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무경 Apr 01. 2024

새로 지어본 〈할미꽃 전설〉

중학생 진우가 초등생 하영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진우와 하영이가 동네 뒷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며 놀았다. 비가 온 뒤의 고사리는 짙은 검보라색을 띠고 제법 굵게 땅위로 쑥쑥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영이와 진우는 정신 없이 그 고사리들을 뜯어 바구니에 담았다. 그 일대를 뒤져가며 그렇게 열심히 고사리를 뜯으니 고사리가 바구니에 가득했다. 지쳐 쉴 곳을 찾는데 마침 그곳에 커다란 봉분이 하나 있었다. 봉분 주위에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묘석과 비석도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지체가 높은 집안의 벼슬아치의 묘가 아닌가 싶었다. 

”저기서 좀 쉬면 되겠다.”

“싫어. 무섭지 않아?” 

“무섭긴? 뭐가?”

”나는 묘만 보면 무서운데”     

 진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봉분 위로 올라가더니 하영이에게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두려움에 망설이던 하영이가 용기를 내어 진우의 손을 붙잡고 봉분에 올랐다. 봉분에도 잔디가 파릇파릇 새싹을 내고 있었고 그 주변에 드문드문 할미꽃 무리가 봉우리를 틔워 꽃피어 있었다. 진우는 할미꽃을 따서 봉우리를 뒤짚어 노란 꽃술을 밖으로 나오게 하더니 보라색에 짙은 주홍색을 띈 꽃잎을 뒤로 모아 막대 바늘로 꿰웠다. 화려한 꽃관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진우는 그것을 하영이 머리에 머리핀처럼 달아주면서 물었다.   

   

“너 이 할미꽃 꽃관을 잘 보아라. 이 꽃이 노인으로 보이니?” 

“지금 이 꽃관은 전혀 노인처럼 보이지 않은데, 꽃이 진 뒤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한 노인네 같아 보이지 않아?” 

“꽃이 진 뒤에는 그렇지. 그 때문에 생긴 할미꽃에 관한 이야기가 3학년 2학기 교과서에 나오는데 너 그 이야기 아니?” 

“응 작년 2학기 때 배웠어.”

“ 그래 그 이야기 내용이 어떻데?”

“ 손녀 두 명을 데리고 살던 할머니가 손녀들을 시집보내고 혼자 어렵게 살다가 동네 사람들이 잘 사는 큰 손녀에게 할머니를 외면한다고 욕을 하니까 할머니를 모셔갔지 아마. ”

“그래 맞아. 그런데 큰 손녀는 잘 살면서도 모셔간 할머니를 구박했지!”

“그래서 큰 손녀의 구박이 서러운 할머니가 마음씨 고운 작은 손녀 딸네 집으로 갔지.”

“그런데 늙어서 기운이 없던 할머니는 작은 손녀의 집이 눈앞에 보이는 산모퉁이에 이르렀으나 기진맥진해서 더 걸을 수 없어 길가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잖아.”


 “그런데 네가 보기에도 이 할미꽃이 늙어 보이니?”

진우는 자주색 꽃잎 속에 샛노란 수술을 한 예쁜 할미꽃의 속 안 모습을 하영이 앞에 내밀며 이렇게 물었다. 

“지금은 늙어 보이지 않지만, 꽃이 지고 나면 하얀 거, 그게 꽃술인가? 가 산발한 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퍼져 나오잖아?” 

"그렇지만 지금은 그 꽃관처럼 예쁘지 않냐? " 

"그건 그렇지만" 

"내가 그 꽃관처럼 예쁜 할미꽃에 대한 새 이야기를 지었다. 들어볼래?"

"정말?  애기 해줘!" 


이렇게 해서 진우는 하영에에게 제가 지었다는 진달래꽃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옛날, 그 옛날 귀골이라고 불리는 어느 두메산골에 방울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았어.      

그런데 어느 이른 봄에 그 산골에 봉현이란 청년이 약초를 캐러 온 일이 있었어. 그 남자는 방울이네 집 앞의 시냇가 돌다리를 건너가다가 그 곳에서 빨래를 하는 방울을 보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그 예쁜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어.      

“저 아가씨! 나는 약초와 인삼을 캐러 다니는 봉현이라는 심마니인데 혹시 이곳에 약초가 많이 나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지 않을래요?”

하고 물었지.      


방울이는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버지에게서 들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낯모르는 총각과 말을 건네 본 일이 없어서 부끄러워 대답도 못하고 그냥 옷고름만 매만지고 있었는데 봉현이가 산에 오를 때면 늘 싸 가지고 다니는 맛있는 주먹밥 몇 덩이를 방울이에게 주고는 약초를 캐러 산으로 갔지. 


