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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Apr 10. 2024

문화의 형성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2] 매체와 문화

[2] 매체와 문화     


매체의 영향력     


①직관적 매체의 영향력

아무리 명석한 이론가라 해도 해수욕장이나 공중목욕탕에서는 그곳의 관중들에게 감명 깊은 이론을 개진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한 마당에서 들어내기에 알맞은 것은 개념적 내용이 아니라 직관적 내용이겠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당에서는 끼리들 사이의 관심이 신체에 집중되기 때문에 개념적 내용인 지혜가 아니라 직관적 내용인 신체적 용재의 호소력이 훨씬 효과적이다.       


언어는 개념적 내용의 전달 수단이다. 몰론 언어도 설명의 묘법(描法)에 의해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관한 직관적 정세를 전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언어의 묘법은 우리의 사각과 청각에 정세의 현상을 직관적으로 펼쳐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동화 편향(同化 偏向)〙을 촉발시켜 상상토록 유도할 뿐이다.    

            

그래서 언어(문자 포함)를 사용하는 문학이 직관적 대상인 배경이나 외모를 눈에 선하게, 또는 감미로운 소리가 귀에 들려오듯이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미술이나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직관적일 수는 없다.                


문학은 개념을 통한 오성에의 진위 판별을 추구하는 이론적 탐구 작업이 아니라 직관을 통한 감성에의 정취적 감흥을 촉발시키는 예술이기 때문에 직관적 정세의 묘사에 주력하고 있지만, 그의 수단인 언어의 성질이 직관보다 개념의 전달에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에 문학은 미술이나 음악으로는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좀 더 내적인 측면, 즉 인간의 심리나 논리적인 분야의 표현에는 위의 두 대표적인 직관적 예술에 견주어 월등히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그것은 순전히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묘사의 방식의 근본적인 성격 ┈직관적 성격과 개념적 성격┈ 에 좌우되고 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개념적 매체는 추상적인 관념이나 사유를 전달하는데 적합한 것으로 음성 언어를 비롯하여 모든 문자 언어를 사용하는 매체들이며 그 대표적인 것은 서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화보가 그러하듯이 모든 서적이 개념적 사상(事象)의 전달을 본질로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사 정보 잡지나 신문·만화·사진첩 등은 서적이고 또 일부는 문자로 표현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직관적 사상(事象)의 표현에 치중되어 있다. 

              

개념적 사상(事象)의 대표적인 전달 매체인 서적은 직관적 사상의 전달에서처럼 한 뭉치의 사상을, 공간적 연장성에 의해 덩어리 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에 입각해서 체계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사물의 본질과 인과관계, 이유 등을 통해 그 의미와 가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상이 비록 우리의 직관에 의해 쉽게 수용할 수 있고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본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현상 그 자체만으로는 사상(事象)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해 낼 수 없다. 서적에는 제시자의 정신 내용이 (직접적으로) 펼쳐져 있고 또한 사물의 현상이 다만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현상의 배후인 근거와 의미의 해석 형태로 펼쳐져 있다.                


물론 이 진술들이 늘 사상을 타당성 있게 해석하거나 의미와 가치를 정당하게 탐구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의 반성과 집적으로 인해서 문화는 점차 이성화의 방향으로서의 진행에 박차가 가해지는 것임엔 틀림이 없다.                

이처럼 각각의 매체는 그들이 표현하려는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매체의 고유한 특성에 따르는 독특한 분위기로 수용자를 유도하기 때문에, 사회의 교호를 주도하는 매체의 성격에 따라서 사회 가치관의 성격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                     

②개념적 매체의 영향력          

개념적 매체가 교호의 주요 수단인 사회의 특성은 이성적 경향을 띠게 되고 직관적 매체가 교호의 주요 수단인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기성적 ┈감성적┈ 경향으로 흐른다.               

인간은 모두 기본적 용재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 용재의 내용과 수준은 다르다. 생의 의도를 제시 활동에 두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제시를 시현할 용재의 전달 수단인 매체의 특성에 따라 그의 세속적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사회로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매체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내용을 취급하고자 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매체의 특성에 적합한 주 용재의 소유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그의 제시 의도를 충족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꽃을 소개하는 데에는 라디오보다는 TV나 원색 화보가 더욱 효과적이고 낭랑한 멧새 소리를 전달하는 데에는 화보보다는 라디오가 더욱 적절하다.                

