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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07. 2024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7]  사이비 이타주의

[7] 이타주의의 유형 ➁사이비 이타주의


[7] 이타주의의 유형 

사이비 이타주의


[속판]

❶제남 이타주의

❷겉보기 이타심(apparently altruism)

❸친족 이타주의

❹방계 이타성

직접 호혜적 이타주의.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에 기반한 호혜적 이타주의     


아래는 필자가 덧붙이는 이타심

ⓒ〘보상 정애적 이타심(호혜적 이타주의)

명성 이타심:  평판 누리기 이타주의               




제남 이타주의

♣제 이익 챙기기

♣제 가족 챙기기

♣제 겨레 챙기기

♣제 동류 챙기기     


재남 이타심은 미래에 자기에게 이로움이 올 것임을 전제할 때에야 챙기는 마음. 


진화심리학에서 친사회주의적 친분에 관해 가장 먼저 착안한 부분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핵심 키워드인 유전자 근연도에 따른 친족적 친분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친사회적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사회적 친밀, 곧 동류의식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친족 선택 이론이다.    

  

친족 선택이란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의 후손을 포기함으로써 마치 이타적인 듯 보이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의 자손 ⎯곧 [제남]⎯ 증식을 돕는 방식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려 자기의 긍효를 얻기 위한 이기적 적응의 진화 기제이다.  

    

예를 들자면 유전적 관련성이 적은, 거리가 먼 친족에 비해 가까운 친족에게 친밀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고전 적응도]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개별적 번식 성공의 합을 가리키며 어떤 개체가 유전자를 전달하는 “직접적인 생식적 성공”을 “자손의 생산을 통해 측정”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 《진화심리학》 44p     


이로써 자신의 생존과 직접 번식을 위한 적응적 행동 ⸺곧 고전 적응도⎯이외에 친족을 돕는 행동이 진화 가능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전개한다. 



겉보기 이타심(apparently altruism)


필자는 앞에서 이렇게 물어본 일이 있다*. 나 이외의 사람은 누구이거나를 묻지 않고 모두 남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 이외의 사람에게 이롭게 하면 모두 이타인가?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롭게 하는 것이 이타적 행동이며 이타주의적인가?

*❷이기심과 이타심의 기준인 나와 남의 준별(峻別) ➀ 쪽.     

이러한 이타주의 또는 이타심에 대해서는 [겉보기 이타심(apparently altruism)], [대안적 이타심]이라고도 불리며 필자는 이에 더해 [사이비 이타심] [제남 이타심]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진화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이타심은 위에서 필자가 지적한 요건으로서의 동기적 이타심이 아니라 다만 결과적으로만 남에게 이롭게 된 것뿐인 이타심이라는 점, 곧 동기적으로는 오히려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점과 [온남]에 대한 이타심이 아니라 [제남]에 대한 이타심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행동 패턴은 이타심이 아니라 내용상으로는 이기주의라고 여긴다.    

  

이타적 행동은 행위자가 그 행동에 따를 이익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행동으로, 때로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동을 뜻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당연하게 이타심의 의미와 맞는 주장을 펼쳤다. 예컨대 [친사회적 행동]*이라고 불리는 개념이 그것이다. 친사회적 행동이란 다른 사람을 돕거나 도우려고 행하는 모든 행동으로 남을 돕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행해진 이타적 행동은 물론, 돕는 행위에 따르는 이익을 노린 계산적인 도움 행동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이타적 행동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행동들을 포함한다.


*친사회적 행동 [prosocial behavior] (심리학 용어 사전》 2014. 4.) 단 필자가 약간의 줄을 바꿈.     

진화심리학에서는 진 사회주의 이론을 이타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2가지를 주장하고 있다. 곧 친족이타주의와 호혜적 이타주의이다. 


    

친족 이타주의


동류의식의 하나인 혈족적 동류에 대한 사랑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친 사회적 행동이 선택된 이유는 개인의 생존과 생식능력을 늘리거나 같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다른 구성원의 생식 경향을 늘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상호적 이타성과 트리버스 이야기는 데이비드 버스 49쪽, 418쪽 이하를 볼 것.

 

해밀턴(Hamilton)의 [친족이타주의]는 곧 동류애에 속하는 [제남 이타주의], 곧  [친족 이기심]이다. 

