원리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의 보편적인 삶의 의지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➁물질계와 생명계
�물질계[수동적 제시계]
〘물질계{물리 화학적 법칙의 세계}〙─일반적으로 자연계라고 불리는─ 의 변화를 우리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에 견주어 생명계가 이 세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운동은 행동, 또는 활동이라고 부른다. 곧 활동{행동}은 생명체의 운동이다. 드러나 보임은 저절로{스스로} 그러하다 ┈자연(自然)히 그리되다┈ 는 뜻이다. 물리 화학계는 활동하지 못하는 세계이기에 드러남에 대한 목적어적 개념이 없이 다만 수동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인 수동적 제시계이다. 자연의 변화는 물질 운동의 과정이며 결과이다. 자연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드러남이 객체적이긴 하지만 우연적 현상이며 따라서 맹목적이다. 이는 물리적 인과율에 의해서 맺어진 물리 화학적* 현상일 뿐이다.
*운동: 물론 필자가 인간들의 움직임도 곧잘 운동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자연계의 움직임을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는 앞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리 화학]을 간략하게 [물리]라고만 표기하려 한다.
�생명계[능동적 제시계]
이에 견주어 생명계, 특히 인간계의 활동은 자기를 스스로 드러내 보이려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능동적 제시계이다. [드러내다, 드러낸다.*]는 것은 표현 자체가 능동적이다. 이는 그 앞에 대상으로서의 목적어가 전제되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목적적이며 주체적인 개념이다.
생명체의 변화는 행동이며 드러내 보임의 진화 과정*이고 이유이다. 우월성이란 개체 생명체가 자신의〘용질〙을 현재, 또 남보다 더 낫다고 여긴다는 뜻인 동시에 더 낫게 향상시키려 한다는 뜻임도 가리킨다.
*드러내 보임의 진화 과정: 진화론적인 맹목적 변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해 나간다는 개념으로서의 진화이다.
생명의 본질이 주체를 전제한다는 말은 행동이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생명체의 목적적 활동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명체가 이 활동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드러내 보이기 위한 내용과 재료, 곧〘용재〙가 필요하며
ⓒ그 용재는 먼저〘신체[몸]〙와〘정신[얼]〙을 든다. 곧 드러내 보임은 몸을 통해서이거나 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드러내 보이기 위한 용재인 신체와 정신에는 드러내 보이기 위한 수단인 여러 기관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그런 기관을 설치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드러내 보이는 활동에는 드러내 보임을 받아들이는 자〘수용자(受容者)〙를 전제한다. 수용자가 전제되지 않는 제시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따라서 드러내 보임의 밑바탕인 몸과 정신에는 여러 가지 기관의 조직계통 ―몸에는 호흡계ㆍ소화계ㆍ생식계ㆍ순환계ㆍ그 밖의 여러 조직, 정신에는 뇌와 신경계ㆍ논리적 원리ㆍ오성적 범주ㆍ〘지(知) ∙ 정(情) ∙ 의(意)〙 등― 의 ❪순지〙의 정신적 역할 등]과 감관이 설치되어 있다. 감관은 드러내 보이기 위한 목적적 의지에 따라 우열의 비교 대상인 상대방을 ⎯쇼펜하우어가 지적한 바와 같이⎯ 보려는 의지가 눈을, 들으려는 의지에 따라 귀를 구비할 것이다. 그 밖의 감관들도 마찬가지이다.
❷의지적 존재
①제시 본성적 의지
앞으로 설명이 되겠지만 인간의〘의지〙중에는 ―의식의 작용 내용에 따라서― 제시 본성적 의지와 어긋나는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생명으로서 탄생되는 현상의 배후에는 자기를 세계에 드러내 보이려는 제시 본성적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곧 생명체는 의지적 존재이며 그 의지 안에 제시 본성이 들어있다. 봄의 대지를 보라. 추위에 움츠렸던 풀과 나무의 싹들이 움튼다. 그 연약한 새싹들이 때로는 무거운 돌을 밀어 올리기도 하면서 땅거죽 위로 솟아오르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제시의 필사적인 의지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팔다리를 움직이며 입을 오물거리며 옹아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삶의 기능인 지 ⁃ 정 ⁃ 의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시도이다. 사람이 어려서부터 가족끼리 ⁃ 친구끼리 서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상대에게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행동이다.