그 뒤로 봉현이는 친구들이 약초를 캐러 다른 곳으로 가자는 것도 뿌리치고 항상 약초를 캐러 귀골로 와서 방울이를 만났어.      

봉현이는 약초 캐는 일이 끝나 집으로 갈 때에는 방울이네 집에 와서 그녀에게 산에서 뜯은 나물이며 예쁜 꽃으로 만든 꽃다발 같은 것을 방울이에게 주면서 심마니에 관한 내용, 약초 캐러 다니던 이야기, 약초의 이름과 생김새 약초의 효능 등을 말해 주었어. 그러면 또 방울이는 나물 뜯으러 다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지. 그렇게 봉현이와 낯이 익어가자 이제 방울이도 봉현이와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도 치면서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처지가 되었지.

      

방울이는 자기가 고사리 · 취나물 · 도라지 · 창출 등을 캐러 가끔 가는 축령봉 하나리 골짜기를 가르쳐 주었어. 그곳은 산세가 가파르고 깊은 데다가 그녀가 도라지를 많이 캤던 곳이었기 때문에 혹시 다른 약초나 산삼도 있을 것으로 여겼거든.   

   

봉현이는 어느 날 방울이가 가르쳐 준 하나리에서 운 좋게도 백여 년 된 산삼 몇 뿌리를 캐서 큰 돈을 벌었단다.      

그러자 그 돈을 들고 자기가 사는 읍내의 유명한 대장장이를 찾아가서 꽃 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단다. 은으로 만든 날개에 겉은 붉은 진보라 색 비단으로 싸고 속에는 여러 개의 관 줄기에 노란 구슬을 매단, 내가 너에게 할미꽃으로 만들어 달아준 종처럼 생긴 아름다운 꽃 관을 방울이에게 주기 위해서였어.      


꽃 관이 다 만들어지자 봉현이는 이 관을 방울이에게 주었고 방울이는 그 예쁜 꽃관을 무척 좋아했지. 그 후로 두 사람은 더 자주 만나 깨알같이 고소하고 달콤한 말을 나누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봉현이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방울이는 애가 타서 안절부절못했지.      

그런데 몇 년 뒤에 봉현이와 같이 약초를 캐러 다니던 떡쇠라는 남자가 방울이를 찾아와서 봉현이가 전장에 징용되어 떠났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 대신 자기와 사귀자고 하는 거야. 

     

방울이가 싫다고 하자 그는 갑자기 방울이가 있는 방에 들어와 그에게 달려들어 껴안으려 하는 거야. 위기에 빠진 방울이는 마침 옆에 놓여있던 꽃관을 들어 떡쇠를 내리쳤고 떡쇠가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에 밖으로 도망쳤는데 그때 마침 장에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떡쇠를 내어 쫓아버릴 수가 있었어. 

     

그 이후에 방울이가 더 커서 아랫마을 여러 곳에서 혼사말이 들어왔지만 방울이는 봉현이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자기를 찾아오면 그에게 시집갈 것이라고 말하곤 마냥 기다렸단다, 혹시 그가 죽었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시집을 가지 않을 거라면서 자기 아버지와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과의 혼사를 거절하고 때때로 봉현이가 준 관을 쓰고 앉아서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머리가 하얗게 쇠었을 때까지 봉현이를 기다리며 살다가 죽었어.      


동네 사람들은 정절을 지킨 방울이를 존경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가엾어 양지바른 곳에 땅을 파고 방울이를 곱디곱게 묻어주면서 그 무덤에 봉현이가 방울에게 준 그 꽃 관도 같이 묻어주었지.   

   

처음 방울이와 봉현이가 만났던 때처럼 이른 봄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방울이의 무덤을 지나다 보니 무덤 봉분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꽃이 피어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봉현이가 방울이에게 주었던 꽃 관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예쁘던 봉현이의 모습과도 닮은 노오란 꽃술에 붉은 진보라 색 꽃잎이 달린 모양의 예쁜 꽃인 거야.      

그리고는 얼마가 지난 뒤에 그 짙은 주홍색 꽃잎이 지면 방울이가 죽었을 때의 머리칼처럼 꽃술이 하얗게 변하는 거야. 사람들은 그 꽃이 방울이의 넋이 변해서 그리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그리고는 방울이가 죽었을 때처럼 새하얀 머리털이 난 그 꽃을 할미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거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