위에서도 이미 초든 바 있지만, 동류의식의 동족 이기심에 따라 형성되는 친족 이타심 ⸺곧 제남 이타심⸺ 은 테의 크기에 따라 [가족 이기심] [친족 이기심] [동족 이기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이타심(?)을 지닌 사람들이 [남의 가족] [친족 이외의 남{이족(異族}]의 사람이라면 그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여덟 명이 아니라 열 여섯 명이라고 해도 그들의 목숨을 구하려 하지는 않을 확률이 매우 크지 않겠는가? 


꿀벌의 경우 침입자가 벌집을 공격할 때 집과 자신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 친 사회적 행동을 나타내는 동물의 경우 희생이나 협력은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의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증가시키는 혈연선택의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혈연선택에서 구성원이 공유하는 유전자가 많을수록 이타성은 더 많이 나타난다(Hastings, Zahn-Waxler, & McShane, 2005). 이것이 바로 [친족 이타심]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친사회적 행동이 선택된 이유는 개인의 생존과 생식능력을 늘리거나 같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다른 구성원의 생식 경향을 늘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적 설명이다.


[친족 이타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친족은 이미 온남이 아닌 제남이다. 유전자가 가장 닮아 있는 대상이 바로 친족이다. 부모는 50%, 형제는 25%, 사촌은 1.25%………… 유전자가 같은 사람(또는 가장 닮은 존재)이 과연 남인가? 그렇다면 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에리히 프롬은 유전자가 50%나 같은 어머니를 남으로 보고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 남을 위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주장이다. 유전자 동질성이 50%라면 그 존재자는 친족 중의 친족이다. 인간에게는 부모를 빼고는 유전적으로 더 이상 가까운 친족은 없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동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이타성의 진화론적 뿌리, 그리고 인간 이타성의 고유한 측면을 알아볼 수 있다. 영장류 동물들은 종 안의 다른 개체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Tomasello & Vaish, 2013). 이 중 사회성이 강한 유기체인 침팬지의 친 사회적 행동, 곧 희생이나 협력으로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의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증가시키는 [동족 동류의식]이 가장 많이 관찰 연구되어왔는데 침팬지는 손이 닿지 않는 물체를 잡으려고 애쓰는 인간을 돕기 위해 물건을 건네기도 하고(Warneken & Tomasello, 2006) 엄마 침팬지는 자신의 음식을 자녀 침팬지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Ueno & Matsuzawa, 2004).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유연관계가 더 가까울수록, 이타적이고 협력적일 가능성이 더 높으며, 따라서 그런 집단을 이룬 종은 진사회성을 향해 진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며 이는 혈연선택의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지구의 지배자》 206p다. 


하지만 침팬지의 친 사회적인 행동은 인간의 친 사회적인 행동과는 다소 다른 면이 있는데, 침팬지는 동료 침팬지와 협동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동료 침팬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침팬지는 나쁜 동료를 피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처럼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으며, 다른 침팬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가에 대해서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Tomasello & Vaish, 2013). 반면, 인간은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을 처벌하며, 자신의 평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친족 이타주의]라는 이름 대신에 [친족 이기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의 이론을 읽는다고 해도 그 내용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결과보다 동기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렇다. 왜냐하면,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남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웅변적으로 선언하여 전 세계적인 공감을 얻은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진화심리학자들이 이제 필요에 따라 유전자에 이타심이 있다는 180도로 달라진 견해를 피력하고 이를 적용시킨 이론들을 무수히 쏟아내고 있는 것은 ⎯물론 모순된 이론이므로 스스로 신뢰를 잃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율배반이며 거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이율배반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이제까지 유전자 유일주의(?)를 관철하다가 [나]와 [남]을 준별할 때에 이르러서는 [나]와 [남]의 구별 징표를 유전자가 아닌 몸(신체)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곧 본질이 유전자인 생명체에서 나와 남을 가르는 단위를 몸으로 바꿔 몸이 다른 존재는 자기가 아니라 남이고 남을 돕는 행위는 이타주의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기(己)]와 남[타(他)]는 어떠한 이론으로도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개념이다. 어떤 경로로 남이 내가 된다는 말인가? 그들은 이론적 모순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흡혈박쥐는 같은 유전자 집단에 속하지만, 신체적으로는 다른 이웃 박쥐를 이롭게 해주는 행태를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다른 모든 사례도 같다. 부모 자식 사이든 형제사이든 이제 유전자는 버리고 신체를 기준으로 하여 [같은 신체]냐 [다른 신체]냐에 따라서 나와 남으로 나누고 이에 따라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구분하고 있다.   