어떤 사람은 제시의 개념이 사물의 현상에 대한 경험만을 근거로 정립시킨 결과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제시의 개념이 사물의 존재에 관한 현상적 인식을 설명하기 위한 결과적 개념이라면 이러한 개념은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세계 안의 존재들은 그들의 존재가 현상을 통해서 인식 주체의 감각적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면 인식 주체는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드러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수동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 일부는 능동적으로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 하고 있다. 우리가 생물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그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거대한 흔들바위가 버티고 서 있다. 이 바위는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 바위는 결과적으로 드러나(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인적인 제시 의지에 의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우리는 이 바위에게 제시의 원인 ┈생물의 그것은 의지라고 부르거니와┈ 적 요소가 그 안에 들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➁능동(能動)적 제시와 수동(受動)적 제시
모든 생명체 행동의 밑바탕은 제시 본성적이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제시 본성에 따라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제시는 능동적 제시와 수동적 제시로 구분할 수가 있다. 능동적 제시란 현재 표현하고 있는 행동의 주체가 제시하려는 “의도”에 따라서 일부러 드러내 보이려 함을 의미하며 수동적 제시란 제시가 결과적으로만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인식 주관의 눈앞에 드러나 있는 사물 일체가 무조건적으로 제시 본성의 주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본성에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사물로서 그의 행동에 제시의 의도가 작용하는 능동적인 경우에만이 제시의 주인공라는 말이다. 결국, 제시의 능동성과 수동성을 구분하는 본질적 요소는 개체의 행동을 내부로부터 지배하는 원인인 고의적인 의지에 있느냐 없느냐? 뿐만이 아니라 현재 드러난 행동이 제시 의도에 의한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제시 의지가 안에 들어있는 생물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제시의 의도가 ┈〘자각(自覺: 보통〘의식〙이라고 불리는]〙 또는〘몰각[沒覺〙적으로라도┈ 내포되어 있지 않은 행동은 이를 [능동적 제시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에 정좌하고 앉아 인생의 심연에 관한 사유에 잠겨있는 [수도자의 명상]은 결코 [능동적 제시] 행위가 아니다.
♣바위산 위를 걸어 다니고 있는 [바위타기 영양]의 행동은 아직 주체적인 의지에 따른 고의적인 것이 아닌 한, 능동적 제시가 아니다.
♣[쑥쑥 자라나는 나무]는 주체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한 능동적 제시가 아니다. 바위산 위를 걸어 다니는 영양이나 쑥쑥 자라나는 나무는 무생물과는 달리 드러내고 있음에 틀림이 없지만, 아직 주체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한 능동적 제시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수도자의 명상이나 우는 아기, 시정에서 조리돌리는 죄수들을, 그들이 감각적 대상으로서 드러나 있음으로써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겠기에 자기 제시라고 불린다면 이는 제시 개념의 의미는 원인으로서가 아니라 결과로서의 타당성밖에는 없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천명하고자 하는 [제시(提示)]라는 것은 존재들이 우리의 눈앞에 감각적 대상으로 드러나 있다는 결과적 사실에 입각해서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개체에 내재하는 의지에 따라서 제시가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행동은 제시 행동이기는 하되 거기에 제시 의도가 더해져야만 능동적 제시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 행동이 관찰할 수 있는 상태로의 변화를 일으킴이 없이 정신의 한계 내에만 머물러 있었음에 불과하더라도 제시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면 그것이 〘자각적[의식적]〙이었건〘몰각적[잠식적]〙이었건 그것은 능동적 제시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이제 제시 개념의 적용 한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으리라고 믿는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제시 본성이라는 개념은 사물들이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 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해서 다짜고짜로 설정한 개념이 아니라 오직 능동적 제시 의지*를 지니고서 전개되는 행동에만 의미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쇼펜하우어는 그의 이론의 핵심 개념인 [의지(意志)]에, 물리력을 비롯한 모든 자연력까지도 포함시켰다. 변화의 모든 동인을 의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의지의 개념을 [생명체의 정신력]에만 국한시킨다. 자연의 변화를 끌어내는 원인은 생명체의 본질적 측면인 의지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신적 의지와는 그 근원이 같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 본성은 생명체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필자의 주장은 인간의 심성[❪심리계〙 명예 제시기 ❪체류〙의 인간 심성]도 다름 아닌, 능동적 의지인 제시 본성이라는 점이다.