그래서 사회를 주도하는 매체의 성격에 적합한 주 용재(부 용재도 마찬가지다.)의 소유자는 각광을 받기가 쉽고 주도적 매체의 특성에 부적합한 용재의 소유자는 치열한 제시 활동의 경쟁에서 소외되거나 도태되기 쉽다.                

이러한 까닭에 주요 역할을 하는 거대한 매체의 특성에 부합하는 용재의 소유자가 그 제시 마당의 “왕자”가 될 것임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필자는 제시와 매체의 상호 관련성을 그 원리적 측면에서 고찰했다.      

          

그러면 이러한 사정은 매체의 역사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 다음 절에서부터 이 점을 개괄하고자 한다.                    


❸말{언어}과 글자{문자} 1 

➀몸짓 말{체화(體話)} 시대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아마도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개념적 교호의 수단으로서 수화와 비슷한 방법, 곧 손짓과 발짓을 포함하여 온몸을 움직여 의사를 표현인 비언어적 표현{몸짓말{체화(體話}}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릴 듯한┈ 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리라고 상상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70~93%)이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상철 지음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일지사 간. 1988. 8. 30. 54p. 단 %는 기사 내용을 필자가 개괄해서 표현한 것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에 언어가 생겨서 서로 간의 의사 전달은 대단히 명백하고 편리해졌다. 특히 간접 전달에서는 언어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곧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간접 전달이 가능했다고.        

        

언어에 의한 간접 전달이 직각에 의한 직접 전달에 비해 인류의 문화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문제는 일반적인 상상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것이었음은 몇 번씩의 강조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언어가 사용되기 이전의, 그래서 간접 전달이 불가능했던 시절의 인간의 교호는 동물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몸짓말을 위주로 전개했을 원시적인 것이었다. 곧 개념화된 정신적 내용의 교호가 아니라 직관에 따르는 신체적인 성질의 교호라 하겠다.     

           

몸짓이나 간단한 언어가 사용되었겠지만, 이것은 처음엔 직관적 용재의 설명을 위한 보조 수단이었으리라. 거의 직관에만 의존하는 이러한 교호의 양식은 원시적인 문화를 형성시켰을 것이다. 


언어로써 전달했을 의견의 내용들이 비록 직관에 의한 수용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외적ㆍ감각적ㆍ신체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을망정 언어가 아니라면 전달할 수 없었을 이러한 사실에 관한 제시 내용을 제3자인 수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제시 본성의 의도 달성과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➁소리 말{언어} 시대      

그 다음에 간단한 사고 내용, 감정, 의견 등을 거쳐 점차 고차원적인 정신적 활동인 사유의 내용이 언어를 통해 교호되었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곧잘 인용되는 중요한 징표인 언어의 본질적 특성은, 이것이 새의 지저귐이나 짐승들의 울부짖음처럼 단순한 상황의 묘사나 감정의 토로 등 현상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원시적 차원을 넘어서서 사상을 개념화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현상계의 잡다한 사상 가운데에서 인과관계를 파악, 계열화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사상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개념화하고 개념과 개념의 관계를 포착하여 체계적인 판단에 이른 뒤에 다시금 판단과 판단을 결합하고 추리해 나감으로써 점차 복잡한 사상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언어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언어를 통해 이처럼 고차원적인 사유를 전개해 나가고 언어를 통해 이를 제3자에게 간접 전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외적 현상의 제시와 아울러 내적 사유의 제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간접 전달의 수단인 언어는 외적 현상의 묘사보다는 내적 사상의 개념적 전달에 본질적인 적합성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 용재의 소유자가 서서히 제시 활동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정신적 내용이 제시 확장에 유리하기 때문에 우월한 평가를 받게 되고 우월한 평가를 받게 되는 상승적 효과 때문에 정신적 용재가 선호됨으로써 정신적 용재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발전해 나가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결과 인간 사회는 여타의 동물의 직관적 제시 문화(?) 형태에서 훨씬 앞서 나간 개념적 제시 형태로서의 정신적 문화가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이는 다음 단계인 문자 시대에 이르러 찬란히 만개되는 것이다.                     