   

필자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인정하는 상부상조, 협동 등의 인간성을 당연히 인정하지만, 이러한 인간성이 그들이 주장하는 이기심과 대립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므로 그들이 과연 A사랑[또는 이타심] 등을 바로 알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이로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있는 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호혜, 곧 서로 혜택을 주고받는다는 관계가 전제되는 관계인 이상 그것이 이타주의의 범주에 들 수 없다. [호혜적 이타주의]에서는 또 긍정적 보상 정애와 나눌 수 없는 측면인 부정적 보상 정애, 곧〘앙갚음(보복)〙에 관해서는 전혀 초드는 일이 없다. 호혜성의 긍정적인 측면에만 착안하여 이타주의적 장점만 강변할 뿐 그 부정적인 측면의 단점은 지적하지도 않는다.


만약에 그러하다면〘보상 정애〙의 보복과 보은은 똑같은 심리의 양면이라는 필자의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며 직접적 호혜적 이타주의는 그와 같은 다른 경우의 심리, 곧〘해타(害他)〙주의에 관해서도 같은 논리로 설명해야 된다. 그리고 호혜적 이타주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보상 정애의 긍정적 형태에 관한 현상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종의 동물들은 친족이 아닌 대상에게도 친사회적 행동을 한다. 보상 정애에서 생명체들은 자기에게 덕을 베풀어 준 대상에게는 그 덕에 해당되는 은혜에 대해, 빚을 진 사람이 빚을 갚으려는 것과 같이 갚아주려는 정애가 발동하는 바이고 이러한 서로 간의 정애의 교환은 [보상 정애]에서 발생하는 긍정적 감정에 의한 갚음{보상}]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호혜적 이타주의]와 똑같은 현상이다. 

     

적응주의를 강화시킨 신다윈주의는 선택 수준이 개체 차원에만 적용된다고 본다. 적응진화의 메커니즘은 자손을 늘리려는 개체의 이기성의 정도이며, 선택 진화의 수준은 항상 개체 차원이라는 주장에 맞닿아 있다. 

이런 주장이 현재 진화론의 주류이며, 따라서 일체의 생물학적 이타심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들은 생물학적 이타주의가 과학적 근거이기보다는 사람 사는 세상이 좀 더 좋아졌으면 하는 정서적 희망의 표현일 뿐이라고 비하한다.     



포괄 적합도 이론 


최초의 혈연선택 개념은 1955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J.B.S(존 바든 홀데인(haldane)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는 195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친족 선택설의 원리를 설명했다. 이후 해밀턴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고전 적응도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기술하기에는 너무 범위가 좁다고 생각하고 친족의 개념 속에 유전자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들이 친족 이타심(kin altruism), 또는 [혈연선택론(kin selection theory)]이라고도 부르는 이 개념은 자연선택은 어떤 생물이 직접 자손을 낳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그 생물의 유전자를 전달하게 하는 특징을 선호한다고 가정하고* 개별적 번식 성공의 합[고전적 적응도]에, 개인 활동 혹은 유전적 친족들의 번식 성공이 미치는 효과를 더한 이론으로 합리화한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 지음 ❰진회 심리학❱ 이충호 옮김 ㈜ 웅진싱크빅 2014. 2. 7. 44p    

 

곧 포괄 적합도 [개체의 적합도] + [방계(傍系) 친족들의 적합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유전자의 어느 한쪽이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총괄적으로 늘어난다면 이타성의 유전자도 종 전체에서 늘어날 것이다.


*《지구의 지배자》 207쪽


예를 들어 사회성이 강한 일개미나 꿀벌의 경우, 자신은 알 낳기를 포기하고 그 대신 자매의 알 낳기를 돕거나 침입자가 집을 공격할 때 집과 자신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극단적인 친사회성의 현상, ―곧 동포애적 현상― 을 볼 수 있다. 자신은 후손 낳기를 포기하지만, 자매의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와 50%~75%*가 같으므로 실질적인 자신의 유전자 복제와 증식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흔히 rB > C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공식으로 알려진 포괄 적합도, 곧 해밀턴의 법칙(Hamilton’s rule)에 따르면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적응적 이득(B, benefit)에 유전적 근친도(r, genetic relatedness)를 곱한 값이 그런 행동을 하는 데 드는 비용(C, cost)보다 크기만 하면 그 행동은 진화한다는 것이다.  