제2장] 드러내 보임의 2가지 형태
❶플라톤의❰잔치{향연(饗宴)}❱
①명예(名譽)
인간에게 드러내 보임의 수단은 거의 다 [이름]이다. 명예란 드러내 보임이 이름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얻은 영예로운 이름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일찍이 드러내 보임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의 명저인 ❰잔치[향연(饗宴: 심포지온)]❱에 이렇게 썼다.
“그들이 유명하게 되고자 하여 그리하여 불후의 명성을 영구히 쌓아 올리기 위하여〈주: 옛 시구(詩句)〉얼마나 지독한 상태에 있으며 또 이를 위하여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는 경우보다도 얼마나 더 온갖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으며 또 얼마든지 돈을 쓰며 고난을 견디며, 심지어는 죽기까지도 하려 하는가?” “그와 같은 불멸의 공훈과 또한 영광스러운 명성 때문에 모든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하는 것이요, 또 우수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 시인들은 그들 자신도 불멸의 명성을 지녀 후세에 길이 기억됩니다마는 또한 이에 못지않은 불멸의 명성과 기억을 그 부모에게 돌린 소생을 뒤에 남겨놓는 것입니다.”
*플라톤 ❰향연❱ 최명관 역 [을유문화사] 1983 86쪽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경우에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본성은 항상 그 힘이 미치는 데까지 죽지 않고 영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오직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생식이란 낡고 늙은 것 대신에 새롭고 젊은 것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신체적으로 생식력이 있는 사람들은 여자에게로 향하여 거기서 애욕을 불태워 자식을 낳아 이로써 불사와 추억과 행복을 '영세 무궁토록 자신에게 확보하리라(어떤 시구(詩句) 인용)'*”
*플라톤 ❰향연❱ 최명관 역. 을유문화사: 1983. 65p.
➁생식과 창조
뒤이어 플라톤은 생식을 자녀 출산의 의미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모든 소산물의 산출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문화와 문명에 속하는 모든 소산물의 산출 ┈곧 우리들이 창조라고 부르는, 아니 창조보다 더 넓은 뜻을 가진 것과 같은┈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죽지 않으려는 열정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적으로 생식력[번식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령 면에서 생식력 ┈아마도 업적을 쌓아 그에 따르는 명성을 통해 자기를 제시하는 사람┈ 이 또한 없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신체보다도 오히려 심령 면에서 더 잉태 ┈정신적인 활동을 통한 문명과 문화의 창조┈ 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창조적인 시인들, 그리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듣는 미술가와 공예가 기타”, “훌륭한 업적을 많이 이룩하고 온갖 덕을 낳은 사람들”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자기 속에 신적(神的)인 성격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심령이 잉태하고 산출하기에 합당한 예지와 온갖 덕을 지닌 사람도 장성하면 자식 ┈아마도 문명과 문화의 창조물┈ 을 낳고 생식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같은 것을 낳을 수 있는 아름답고 고상하고 잘 자란 심령을 만나게 되면 그에게 덕과 선행과 선인의 조건에 관해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여 그를 교육해 보려 한다.” Ibid 87쪽
이처럼 긍정적인 교류가 상통하여 발생하는 출산에 따라 더 밀접하게 사귀며 더 굳은 우정을 갖는 것은 육신의 자식보다 더 아름답고, 죽지 않는 자식을 공유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 말은 참으로 통찰력 깊은 지적이다.
*밑줄을 친 부분은 본문에 대해 필자가 해석한 견해임.
❷드러내 보임이란 창조요 독창성이다.
①독창성의 조건
독창성이란 아래와 같은 조건이 갖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스스로 창조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능산자로서의 창조가 아니라 소산자의 창조다. 스스로에 관한 인과관계의 더 상위의 근거는 도외시한다. 곧 [스스로]의 상위 단계, 곧 그 부모나 창조주 등은 의미가 없다.
