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어 서서

창조를 위한 용기가 필요한 시간

by 믿을맨

2. 잠시 멈추어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다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들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칼 융 (심리학자, 의사)


몇 년 전에 가족들과 라오스와 태국으로 해외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어린이캠프사역 겸 가족여행의 일정이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을 생각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두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각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여행용 가방에 담았다. 상비약도 넣고 고추장과 참치통조림, 김도 넣었다. 여벌의 옷과 신발, 수영복도 챙겼다. 그 외에 각자의 물품을 넣고 여권도 챙겨두었다. 그중에 어떤 것은 다시 가져올 것들이었고 어떤 것은 사용하고 버릴 것들이었다. 아무튼 그 가방 속 짐들은 여행중에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가방에 기념품과 선물들을 담아 왔다. 여행지에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여러 곳을 돌아보며 사진도 찍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닫게 되고,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러분은 어떤 여행이 떠오르는가?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라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표현처럼 여행은 잠시 멈추어 새로운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유용한 도구가 되곤 한다.

여기 아주 특별한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있다. 저술가요 상담가인 리처드 라이더가 쓴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위즈덤 하우스 2002> 에 보면 12명의 중년의 사람들이 ‘내적 탐험’ 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품고 동부 아프리카 세렝게티 고원지대를 여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에서 자신과 부딪혀본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이들은 여행 도중 마사이 족의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족장 코이에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코이에는 일행이 가지고 다니는 배낭에 대해 궁금해했고 리더인 딕은 배낭을 열어 수많은 도구와 소품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 때 족장 코이에가 질문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이것은 그렇게 많은 짐을 지고 온 이유에 대해, 나아가 평생에 걸쳐 짊어져 왔던 모든 짐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매우 강력한 질문이었다.


12명의 중년들에게 그러했듯 코이에 족장의 질문은 우리를 향한다. 지금까지 배낭에 인생여행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넣고 왔다면 한 번쯤 잠시 멈추어 점검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여전히 그런지, 새롭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목표와 방향이 올바른지 돌아보게 한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잘 알려진 고도원 작가는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이며 명상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을 운영하고 있다. 2001년 8월 ‘희망이란’ 첫 글로 시작한 아침편지는 20년이상 계속되며 오늘날 4백만명에 가까운 독자들에게 좋은 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시절 제적을 당하고 수감생활과 강제 징집, 그리고 사기를 당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을 때에도 그 모든 시련이 앞으로 쓰게 될 글에 불쏘시개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초긴장 상태로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을 만들고 일어서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십 대 후반에 이렇게 번아웃으로 쓰러졌던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명상과 아침편지 쓰기였다. 그후로 이어온 아침편지는 그가 꿈꾸던 글쓰는 인생을 살게 하는 통로요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고마운 동료가 되었다.


“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이 나기 전에 멈춰야하듯이 사람도 멈추지 않고 강제로 계속 달리면 강제로 멈추게 된다. 그러기 전에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멈춤의 시간을 가지라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인생은 앞을 향하지만 깨달음은 뒤를 향한다“ 는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우리는 잠시 멈추어 삶을 돌아봄으로써 귀한 깨달음을 얻는다. 중년이든 청년이든 가끔은 멈추고 지나온 여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나온 인생 여정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과 만남들이 있다. 지나온 인생 여정을 돌아볼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 여정 속 다양한 만남과 사건들이 재료가 되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쓰여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이 만난 특별한 사고에 대해 ‘사고를 당했다’ 가 아니라 ‘사고를 만났다’ 고 말하는 사람이다. 2000년 이화여대 재학생이었던 이지선씨는 스무 세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전신 55퍼센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4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으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후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재활 상담학 석사,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귀국하여 2017년부터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지내왔다.

” 힘든 시기에도 저를 지탱하게 해 준 건 글쓰기였어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손가락을 잃고 나서였어요. 손가락을 정리하는 수술을 받을 즈음, 떼어내야 하는 부위가 팔 전체가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여서, 더 많이 잃지 않아서 감사할 수 있었어요. 저는 진심으로 제게 남은 것들, 지금 가용한 존재가 더 강렬하게 고마워졌고 이 마음으로 남겨진 엄지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외상 후 성장을 연구한 학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표현적 글쓰기"를 권한다고 해요. 당시 제 모습을 보면 하루 24시간 슬프고 외롭고 괴로운 일만 있을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 희로애락이 있었거든요. 혼자 조용히 글을 쓰면서 고통을 토해내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모니터는 제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모니터를 상담자 삼아 마음을 털어냈죠.“

글쓰기를 하면서 절망할 수 밖에 없던 시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된 그녀, 믿음과 희망으로 재기하여 이제는 자신처럼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돕고자 애쓰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최근에 쓴 <꽤 괜찮은 해피엔딩 문학동네 2022> 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난 외에도 우리 인생에는 특별한 만남들이 있다. <인생 여행 - 인생을 빛나게 하는 13가지 만남 진재혁 생명의말씀사 2017>에 보면 세상, 나, 꿈, 친구, 갈등, 배우자, 자녀, 고난, 원수, 스승, 스트레스, 기적, 죽음 등 13가지 만남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열거된 주제들과 관련하여 각자 어떤 이야기들이 떠오를 것이다. 어떤 것은 미소가 지어지는 일인가 하면, 어떤 것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때로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의 방향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저자는 이것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 으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어느덧 중년이 되니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읽히고 발견되어야하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들려질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고유하며 또한 그 분 안에서 소중하고 특별하다.

미국의 저명한 상담사요 심리학자인 롤로 메이는 <창조를 위한 용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오직 당신만이 지니고 있는 그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나아가 당신이 속한 세상에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그곳에 속한 모든 사람조차 배신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든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여기까지 왔다.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서 각자의 이야기와 내면의 목소리들이 있다면 그것을 글로 표현해보자. 그러면 그것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새롭게 써내려 갈 힘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각지도 않은 이들과 연결되어 새로운 길을 열고 희망을 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고도원 작가나 이지선 교수가 그랬듯이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창조를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시편 90편 10~12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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