   


방계 이타성


방계 이타성이라는 개념은 개체가 스스로 자식을 낳기보다는 자신이 다음 세대에 기여할 비율 중 일부를 집단의 다른 구성원에게 넘기는 것을 가리킨다. 엄밀한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방계 친족의 유전적 적합도는 높아지고 이타심자 자신의 유전적 적합도는 낮아질 때, 개체는 이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구의 지배자》 206p      


친족 선택설(혹은 친족 이타주의)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으로, 그는 195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친족 선택설의 원리를 설명했다. 

     

◉홀데인은 유전학적으로 형제가 서로 1/2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사촌은 1/8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형제 2명과 사촌 8명 각각의 합은 나의 유전자와 같은 1이 된다고 직관적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느냐?”고 묻자 우스개소리로 “만일 형제 두 명이나, 사촌 여덟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버릴 용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답한 일화로 유명하다. 형제는 평균적(확률적)으로 유전자의 50%를 공유하고, 사촌과는 계산상으로 12.5%를 공유한다. 아버지와 그 형제가 50%, 그리고 그 자손은 여기에서 또 50%를 공유하므로 나와 사촌은 1/8을 공유하는 것이다.


*https://www.jain.re.kr/main/chapter01/sci/detail?menuSn=271&contentsSn=1410 자연주의 인본사상 네이버 캐스트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954&cid=58943&categoryId=58965 최재천     


이타적으로 보이는 유기체의 행위는 ‘겉보기 이타심 ⸺곧 겉보기에는 이타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기주의에 해당하는⸺ 은 곧 이기적 궁극을 위한 수단적 행위로만 여겨졌다. 겉보기 이타심은 집단선택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도 이타적 행위를 개체 선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혈연선택에서 구성원이 공유하는 유전자가 많을수록 이타성은 더 많이 나타난다(Hastings, Zahn-Waxler, & McShane, 2005). 이것이 바로 [친족 이타심]이다. 이런 이론들을 보통 [대안적 이타심 이론]이라고도 부른다*. *최종덕(상지대, 철학)]     


진화론의 이타심은 실은 이타심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이기심일 뿐인 [제남 이타심]이며 양두구육적* 사이비** 이타심이다. *양두구육적: 간판에는 값진 양고기라 표시하고 실제적으로는 개고기[평판이 나쁜 이기심]을 파는 것처럼 명실이 다른 이론이라는 점에서 비유적으로 하는 말.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려는 사이비, 곧 겉보기 현상이란 매우 비슷해서 벼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른 식물인 가라지처럼 ⎯겉은 비슷하지만 속은 다른 사물⎯ 을 가리킨다.      


친족이타주의자들은 이타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이타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의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했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진화론자와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일견 [진화론의 주장]이 자연선택의 경쟁적 속성에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데이비스 버스 지음 ❰진회 심리학❱ 이충호 옮김 ㈜ 웅진싱크빅 2014. 2. 7. 419쪽. 

     

진화론은 이처럼 생물을 이기적인 존재로 여기는 까닭에 생물들의 공고한 이기적인 관점 아래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인간 일반에게서 관찰되는 이타적인 행동 현상에 대해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이기심은 평판이 나쁜 데 비해 이타심은 값지다는 뜻의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해 낸 해결 방식은 인간에게 이타성이라는 개념의 진화된 성격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혈연선택 이론에 대한 진화심리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평가

혈연 선택설은 학계의 다수설이자 정설로 굳어져 왔고,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이 학설의 대부(代父) 중 한 사람이었다. 해밀턴이 학위논문의 통과가 순조롭지 못해 낙심하고 있을 때 그를 지지하고 응원을 보낸 사람이 윌슨 교수였다. 그런 그가 2010년에 네이처에❰지구의 정복자❱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한때 지지했으며, 그 이론의 대중화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 혈연선택 이론과 그 이론의 확장판이라 할《이기적 유전자》이론이 실험실과 야외 조사지에서 수집된 경험 증거와 수학자와 경제학자들이 만든 수학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성 생물의 진화, 이타성의 진화, 협력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그동안 유지해 오던 포괄 적합도 이론의 문제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뒤에 “사회성 진화에 대한, 이 기존 패러다임은 40년이 흐르면서 점점 취약해졌고, 결국 실패했다. 과정으로서의 혈연선택에서 협동 조건으로서의 해밀턴 부등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군체 구성원의 다윈주의적 지위를 설명하는 포괄 적합도에 이르기까지 이 추론 경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만약 동물에게서 혈연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쉽게 바뀔 수 있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일어나는 약한 형태의 선택일 것이 분명하다. 포괄 적합도라는 개념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물학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수학적 허깨비일 뿐이다. 게다가 유전적 도태를 지닌 사회체계의 진화 동력학을 추적하는 데에도 쓸 수 없다*.”라는 비판의 말로 끝을 맺으면서 혈연 선택설에. 대한 일방적 지지를 철회하고 대안으로 거의 이단으로 취급되던 집단 선택설을 포용하는 “다수준 선택”이라는 이론 ―개체 선택에서는 이기심이 작용하고 집단선택에서는 이타심이 작용한다. 곧 집단선택과 개체 선택이 상호 작용한다― 는 [다수준 선택 이론]을 들고나와 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에드워드 윌슨❰지구의 정복자❱ 이한음 번역 사이언스북스 2013.11.14. 212p~ 224p