[잘 지었다] 창조된 것이 부정적이라면 창조의 의미가 없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다] 다른 사물로 바꿀 수가 있거나 쉬운 사물의 창조는 의미가 적다. 적어도 창조자 스스로의 의미에 따를 때 다른 사물로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독창적 사물의 창조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독창성 있는 사물에는 플라톤이《향연》에서 초들은 바 있는 다음의 2가지가 있다.
②인간의 창조(創造) 분야
영생을 바라는 생명체. 드러내 보임이란 심신에 딸린 [영생]의 수단이다.
그런데 생명체는 신체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지만 불과 수초, 길어보았자 1~200여 년을 살다가 죽는다. 생명체는 이렇게 짧은 동안만 살아있다가 죽는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래서 이런 제약을 벗어나 자기를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영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생명체는 곧 될 수 있는대로 더 오랫동안 살기를 바란다. 영생을 바라는 가련한 생명체의 소망이 안타까웠던지 조물주?는 영생의 방법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출산을 통한 번식이다. 하나의 생명체는 죽음으로써 끝나지만 그를 쏙 빼닮은 자손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게 마련해 준 것이다. 출산을 위한 활동의 감정이 바로 연정(戀情)이다. 고대로부터 두루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체는 사망하지만, 종은 출산에 의한 번식을 통해 무한히 살려 한다. 곧 바꿔 말하면 종은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계속 구사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신체에 의한 직관적 제시 확장인 번식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생명체가 예로부터 꿈꿔왔던 영원한 생존, 곧 영생이다.
창조는 창조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생명체다. 창조의 결과는 세계에 드러나 보여져야 완벽하다. 창조가 되어 있으나 이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아 아무도 그런 사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게 숨겨져 있다면 무슨 소용이랴? 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상 전파되어 널리 퍼져서 다른 존재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렇게 세계에 드러나 보여주려는 생명체들이 바래서 구해 마지않는 이 심성이 제시 본성이다.
이때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의 영생 방식은 신체를 통한 번식뿐임에 견주어 인간에게는 이름에 의한 정신적 제시인 [명예]가 있다. 인간은 서책이나 영상 등의 창조적 장치에 의해 이름이 기록되어 그 명예를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 되살려낸다.
�신체적 창조인 [출산과 번식]
출산은 자녀를 통한 드러내 보임이며 유전자를 통한 신체적 번식, 곧 많은 수효의 자녀를 낳아 퍼트리는 일이다. 출산의 바탕인 신체{신체}는 제시의 강력한 형태인 직관적 대상이요, 직접적인 교류의 수단이기는 하나 한 개체의 신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전 지구의 역사에 견주면 먼지보다도 작은 매우 제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체적으로는 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시공의 이 제약을 극복하여 제시를 확장시키기에는 극히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다.
아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쳐 바라던 바대로 이루어짐. 출산은 어버이와 태어나는 자녀가 함께 창조하는 일이다.
어느 생물이든 그들이 출산하는 새끼들을 어미가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는 그 조상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조상들은 대대로 숱한 어려움을 헤쳐나오면서 생존에 유리한 형질로 발전해서 현재의 상태를 이루어 낸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함함[예쁘다]하다고 한다.” 함함할 만하다. 고슴도치 같은 하찮아 보이는 동물도 뱀이나 벌의 독에도 저항력이 있는 등 좋은 생존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다. 사람이 고슴도치를 죽이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그 일부분도 만들어 낼 재주가 없다.
사람의 경우 어버이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아이를 낳겠지만 그 어린이는 생물로 살아온 선조의 생존을 도외시하고 인류라는 고등 동물의 계통만을 치더라도 500만 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숱한 위기를 견뎌내며 삶을 다듬고 위기를 극복하며 이어온 선조들의 값있는 지혜와 용기 등 축적된 심신의 생존 유전자를 모두 짊어지고 태어난 아름답고 귀한 생명체이다. 훌륭하게 가르쳐 키우면 뛰어난 기능을 활용해 세상을 구원할 인재로 자랄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자녀를 출산할 능력 있는 창조자들이다.