➂글자{문자(文字)} 시대     

문자의 특성은 제시자(발신자)의 의사가 불변의 기호를 통해 영구히 남을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특성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음성 언어 시대와 문자 언어 시대를 구분시켜 준다. 

               

첫째로, 제시자의 태도를 매우 신중하게 만들었다는 점. 언어는 발하자마자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책임감이 별로 엄중하지 않지만, 문자는 증거력이 강해 경솔하게 표현해 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정신적 사유의 내용과 방법이 더욱 정치해졌을 것이라는 점. 보존 능력과 가시(可視) 효과가 큰 문자를 사용하여 사유의 성과를 점차 축적시키므로서 사상이 체계화될 수 있으며 이론 전개의 논리성이나 이론 내용의 다양성이 점점 극대화하여 정교하고 치밀해졌다는 점은 우리가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점이다.  

              

이래서 문자 시대의 저자들은 언어 시대의 화자들보다 더욱 신중하고 정치한 묘사와 이론을 전개시키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되풀이 말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거의 없는 불변의 문자적 증거로서 사실을 기록하고 사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태도와 사려 깊은 이론의 개진이 불가피하다.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기를 우월하게 제시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열등 수용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자의 특성이 이와 같기 때문에 문자 시대의 정신적 제시자들은 철학적 사상과 논리적 이론ㆍ문학적 작품 등 문자를 통해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정신적 개념적 용재를 연마하고 창조하는데 더욱 정진하게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편 문자에 의한 이론적 사유는 직관적 사상(事象)보다는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보편화된 의사 전달 수단이지만 숙달을 위해 언어보다 더 어려운 과정을 추가로 거쳐야 했기 때문에 처음엔 일부 층만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언어와 다른 점이었다.

               

이로 인해 이 유력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일부 계층이 사회의 지도적 지위를 점유하게 되고 또한 이 문자사용의 기술(?)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동류들에게 전승됨으로써 우세 및 득세 집단을 형성, 특권적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이처럼 문자의 사용과 그 결과인 지식의 과점(寡占)으로 정신적 용재가 사회의 우세 용재가 되어가자 자연히 이 분야에 대한 탐구가 심오한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이 분야에 재예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평가를 얻게 되었다.                


다른 모든 용재 분야의 득세 과정도 다 그러한 바와 같이 개념을 매개 수단으로 하는 정신적 용재의 득세도 이것이 우월한 평가를 받게 되자 이러한 우월 지위를 획득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고 우수한 자질의 인재들이 모이기 때문에 자연히 더욱 우월하게 평가되는 등 상승적인 작용을 하게 됨으로써 정신 문화는 그 전성기를 맞게 되었을 것이다.                


문자 시대의 초기에 시인ㆍ서기ㆍ신관 등 두각을 나타내던 문필가들은 뒤에 역사가ㆍ사상가ㆍ과학자ㆍ문학자 등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이 당시의 사회를 지배하며 군림하던, 제시 활동의 주류가 된다. 


언어는 청각을 통해, 문자는 시각을 통해 수용됨에 틀림없지만, 이 점에 주목하여 언어를 청각적, 문자를 시각적 매체로 규정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청각적인 것은 사물의 음향인데, 언어를 통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음향이 아니라 개념이며, 시각적인 것은 사물의 형상인 바, 문자를 통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어문}에 의해 촉진된 개념의 사용은 인류 문화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어문을 통해 제시를 전달한다는 것은 시간ㆍ공간 및 다수인에의 확장이라는 제시의 의도에 전적으로 합치하는 것이므로 어문은 무엇보다도 제시 본성에 의해서 애용될 수 있는데, 어문의 특성상 감각적 제 형상의 묘사에 의한 현상적 사실의 전달보다는 오성적 개념에 의한 개념적 본질적 사실의 전달이 더 적합하다.     