그러나 다수준 선택이론 ⸺그 이론의 타당성 여부에 불구하고⸺ 에서도 여전히 사이비 이타심에서는 벗어나지 않으므로 우리의 논의에서 보면 이 이론도 역시 참된 이타심은 아니다.     


 

호혜적 이타주의●  


로버트 트리버즈(Robert Trivers)는 혈연선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친 사회적 행동들이 이처럼 무수히 많다는 것을 보고 진화론의 이기성 이론의 허점을 메꾸기 위해 다시 [호혜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진화심리학적 이론의 영역을 넓혔다.


*호혜적 이타심은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 al altruism:) 또는 상호이타성(相互利他性); 상호이타행동(相互利他行動, reciprocal altruism)이라고도 부른다.)    

 

[호혜적 이타주의]란 〘보상 정애〙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안갚음〙을 가리킨다. 진화심리학자들은 호혜 행동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열거한다. 


 각 개체가 개별적으로 식별되어 있을 것, 

 받는 이익이 주는 비용(cost)을 넘어설 것, 

 이타 행동의 이익만을 앗아가려는 배신행위에 대한 방지 장치가 있을 것 등.  

   

직접 호혜적 이타주의. 

호혜적 이타주의의 대표적인 예로는 서로 암수의 역할을 교대하면서 ‘알 거래’를 하는 도루묵과의 물고기 햄릿이나 청소 놀래미가 있다. 청소 놀래미는 큰 물고기의 아가미와 몸, 심지어 입속까지 들락거리며 기생충을 청소해주는 물고기이다. 청소를 받으러 온 물고기는 입속에 들어와 있는 놀래미를 맘만 먹으면 꿀꺽 삼킬 수 있다. 


그러나 한 끼 식사보다 앞으로도 서비스를 오랫동안 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한다. 곧 청소 개체와 청소의 수혜를 받는 개체 간의 청소 [공생 관계]이다…………. 이는 [공생(共生) 이타주의]이다. “남을 위하는 것.” “남을 이롭게 하는 것”. “남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이란 무엇인가? 


청소놀래기는 그를 청소부로 고용하고 있는 남을 위해 청소를 하는가? 아니다. 자기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놀래기의 행동은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철저한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다. 


진화심리학은 이처럼 샘물을 이기적인 존재로 여기는 까닭에 생물들의 공고한 이기적인 관점 아래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인간 일반에게서 관찰되는 이타적인 행동 현상에 대해 곤혹스럽게 생각한다. 이기심은 평판이 나쁜 데 비해 이타심는 값지다는 뜻의 개념이라는 차이가 있어 긍정적이기 떼문이다. 그들이 생각해낸 해결 방식은 인간에게 이타성이라는 개념의 진화된 성격 요인이 있고 이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진화심리학에서 [호혜적 이타심]라 부르는 것은 이처럼 널리 서로 도와 서로 간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애호, 곧 [긍정적 보상 정애]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로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호혜{서로 혜택을 주고받는다}가 전제되어있는 관계인 이상 그것이 이타심의 범주에 들 수 없다. 