자연에서의 생명의 확장 의지는 이와 같은 생물의 유한성을 뛰어넘으려 안간힘을 쓰며 신체의 제약을 벗어나서 자기를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영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출산을 통한 번식이며 출산을 위한 활동의 감정이 바로 〘연정(戀情)〙이다. 고대로부터 두루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체는 사망하지만, 종은 출산에 의한 번식을 통해 자기의 유전자를 무한히 유지시키면서 영생하려 한다. 곧 바꿔 말하면 종은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계속 구사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신체에 의한 직관적 제시 확장인 번식이다.
진시황은 영생을 번식으로서가 아니라 불사약과 불로초 등을 통해 자기의 신체로 이루어 보려고 애썼고 다른 사람들도 갖가지 방법을 강구하여 이를 달성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 쓴다.
�마음에 의한 정신적 창조인 [창안과 창제 • 창작 • 창의]
에 따른 [명예]
정신의 기능인 의식의 소산물로써〘수용자(受容者)〙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영생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에 의한 이름의 전달이다. 신체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확장, 곧 후대에의 제시가 번식인 것처럼 발명 • 창안 • 고안 • 저작 • 여러 가지 산업의 노동이나 작업 및 서비스의 결과물[농산품 ⁃ 수산물 ⁃ 공산품 • 상품] • 제작 • 작품 • 발견, 특히 이상(理想) ⸺진리 • 예술작품 • 교육⸺ 을 창조 전달하는 문화의 전수는 정신적 소산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제시 확장이다.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작업과 업적은 그 작업자와 공업자(功業者)의 [이름]을 통해 전달되고 확장되어 인류가 멸망되지 않는 한 영원히 전해져, 소망하던 영생 ―비록 심신이 박제된 허울뿐인 영생일 뿐이기는 하지만― 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영예로운 이름 ―명성― 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름을 통한 드러내 보임. 가치{우월한} 있는 작업과 업적이 이름을 통해 남의 기억이나 문서 등에서 전파되는 것이 [명예]인 정신적 제시.
인간에게 드러내 보임의 고리[매개체]는 거의 다 이름이다.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드러내 보임이 이름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정신의 기능인 의식의 소산물로써〘수용자(受容者)〙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창조이다.
이처럼 영생에는 신체적 방식으로서의 번식과 정신적 방식으로서의 명예를 얻는 두 방법{형태}이 있다.
번식이 신체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확장, 곧 후대에 드러내 보임{제시}인 것과 같이 문화의 전수는 정신적 소산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미래에의 시간적 제시 확장인데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작업과 업적은 그 작업자와 공업자(功業者)의 이름을 통해 전달되고 확장된다. 우리가 영예로운 이름 ⸺명예⸺ 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인간이나 생물 ⸺뒤에서는 인간[사람]으로만 나타낸다⸺ 이 자연계에서 동떨어져 오직 혼자의 힘으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물 ⸺비슷한 사물이 널려 있다고 하더라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오직 하나뿐인 사물을 새로 지었다는 의미에서 창조적 사물⸺ 이다
�자아실현, 곧 본질 발현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실현을 필자는 “본질 발현”이라는 도덕적 개념으로 여기는데 다 같이 타고난 자기의 본질로서의 능력을 펼쳐 나타내 보인다는 뜻으로 인간에게 창조물은 다른 것으로 대신 바꿔 채워 넣을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창제물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슬퍼한다.
자기의 자녀가 잘 자라지 않고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죽는 일,
불쑥 컴퓨터가 고장 나 지금껏 작성해 놓은 자기의 창의력이 들어가 있는 독특한 창작물 ⸺고안하거나 기안한 글, 또는 그림 등 발명품 • 발견물이 전부는 그만두고 단 한쪽이라도⸺ 사라져 버리는 일.
(심지어) 자기가 끓여놓은 국을 식구들이 전혀 먹지 않고 개숫물에 버리는 일. 자기가 사놓은 것이 무시되거나 경시되는 일.
이러한 일이 생겼다고 상상해 보라. 당사자가 부정적 감정 ⸺대표적으로 슬픔⸺ 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가? 그것이 맞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자기의 창조가 부정되기 때문이고 창조의 중요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창의: 새로운 제도나 법률 규범 등을 제정함.
