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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4. 2024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명령

이성적 인간이라면 당위적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이성적 인간이라면 당위적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인간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몰라도



인간이라면 당위를 거부할 수 없다


인간이 도덕적 당위를 거부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행동자, 곧 생명체의 의지로서는 그러한 상태로의 옮길 명령을 물리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다" 함은 바꿔 말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함이기도 하다. 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가? 행동 주체자의 의지에 의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궁극적인 내적 이유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그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리적인 욕구에 관한 심각한 부정적(否定的) 사태가 야기되기 때문에 이 심각한 부정적 사태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그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➀심리적 이유]   

  

【둘째】그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➁논리적 이유].     


헤어[R M Hare]의 주장

영국의 규정주의 윤리학자인 헤어[R M Hare]는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헤어의 주장에 대한 김태길 교수의 개요

“…………직각론적 도덕설에 대한 Hare의 비판은 ‘자명성’(self-evidence)의 개념의 분석을 통하여 전개된다. 어떤 도덕학적 원리가 ‘자명하다’ 할 때, 그 ‘자명하다’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그것의 배척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요, 

둘째는 그것을 배척함이 현실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김태길 《倫理學》 박영사 1989년 2 28일. 중쇄판 278~9쪽      


필자는 위의 내용에 젅적으로 공감하며 아래와 같은 뜻이라고 믿는다. 얼마간의 중복이 있음.      

 

[자명성]의 뜻: “어떤 윤리학적 명제가 자명하다고 할 때 자명하다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그 원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 자기모순을 포함하므로 그것의 배척[또는 거절]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논리적 의미.┈곧 이성적 의지에 의해 배척할 수 없는 명령이어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의무를 부여하는 법칙이다. 모순을 품은 논변은 그 자체로 이미 논변의 자격을 상실하여 논변일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짓이다.


둘째는 그것을 배척함이 현실에서 심리적으로 불가능하여 거절할 수 없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마음 곧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로 그 의미는 자연에 의해 주어진 살고자 하는 의지, 생물이 꺼려하여 결코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연이 부여한 배척할 수 없는 심각한 명령이며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의무이어서이다. 죽음 • 고통 •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는 상황에 빠지는 일 등은 생물들의 본성에 배치되므로 결코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이며 심리적으로 배척할 수 없는 명령, 바꿔 말해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의무로 작용한다.      


[헤어의 결론]

그런데 헤어는 어떤 원리[윤리적 원리]의 배척이 논리의 자기모순을 포함한다면 그 원리는 반드시 분석적인 명제가 아닐 수 없는데 분석적 명제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명제에는 “행위의 지침이 되어야 할 도덕적 원리로서의 구실을 할 수가 없다.”* 면서 물리쳤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배척이 불가능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심리적인 이유는 어떤가? 헤어는 “심리적인 가능성 여부의 문제는 우연적(cotingent)인 문제이다. 갑에게는 물리침이 가능한 명제가 을에게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역시 물리친다.


*김태길 《倫理學》 박영사 1989년 2 28일. 중쇄판 279쪽     


헤어도 부연하고 있듯이 그가 말하는 자명성의 둘째 원리인 심리적 불가능성은 우연적인 사항이므로 필자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첫째 원리인 논리적 이유가 분석적 명제이기 때문에 “행위의 지침이 되어야 할 도덕적 원리로서의 구실을 할 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 이에 그의 주장을 좀 더 펼쳐 설명하는 것은 사족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자명성의 해석

위의 자명성을 다시 정리해 본다. 


논리적 법칙: 사유의 법칙 •  행위의 법칙.

생존의 법칙: 생존적 존재{곧 생물}가 지니고 있으면서 생존적 존재에 적용되는 거부할 수 없는 법칙. 

     

논리적 자명성의 해석 

논리적 불가능성, 곧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원리, 곧 그것의 배척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인 경우는 바로 이성{이성의 논리적 판단력} 을 두고 하는 말임은 분명하다. 


이성의 판단력에 의해 우리가 지금까지(저술 중에서) 논급해 왔던 [본질 판단]적 결론 “사람은 살고자 하는 존재이므로 죽여도 좋다.” “약속은 지키기로 한 것인데 왜 지켜야 하느냐?” 따위의 명제를 배척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런 태도가 모순에 빠지는 행위이며 이성은 모순에 빠지는 판단과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원칙 위에 터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이를 위반해 왔다면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문화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논리적 이유에 의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지시는 특히 행동에 모순이 포함되지 않는 지시를 가리킨다. 모순의 성어 유래가 보여주듯이 정상적 이성의 소유자들은 “세상에서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창과 어떠한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는 논리적으로 모순에 빠지는 일이며 이러한 것이 타당하지 않음은 즉각적이고도 강하게 인식할 수 있기에 모순되는 말이나 이론을 전개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이론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행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모순에 빠지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행위에 관련된 당위적 이론이란 실천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으로부터 연유하는 행위 여부를 적극적으로 알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소극적으로 모순에 빠지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순에 빠지더라도 이를 개의하지 않거나 모순임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들 ―지적 장애인이나 정상적인 사람을 뺀 동물들― 에게는 그러한 원리는 구속력(당위적 제약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를 논리적 원리의 지시 아래에서 영위함으로서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정신의 소유자, 곧 이성의 소유자 ―지구 밖의 외계인이라도 이성적이라면 ― 에게는 그 원리는 당연히 존중되며〘이성(理性)〙이란 개념에는 바로 그러한 정신의 이념이 중요한 한 자리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여러 조건에 합당한 당위적 행동[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행동]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인 이유뿐임을 단정할 수가 있다.      


심리적 자명성의 해석

심리적 불가능성, 곧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함은 삶의 심각한 괴로움, 곧 생존의 위협 • 사망 • 고통 • 억압 • 핍박 • 구속 등 [생명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죽게되거나 죽을 것처럼 괴로운 처지 ―생존 의욕의 좌절(질식 • 기아 • 추위와 더위 • 환경) 고통 야기(질병 • 상해) • 불리한 상황 등 부정적인 상황― 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이러한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삶과 삶에 따르는 심각한 괴로움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드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뜻이다.           

결론

도덕적 명제는 이 두 가지 배척 불가능성 가운데 “심리적 배척 불가능성”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배척 불가능한 명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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