그런데다가 호혜적 이타주의에서는 보상 정애의 분리시킬 수 없는 측면으로서의 부정적 보상 정애, 곧 보복에 관해서는 전혀 초드는 바가 없는 것 같다.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에 기반한 호혜적 이타주의 


이타주의적인 현상은 진화 심리학자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강력해서 직접적 이타주의를 넘어서까지도 발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큰 테두리의 이타심까지도 자신들의 이론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리처드 알렉산더(Richard Alexander)는 1987년에 ❰도덕 체계의 생물학(The Biology of Moral Systems)》이라는 책을 내어 호혜적 이타성을 두 가지로 구분한 뒤 트리버스가 발견한 직접적인 공생 관계에 기반한 호혜성 기제를 ‘직접 상호성’이라고 부르고 직접적인 공생 관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특정할 수 없는 대상에 관한 자선과 공감에 의한 [도와주기 현상]의 이타심에 이르는 넓은 박애심과 인간애까지도 포함시킨 뒤에  자신이 발견한 이 현상을 “내가 널 도와줄게, 그러면 나중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막연하면서도 노골적인 이기심의 모토까지 내세우면서 끌어드려 개념화시킨 뒤 ‘간접 상호성’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는 필자가 〘보상 정애〙라고 부르는 개념의 긍정적 보상 정애인 [안갚음]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안갚음이란 자기에게 긍정적인 은덕을 베푼 사람에게 자기도 그만한 값으로 갚아주는 심리이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행해지는 인간 사회의 대규모 협력은 직접 상호성이 아니라 간접 상호성으로 잘 설명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반드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중에 내게 도움을 돌려주어야 비친족 간의 협력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남을 돕는 광경을 보았거나, 도와주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제3 자가 나중에 나를 도와주어도 협력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간접 상호성의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A가 B를 돕는다. 이를 지켜본 C가 A를 돕는다. 왜 엉뚱하게 C가 A를 도울까? 누가 남을 잘 도와주는 호인인지 알아내어 그를 파트너로 택해서 상호 협력하면 당연히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남을 돕지 않는 사기꾼인지 알아내어 그를 파트너로 택하지 않는다면 역시 이득을 얻는다. 간접적 이타심에 나서는 진화적 이유는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함 ―간접 상호성은 평판과 지위로 작동하며― 이라고 소개된다.     

 

어쨌든 A의 선행을 본 C는 A에 대한 평판을 마음속에서 높인다. C는 믿음직한 A에게 먼저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상호 협력의 문을 열고자 한다. (물론 C와 A 사이의 직접 상호성이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다. C가 A를 돕는 광경을 지켜본 D가 C를 돕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도 흔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선보상(先報償: 미리 갚음)]이라고 부른다.      

간접 상호성은 직접 상호성보다 더 섬세하지만 직접 상호성의 대상과 기대가 비교적 명확한데 견주어 간접 상호성의 대상과 기대는 가능성이 약하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직접 상호성에서, 내가 널 도와줄지는 과거에 네가 날 도와주었는가{그래서 내가 너를 높이 평가하는가?}에 달렸다. 알렉산더의 말을 빌리면, 간접적 이타심에 나서는 진화적 이유는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함 ―간접 상호성은 평판과 지위로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집단 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행한 상호 작용에 따라 남들로부터 계속 평가되고 재평가된다.”(85) 


이처럼 간접 상호성은 나와 무관한 제3 자가 남을 돕거나 외면하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소문으로 전해 듣고서 제3 자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마음을 진화시켰다. 알렉산더는 “도덕 체계는 간접 상호성의 체계다.”(93)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이며, 풍자주의자였던 톰 레러(Tom Lehrer)는 아무도 너를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선행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협력을 증진시키려면 관찰 가능성을 높여라.”고 재치 있게 비틀어서 표현했다고 하는데 영리하게도 주도면밀하게 힘을 절약하면서 평판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얻기 위한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주장을 이타주의라고 포장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에 진정한 이타주의자들은 기가 막힐 것이다.    

  

그들은 간접 상호성이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윤리 준칙인 황금률에서도 포착된다고 주장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라고 예수가 산상에서 가르친 ‘황금률’은 착한 일을 해서 평판을 높임으로써 남들로부터 파트너로 선정되라는 간접 상호성을 설파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누가복음 6장 38절)라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마라.”(❰논어❱❰위령공❱ 23장), 또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명심보감❱❰계선편❱)와 같은 말{황금율}도 마찬가지로 모두 간접 상호성의 체계이며 도덕 체계라는 것이다. 

     

도덕 체계의 핵심은 행위들이, “해야 하는 행위인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인가?”에 관한 문제, 곧 [당위성의 문제]이며 남에 대한 도움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진화심리학자들은 이타심이 [선]에 관계되는 도덕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도덕에서 남에 대한 도움이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부분은 당위성의 다음 단계인 〘행동 객체〙의 〘본질 발현〙을 도우려는 동기로서의 선성에 의한다.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에 나서는 진화적 이유가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설명은 흥미로운 예측을 낳는다. 누군가가 내 선행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래서 내 평판이 정말로 높아질지 세심히 챙기는 성향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꼭꼭 감추어질 것이다. 순전히 남들 눈에 들기 위해 착한 일을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해 줄 제3자는 없기 때문이다.    