창작: 새로운 예술작품 ⸺문학작품 이야기 시 그림 노래 작사 작곡⸺ 등의 발표
창제: 새로운 것을 생산함. 새로운 제품을 만듦.
창업: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실현함.
발명: 새로운 연장이나 기계 기구 설비 이미지 표지 등을 고안함
발견: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거나 알아냄.
[본질과 법칙 발견] 새로운 원리나 법칙 이론 등을 정립함.
[현상 발견] 새로운 경험적 사실의 현상을 발견.
다만 모방은 인정되지만 거짓이나 속임수에 따른 조작은 창조로 인정할 수 없다.
③창조 행동에는 기쁨이 따른다
창조에는 기쁨이 따른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몫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자기가 낳은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서 훌륭한 한 사람으로 자기의 역할을 다하며 자기가 제안한 창의, 자기가 제출한 학설이나 이론, 발견한 법칙이나 현상, 작품 사업이 만인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성공하는 등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는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의 근원이 된다.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출산과 번식]에는 산모의 산통이, [창안과 창작]에는 창작자의 창의통(創意痛)이.
생물, 특히 인간이 자연계에서 동떨어져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사물이 널려 있다고 하더라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사물을 새로 지었다는 의미에서 창조이다. 인간에게 창조물은 다른 것으로 대신 바꿔 채워 넣을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창조물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슬퍼한다.
자기의 자녀가 잘 자라지 않고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죽는 일,
불쑥 컴퓨터가 고장나 지금껏 작성해 놓은 자기의 창의력이 들어가 있는 독특한 창작물 ⸺고안하거나 기안한 글, 또는 그림 등 발명품 • 발견물이 전부는 그만두고 단 한쪽이라도⸺ 사라져 버리는 일.
(심지어) 자기가 끓여놓은 국을 식구들이 전혀 먹지 않고 개숫물에 버리는 일. 자기가 사놓은 것이 무시되거나 경시되는 일.
이러한 일이 생겼다고 상상해 보라. 당사자가 슬픔이나 실망 등의 부정적 감정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가? 그것이 맞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자기의 창조가 부정되기 때문이고 창조의 중요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❸창조의 전파인 자기 제시
①[드러내 보임(제시)]의 의의
자기의 창조 효과는 창조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생명체다. 창조의 결과는 세계에 드러나 보여져야 한다. 곧 시간과 공간상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 창조가 되어 있으나 이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아 아무도 그런 사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게 숨겨져 있다면 무슨 소용이랴? 뿐만이 아니라 널리 퍼져서 다른 존재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렇게 세계에 드러나 보여주려는 생명체들이 바래서 구해 마지않는 이 심성이 제시 본성이다.
인간에게 드러내 보임의 고리[매개체]는 거의 다 이름이다. 명예란 드러내 보임이 이름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체는 제시의 강력한 형태인 직관적 대상이요, 직접적인 교류의 수단이기는 하나 한 개체의 신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우주나 전 지구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매우 제한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시공의 이 제약을 극복하여 제시를 확장시키기에는 극히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연에서의 생명의 확장 의지는 이와 같은 생물의 유한성을 뛰어넘으려 안간힘을 쓰며 신체의 제약을 벗어나서 자기를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영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출산을 통한 번식이며 출산을 위한 활동의 감정이 바로 연정(戀情)이다. 고대로부터 두루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체는 사망하지만, 종은 출산에 의한 번식을 통해 무한히 살려 한다. 곧 바꿔 말하면 종은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계속 구사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신체에 의한 직관적 제시 확장인 번식이다.
정신의 기능인 의식의 소산물로써〘수용자(受容者)〙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창조이다.
➁드러내 보임이란 심신에 딸린 [영생]의 수단
창조는 창조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생명체다. 창조의 결과는 세계에 드러나 보여져야 완벽하다. 창조가 되어 있으나 이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아 아무도 그런 사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게 숨겨져 있다면 무슨 소용이랴? 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상 전파되어 널리 퍼져서 다른 존재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이렇게 세계에 드러나 보여주려는 생명체들이 바래서 구해 마지않는 이 심성이 제시 본성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인류가 예로부터 꿈꿔왔던 영원한 생존, 곧 영생이다. 위에서도 간략히 초들었듯이 영생을 위한 드러내 보임에는 신체에 의한 [번식]인 출산과 마음에 의한 정신적 제시로서의 창조에 따른 [명예]가 있다.