           

따라서 문화적 특성은 외적ㆍ신체적ㆍ현상적 측면보다 내적ㆍ정신적ㆍ본질적 측면으로 기울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어문은 신체적ㆍ경험적 측면보다 정신적ㆍ관념적 측면의 발전을 촉진시켜 정신적인 가치관들이 우월하게 평가되고 유력하게 되는 빛나는(?) 문화유산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문자 시대는 전기의 필사 시대를 지나 인쇄 시대라 할, 후기에 이르게 되는데 인쇄 시대의 특징은 두루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정보의 다량 전파의 시초라는데 있다. 이 역시 필사 시대와 같이 일방적 제시이기 때문에 다량 정보의 일방통행이 인쇄 시대의 특징인 것이다.                


인쇄 시대의 기술적 진보는 눈부신 바가 있다. 최초의 목판 인쇄 시기를 지난 얼마 후에 이미 내구성이 뛰어난 금속 활자에 의한 인쇄 문화기가 전개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광학적ㆍ전자적 방법에 의한 초고속 인쇄 시스템이 속속 개발ㆍ실용화되는 실정이며 컴퓨터에 의한 무한 전달의 체제를 구축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인쇄술의 발명과 발전 및 보급으로 말미암아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문자의 사용자가 점차 확산되어 지금은 소수의 문맹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문자를 구사하게 되었고 동시에 정신문화의 세속화가 촉진되었다. 그래서 문자의 대중화가 실현된 현금엔 정신의 심오하고 정치한 질적 발전보다는 다양한 지식의 양적 팽창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바이다.                    


❹직관적 매체 시대

①시청각적 매체의 등장     

19세기 초 니에프스와 다게르에 의해 인류 최초의 사진술이 완성되었고 얼마 뒤에 에디슨과 딕슨ㆍ젠킨스 등은 영화기를 발명, 라디오ㆍ축음기 등 청각적 매체와 함께 시각적 내용의 다량 전파의 길을 열었다.         


이들 매체의 출현은 신체적 • 물질적 여러 용재에 의한 직관적 제시에 매우 유리한 계기를 만든 셈이다. 거의 직접적 방법에 의한 소량의 제시 밖에는 불가능했던 직관적 제시 용재들의 제약과 단점들이 이들 시청각 매체들에 의해 해소되어 선명하게 전파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매체들이 정신ㆍ지위ㆍ재화 등의 용재보다 신체적 용재의 제시에 월등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컨대 영화의 제작에는 제작ㆍ감독ㆍ시나리오ㆍ분장ㆍ소품ㆍ조명ㆍ촬영ㆍ음악ㆍ미술………등등의 많은 분야가 참여하지만, 수용자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인각되는 것은 다른 분야가 아니라 작품의 표면에 나타나는 화면 중의 인물들, 특히 그 주연 배우들이며 그 밖의 분야의 질 높은 기술과 창의성은 일반 관중에게는 거의 도외시되어, 주역들의 용모ㆍ패션ㆍ태도 등 신체적 제시를 화려하게 장식해 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직관적 매체가 신체적 용재의 효과적인 제시 수단이라는 점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되리라고 믿는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에 의해 제시가 유력하게 된 신체적ㆍ현상적 ∙ 직관적 용재 분야는 TV의 출현으로 거의 완벽한 우세 동위ㆍ득세 동위의 지위를 구축했다고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다. TV 수상기의 급속한 보급으로 영화라는 다소 제한적 매체에 의해 성장한 직관적 제시 용재들은 무한대한 제시적 확장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개념을 위주로 한 정신적 세계와 직관에 의존하는 본능적 세계 증에 어느 쪽이 수용에 쉬울 것인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수용자를 사로잡는 것은 우수한 지능을 사용해 긴 시간 동안 노력해야 파악할 수 있는 난해한 개념적ㆍ정신적 의미의 세계가 아니라 선천적인 본능에 의해 직접적으로 감득할 수 있는 직관적ㆍ신체적 분야이다. 원색 인쇄와 음향기기·컬러 TV 등의 출현으로 다양화된 감성의 세계가 푤쳐졌다.      


전 세계 미녀 선발대회ㆍ보디빌딩 대회ㆍ대중가요ㆍ세계적인 대규모 체육 대회는 물론 각종 경기 등의 번창은 이들 대량 매체의 발달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현상이다. 인쇄술의 발달 없이 성현들의 세계적 명성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임과 같이.        