  

보상 정애적 이타심

보상 정애는 심신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에 대해 같은 질량으로 갚으려는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본성이다. 그런데 보상 정애는 긍정적 보상인 〘안갚음〙과 부정적 보상인〘앙갚음〙이 있다. 이때 대상에게서 받은 은덕을 받은만큼 만큼 되돌려 갚으려는 안갚음{보답}은 이타로 보일 수 있다. 


이른바 호혜적 이타주의는 이런 심리에 터잡고 있으며 바로 보상 정애적 이타심에 해당된다. 그러나 안갚음의 반대인 앙갚음{보복}은 이타주의가 아니다.     


필자는 단언하건대 긍정적 보상심과 부정적 보상심은 똑같은 앙갚음의 양면{한 굴대의 두 바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답의 심정이 깊은 사람은 보복도 깊을 것이라 예상한다. 


만약에 그러하다면 보상 정애의 보복과 보은은 똑같은 심리의 양면이라는 필자의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며 직접적 호혜적 이타심는 그와 다른 편의 심리, 곧 해타(害他)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설명해야 된다. 그리고 호혜적 이타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보상 정애의 긍정적 형태에 관한 현상뿐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명성 이타심 : 평판 이타심

자기 제시의 우월성에 따라 자신의 평판을 높여 명성을 얻기 위해 베푸는 이타심


자선의 많은 경우가 명성 이타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여겨진다. 자기를 널리 드러내어 명예를 억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선은 남을 도와주는 행위로 진정한 [맨 착함]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선행으로 여겨지며 정신적 물질적 우월성임엔 틀림이 없다. 이는 사회적으로 긍정적 평판 ―명예― 으로 이어진다. 자기 제시가 목표로 하는 일이다. 


평판이란평판의 기능 

진화심리학자들은 이타심의 논의에서 불쑥 [평판]이라는 개념을 제출한다. 알렉산더의 말을 빌리면, 간접적 이타심에 나서는 진화적 이유는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함 ―간접 상호성은 평판과 지위로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집단 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행한 상호 작용에 따라 남들로부터 계속 평가되고 재평가된다.”     

평판이 이타심과 무슨 관계

✼평판은 순전히 자기만족에만 관계된다. 

✼평판의 결과는 명예다. 

✼평판을 얻기 위해 ―필자의 방식대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비난{열등수용의 반응}을 받지 않으려 조심하고, 착하고 좋은 일{우월하게 수용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게 되는〘자기 제시 본성〙이 있으며 이 때문에 사회가 긍정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용모를 열등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예쁘게 화장하고 몸을 깨끗이 하는 행동들로 인해 거리가 아릅답게 빛나고 선량한 매너들이 넘쳐나 도덕이 가득한 사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 이타적인 사회가 되는가? 사람들 개개인의 이타심이 늘어나는가?   

   

평판 누리기 이타주의

이 주장은 필자의〘자기 제시〙이론의 일부와 다르지 않다. 자기 제시 이론 가운데 평판, 그리고 특히 긍정적 평판의 이득에 관해서만 고려한 주장이다. 사람들은 제시 본성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다른 용재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행위 ―도덕은 본연적 용재의 [정신적 용재― 의지적 용재]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 역시 사람들이 결코,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이며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오히려 은폐시키려 하는 부분이다. 


평판 누리기 이타주의는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즉 사심 없는 선행]이라고 소개되지만, 그 속마음은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나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원대한 만족을 얻으려는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타심이 아니다.     


평판 누리기 이타심은 

자기 제시의 수용 결과의 우월 판정을 바랄 뿐인 위장 이타심이다 

평판은 자기를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본성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 도덕률이 아니다. 도덕률의 핵심은 남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나 평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해야 하는 행위인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인가?]를 판정하는 것이다. 


공익 활동에 동참하거나 수재민에게 성금을 내는 등의 선행은 참된 이타적 행동이 아니라 평판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얻기 위한 일종의 투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이 있다. 모든 선행이 반드시 평판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협력 혹은 배신을 남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만, 나의 협력이 내 평판을 높일 수 있다. 곧 누가 협력하고 누가 배신했는지가 집단 내 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면, 사람들이 더 흔쾌히 협력하리라고 간접 상호성 이론은 예측한다. 