�신체적 제시인 [출산과 번식]
출산은 자녀를 통한 드러내 보임이며 유전자를 통한 신체적 번식, 곧 많은 수효의 자녀를 낳아 퍼트리는 일이다. 출산의 바탕인 신체는 제시의 강력한 형태인 직관적 대상이요, 직접적인 교류의 수단이기는 하나 한 개인의 신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우주나 전 지구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작은 매우 제한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시공의 이 제약을 극복하여 제시를 확장시키기에는 극히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연에서의 생명의 확장 의지는 이와 같은 생물의 유한성을 뛰어넘으려 안간힘을 쓰며 신체의 제약을 벗어나서 자기를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영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출산을 통한 번식이다. 고대로부터 두루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체는 사망하지만, 종은 출산에 의한 번식을 통해 무한히 살려 한다. 곧 바꿔 말하면 종은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계속 구사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신체에 의한 직관적 제시 확장인 번식이다.
신체{신체}는 제시의 강력한 형태인 직관적 대상이요, 직접적인 교류의 수단이기는 하나 한 개체의 신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전 지구의 역사에 견주면 먼지보다도 작은 매우 제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체적으로는 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시공의 이 제약을 극복하여 제시를 확장시키기에는 극히 불리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연에서의 생명의 확장 의지는 이와 같은 생물의 유한성을 뛰어넘으려 안간힘을 쓰며 신체의 제약을 벗어나서 자기를 공간상으로나 시간상으로 영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출산을 통한 번식이며 출산을 위한 활동의 감정이 바로 〘연정(戀情)〙이다. 고대로부터 두루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체는 사망하지만, 종은 출산에 의한 번식을 통해 자기의 유전자를 무한히 유지시키면서 영생하려 한다. 곧 바꿔 말하면 종은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계속 구사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신체에 의한 직관적 제시 확장인 번식이다.
진시황은 영생을 번식으로서가 아니라 불사약과 불로초 등을 통해 자기의 신체로 이루어 보려고 애썼고 다른 사람들도 갖가지 방법을 강구하여 이를 달성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 쓴다.
�마음에 의한 정신적 창조인 [명예]
이름을 통한 드러내 보임. 가치 있는 작업과 업적이 남의 기억이나 문서 등에서 이름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정신적 제시. 이처럼 두 방법{형태}이 있다.
문화와 문명에 관한 가치 있는 창조적 작업과 업적이 이름을 통해 드러내 보여 널리 전파되는 일이 명예다. 인간에게 드러내 보임의 고리[매개체]는 거의 다 이름이다. 명예란 드러내 보임이 이름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의미하는데 명예에 의한 제시는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서야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유명{이름이 있다}하다는 낱말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의 “우월함{어느 의미에서 위대함}”을 뜻한다고 보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람들 모두가 성명(姓名)을 쓰게 된 것은 역사 상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다른 뜻으로 유명한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정신의 기능인 의식의 소산물로써〘수용자(受容者)〙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창조이다. 번식이 신체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확장, 즉 후대에의 제시인 것과 같이 문화의 전수는 정신적 소산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미래에의 시간적 제시 확장인데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작업과 업적은 그 작업자와 공업자(功業者)의 이름을 통해 전달되고 확장된다. 우리가 영예로운 이름 ⸺명예⸺ 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신의 기능인 의식의 소산물로써〘수용자(受容者)〙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영생하는 것은 [문화와 문명]에 의한 이름의 전달이다. 번식이 신체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확장, 즉 후대에의 제시인 것처럼 문화의 전수는 정신적 소산의 공간적 확장인 동시에 공간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에서의 미래에의 제시 확장인데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작업과 업적은 그 작업자와 공업자(功業者)의 [이름]을 통해 전달되고 확장되어 인류가 멸망되지 않는 한 영원히 전해져, 소망하던 영생 ―비록 심신이 박제된 허울뿐인 영생일 뿐이기는 하지만― 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영예로운 이름 ―명성― 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