       

②시청각적 매체의 영향     

문화가 개념적일 때에는 그것이 사회의 우월한 가치관으로 군림하더라도 대중화할 수는 없다. 개념의 체계화에 따르는 정신 작용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것이어서 대중 전체가 이를 수용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가 직관적일 때, 더구나 통속적일 때 그것을 향유하는 것은 비교적 손쉬운 일이다. 그것은 이미 본능에 주어진 것이어서 거의 학습의 고통 없이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대중이 사회 가치관적 우열 평가의 견인차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문화가 내실보다는 외식에 치우치고 정신보다는 신체에, 개념보다는 직관에 주력해서 외식적으로 화려ㆍ현란한 포장지에 싸인 공허한 상품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문자를 사용하는 서적이 중요 매체인 시대에는 그 저자들인 사상가ㆍ학자ㆍ문인 등이 시대의 지도자로 부상하며 라디오가 중요 매체인 시대에는 성우(聲優)나 가수 등 우월한 음성 기능의 소유자가 각광을 받는다.                

영화나 TV 매체의 주역인 영상 시대의 주역은 배우나 탤런트들이다. 이들 직관적ㆍ외식적 용재의 소유자들이 대중의 감각에 영합되어 그들을 즐겁게 하는 우상(偶像)이 되는 것이다.


현대는 영상 매체의 시대이다. 그래서 원래는 음성에 의한 청각적 매체에 적합한 가수라 해도 음성이나 가창력에 앞서 용모와 체격과 율동 및 패션에 의한 자태의 우수성이 없으면 각광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청각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우수한 시각에 영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대와 사회의 제시 용재의 추세, 즉 사회 가치관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인해서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영향을 받는 것이며 미래의 인류 사회의 성격은 미래에 어떤 매스 미디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물결의 배후에는 결국 자기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제시 본성이라는 근원적 심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필자는 다시금 강조하는 바이다.     

          

*필자가 신호의 성격에 따라서 매체가 주는 효과에 차이가 있음을 논하면서 이제 매체의 취급 내용에 따라서 효과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점에 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신호 ⎯이것이 매체의 특성을 결정한다.⎯ 가 문화의 성격의 주인이기는 하나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정보의 내용도 또 하나의 주인(主因)이기 때문이다.    

                      

③디지털 매체 시대

이기적인 인간들이 기술을 사용하여 현상을 조작하는〘능사기(能邪期: 사특함에 능한 사람이 활개를 치는 시기)〙      

지식을 사람보다 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되어 매체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시대. 매체의 발전으로 현상 파악이 좋아져 진위를 가리게 된 것은 인간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긍정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와 비례해 인간성이 이를〘정도행: 바른 길〙으로 수용하지 못하고〘사도행: 못된 길〙으로 수용한다면 세계는 능사(能邪〙적 영리함이 횡행하여 음모 조작의 확대 재생산에 따른 속임수와 사악함이 팽배해질 것이고 이는 극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진(寫眞)은 진상(眞相)을 베끼는 기술이다. 그런데 사도행에 숙련된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사진(寫眞: 참된 현상)의 베낌]이 아니라 [사진(詐眞: 참된 현상을 속임]이 되고 있다.  인간들은 좋은 기술을 악용해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진상을 과장하고 위조하는 등 그럴듯한 거짓을 양산해 내기 바쁘다.                


매체가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해도 이의 사용자가〘능사자〙라면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의 내용은 사악할 수밖에 없다. 선(善)의지만이 선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무리 유용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선의지가 없다면 오히려 악용한다고 주장한 칸트의 지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실과 가치가 조작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은 믿음이 사라지고 의혹만이 판을 치자 진상 파악에 늘 의심이 많아지며 거짓과 속임수에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불신과 불안 속에서 괴롭게 살아가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에〘정도행〙자보다〘사도행〙자가 더 우세하면 그 사회는 어두운 세계가 되고 사도행자보다 정도행자가 우세하면 밝은 세상이 된다는 점이다.   



이 글은 필자가 집필중인 ❰인성론❱의 [교호]에서 옮겨 적은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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