    

요약하자면 일부 선행은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써 나중에 남들로부터 파트너로 낙점받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간접 상호성 이론이다. 따라서 누가 협력하고 누가 배신했는지가 집단 내에 쉽게 알려지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실생활에서 협력을 더 꽃피울 수 있다. 


여러분이 공공 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층이라면, 시민들로부터 협력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라며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s://sciencebooks.tistory.com/1141?category=763440



●진화심리학적 이타주의 비판


위의 소개 글을 중심으로 초들자면 자기 제시 이론 가운데 평판, 그리고 특히 긍정적 평판의 이득에 관해서만 고려한 주장이다. 사람들은 제시 본성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싶어 하며 결코,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 않고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오히려 은폐시키려 한다. 


이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며 그 속마음은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나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원대한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는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사심 없는 선행}이라고 소개했지만,  의지의 도덕성과 나와 남의 본질 유추에 의해 형성되는 2종의 이기심의 형태. ◉협력적 동맹: 데이비스 버스의 진화심리학》 418쪽 

    

그들이 흔히 이타주의의 사례로 거론하는 것은 먹이를 얻지 못한 동족에 대해 자신이 구해 온 피를 토해주는 [흡혈박쥐]가 대표적이다. 흡혈박쥐의 사례는 포유동물에서는 거의 유일한 예라고 한다.* *데이비드 버스 423~4).


그들이 설명하는 흡혈박쥐의 이타성을 살펴보자. 흡혈박쥐는 최대 12마리의 어미와 새끼들로 이루어진 무리들이다. 수컷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무리를 떠난다. 


흡혈박쥐는 낮에는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날카로운 이빨로 소나 말의 피부를 찢은 뒤 그들의 코에 위치한 열 감지 분자인 TRPV1를 통해 가장 마시기 좋은 정맥을 찾아낸다. 흡혈 중에 혈전 방지 효소인 DSPA (Desmodus rotundus Salivary Plasminogen Activator)를 분비해 피해 동물이 흡혈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지만, 그래도 피해자들은 가끔 꼬리를 휘둘러 박쥐를 쫓기도 한다. 그래서 박쥐가 흡혈에 성공하는 비율은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다르지만 2살 미만의 어린 박쥐들의 실패율은 33%에 이르고 그 이상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93%의 성공률에 이른다고 한다.

      

흡혈박쥐가 피를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기간은 고작 3일뿐이다. 결국, 흡혈에 실패하는 비율이 33%라면 며칠에 한 번씩은 실패하는 셈이라서 늘 굶어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흡혈박쥐의 생존 기간은 3년에 지나지 않는데 실제로는 평균 15년 이상이나 산다. 그 이유는 흡혈박쥐가 어김없이 자신이 빨아먹은 피 일부를 게워내어 다른 굶주린 박쥐에게 주어, 죽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피를 배불리 먹고 돌아왔는데도 나눠주지 않는 얌체 박쥐가 있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그 녀석이 다음에 굶을 때 다른 박쥐들이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윌킨슨의 연구(1984)에 따르면 박쥐가 피를 나누어 주는 대상은 일정한 조건에 맞는 경우였다. 

ⓐ이전에 자기에게 피를 나누어준 친구.

ⓑ전체 시간 가운데 최소한 60% 이상을 가까이에서 같이 지낸 친구.

ⓒ죽을만한 시간이 13시간 전에 이르러 먹이가 절실한 친구.     

아마도 위의 경우에서 참된 이타심을 찾는다면 ⓒ의 경우뿐이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이타주의는 올바른 이름([이기심], 또는 [제남(제 편) 이타주의])로 철저히 되돌려놓아야 한다. 이타라는 말 대신 [친사회 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알맞다*. 


진화심리학처럼 이타성의 대상이 친족이나 호혜적 대상이 아닌 사람들은 사랑할 수 없는가? 없다면 왜 그러하며 있다면 그들은 남인가? 나인가?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많은 종의 동물들은 친족이 아닌 대상에게도 친사회적 행동을 한다. 친사회주의적 친분도는 고전 적응도 이론의 협소한 한계를 벗어나려고 이타성[동류끼리의 친분]을 넓힌 혈연 선택이론으로서도 해결할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한 현상임이 드러났다.    

  

진화론의 이타주의는 유사 이타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진화론에서 이타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사실은 [제남 이타주의{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이러한 [겉보기] 이타주의는 이타주의라는 개념에서 철저히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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