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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3. 2024

[이모티비즘(emotivism: 정의주의) 비판

이모티비즘[정의주의(情意主義]의 주장은 자가 당착이다


      

필자는 외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 내용은 김태길 교수의 저서인❰윤리학❱에 의거했습니다.


이모티비즘의 주장은 자가 당착이다.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내세운 숱한 도덕적 체계와 조목들을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시 그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주장들이 논증될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두루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현대에 이르러 노르마 도덕이 문제가 아니라 메타 도덕이 문제되는 이유는 바로 노르마 도덕 자체의 타당성 논증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각성을 일깨운 것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었다.     


소위 논리실증주의에 속한 이모티즘:정의주의(情意主義)라고 불리는 한 무리의 사상가들이 나타나자 2500여 년이나 탐구되어 오던 도덕학이라는 학문은 끝을 고하는 듯했고 당위로서의 도덕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논거는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인식 논리에 의해서였다. 곧 명제가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분석적으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동의어 반복(tautology)]의 명제, 곧 [분석적 명제]이거나 경험적으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경험적 가설(contincent)인 [경험적 명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 전체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는 논자라고 해도 ―[검증성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이 지적한 검증 문제에 관해서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업적은 도덕적 언명의 성격을 확실하게 정립하려는 시도에서 얻어졌다. 도덕적 언명을 비롯한 모든 명제를 [경험적 명제]와 [분석적 명제]에 한정시키고 이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하려 한 기도는 ―세부적으로 다소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도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험론자들이 그러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 이론에도 자신을 모순에 빠지게 하는, 그들에게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허방[함정]이 숨겨져 있다. 그들의 주장에 관한 허방이 무엇인가에 관한 견해를 이 자리에서 아주 간략하게 지적해 보겠다. 

     

정의주의의 주장 요약

철학은 의미 있는 명제 서로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일이다. 정의주의에 의하면 지금까지 철학의 주요 분야로 취급되어 오던 [형이상학]과 [윤리학]적 명제들이 외견상 과학적 명제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검증할 수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사이비 명제]이며 무의미한 명제는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검증할 수 없는 사이비 명제들로 이루어진 형이상학과 윤리학은 결코 철학의 분야에 속할 수 없고 "철학의 분야에 속하지 않는 분야는 철학의 영역 밖으로 내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태길 지음 ❰윤리학(倫理學)❱ 박영사 1989. 2 28. 중쇄판 217쪽     


여기서 필자는 철학의 정의에 관한 그들의 견해나 [형이상학] 및 [윤리학]은 철학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주장 그 자체를 논의하지는 않겠다. 그들의 주장을 일단 시인해 두자. 그렇더라도 적어도 "윤리학은 철학이 아니기 때문에 철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 없다는 점을, 바로 그들의 주장을 통해 간명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저 주장을 간략하게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된다.

 

 철학은 의미 있는 명제 사이의 논리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일이다. 

  따라서 무의미한 명제로 이루어진 ―형이상학 포함― 윤리학{도덕학}은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철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도덕적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므로 도덕적 명제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을 삼단논법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 1

  [대전제] 무의미한 명제는 철학의 명제가 아니다.

  [소전제] 윤리학적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다. 

  [결  론] 윤리학적 명제는 철학의 명제가 아니다  

   

● 2

  [대전제] 철학의 명제가 아닌 것은 철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소전제] 윤리학적 명제는 철학의 명제가 아니다. 

  [결  론] 윤리학은 철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저 전제들이 타당하다고 가정하면 결론 역시 타당하다. 곧 추리 자체에 논리적 결함은 없다. 그러나 슬기로운 독자라면 이들 명제에 숨겨져 있는 오류 추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모티비즘}의 오류 요약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도덕을 부정하면서도 무슨 행동을 “해야 한다(예컨대 윤리학은 철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내쫓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과 같이)는 것과 같은 도덕의 당위적 갈말를 쓴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철저히 절대적인 도덕적 용어로 절대적 도덕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도덕학은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라는 그들의 이 주장 속에도 바로 절대적인 도덕의 원칙[본질]이 암암리에 포함되어 있다. 곧 도덕학의 본질 ⸺철학의 명제가 아닌 것은 철학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철학의 본질을 상정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주장이다⸺ 에 관해 초들고 있다. 이는 그들도 도덕적 명제의 타당성이 개념의 본질에 들어 있음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소전제는 “철학의 정의(이 역시 본질 판단이다)”였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 전제인 “철학의 본질” 속에는 당위가 내포되어 있음을〘몰각〙중에도 인식하고 있다.      

논변의 소전제에 해당하는 철학에 관한 그들의 견해는 심히 잘못된 것이고 더구나 도덕학을 배척하기 위해 도덕학적 개념을 사용한 점은 모순이었지만 적어도 그들 역시 사물의 본질{논리적으로는 정의(定義)}로 나타내게 되는) 안에는 당위성이 들어 있다는 점을 대전제로써 암암리에 시인하고 있었음을 자각하고 있다.    

  

사실 도덕적 문제를 엄밀한 논리적 형식으로 증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비록 이를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본질 판단적 사유 속에서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의주의가 전 세계를 풍미하던 때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도덕학자들은 그들의 잘못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절대적인 도덕의 원리는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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