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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1.겨울왕국, 시라카와고

by Luna

날이 더워 밖은 돌아다니지 못하겠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사진과 함께 토크타임을 즐기기로 한날.

이 날 충동적인 여행의 서막이 울리기 시작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둘이 만나면 밥먹고 커피마시는 시간만 빼면

이야기가 여행으로 시작해서 여행으로 끝난다.


"겨울에 삿포로 한번 가보고 싶은데 너무 비싸더라."

"삿포로도 예쁜데 시라카와고라고 봤어? 거기 사진 봤는데 꼭 가봐야할 곳인것 같아."

"그래? 비행기 직항있어? 한번 검색해봐야겠네."


이야기 시작 10분도 채 안되어 시라카와고 사진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하여 항공권 가격 검색을 바로 시작하였고, 항공권 가격을 보다 최저가로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를 해버렸다.

시라카와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지 1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작년 8월에 항공권을 구매하였고, 따로 연차내며 눈치볼 필요 없이 올해 구정때 우리는 목표지인 시라코를 향해 날아가게 되었다.



겨울 여행은 스키장 가는것을 제외하곤 거의 처음이었기에 설레는 마음 한가득, 추위에 덜덜 떨다 등이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한가득 싣고 그렇게 시라카와고로 출발.

사실, 시라카와고를 가기 위해선 나고야를 꼭 거쳐야만 했다.

나고야 공항에서 다카야마, 다카야마에서 다시 버스 타고 시라카와고.

3박 4일동안 숙소를 3번이나 갈아치우며 들어간 시라카와고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눈밭을 꼭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하나씩 미션을 성공시켜 나갔다.


어쨌거나 그렇게 타카야마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던 중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 나 여기 온거 정말 잘한 것 같아."


같이 버스를 타고 있던 관광객들 모두 각자의 언어로 감탄사를 내뿜기 시작할 즈음,

시라카와고 마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시라카와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내 키보다도 훨씬 높게 쌓여있는 눈들을 보며 우리는 갑자기 감성이 충만해져서

연신 "예쁘다, 예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때로는 혼자.

여러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끼리 뒤섞여 서로의 말을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나와 같이 감탄을 하며 아름다운 이 풍경에 넋을 빼앗긴 그런 모습들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내 키보다 더 쌓여있는 눈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마을을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어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들.


어떤 이들은 눈을 산처럼 쌓아놓은 곳에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하였고,

어떤 이는 큰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와 아름다운 풍경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연신 고군분투 하는 모습들.

이 모든것이 자연이 주는 선물과도 같이 느껴졌다.



2월의 시라카와고는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겨울은 우리나라가 원체 추웠던 관계로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이곳에 도착하여 우리가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관광객들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어서 매우 여유를 즐기며 걷고 또 걸었다.

시라카와고 마을 구석구석 전부 다 눈에 담아가기로 작정한 것 처럼...





작은 신사안의 설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들어갈때쯤 작은 사고가 하나 일어났다.

나와 같이 동행하던 친구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것이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고 살짝 엉덩방아를 찧는 정도였고, 넘어지고 난 직후에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것마저 재미있다는 듯 동네가 떠나가라 깔깔깔깔 웃어 넘겼다.


길 옆에 지나가던 작은 고양이도, 눈위에 뛰어놀던 시바견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가는 줄 몰라하던

중국인 가족들도 그 날 따라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시라카와고 마을을 걷다보면 집 지붕이 전부 유럽처럼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과,

집들이 전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곳은 일본 내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오는 지역임과 동시에 세계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지역중의 하나라고 한다.

때문에 눈이 지붕에서 빨리 떨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햇볕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점점 지붕도 뾰족해지고, 해가뜨는 한 방향으로 집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라카와고 마을은 작은 알프스라고 불리울 만큼 눈의 마을로도 유명하지만,

봄이 되면 지붕의 볏짚을 속아내는 것 또한 장관이라고 하니 시라카와고에 봄에 또 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

하하 호호 즐겁게 웃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1월, 2월 가장 업무가 많이 몰려있는 바쁜 시기를 보내는 내 입장에서는

무언가 힐링이 필요하였고, 2월이 되자마자 구정만 내내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여행을 할때면,"회사 때려치우고 몇달간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볼까?"

하는 실천하지도 못할 소심한 생각을 하곤 했다.

또,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일상으로 복귀를 하면 또 다시 받을 스트레스를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곤 했었다.



날이 우중충하였지만, 구름 사이사이로 내려오는 햇살과 뽀드득 거리는 천연 음악소리를 들으며 걷던 중

"이래서 내가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거구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말도 안통하는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

이 사람들이라고 나와같이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쓸데없는 걱정은 입김과 함께 공중으로 날려버려. 매일매일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이런 여행이 더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야."





시라카와고 마을은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라고 한다.

원래는 300채가 넘는 집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115채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잠시 잠깐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눈때문에 여간 불편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긴 할 것 같다.

눈이 와도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지난 밤의 폭설로 인하여 차도 눈에 덮히고, 출입구가 눈에 아예 파묻혀 버린 모습.

우리야 관광객이다 보니 신기하다고 셔터를 눌러대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은 겨울이 싫을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군인들도 겨울에 눈오는 날은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2월의 시라카와고 마을은 여유와 힐링, 그리고 축복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내 키보다도 더 높게 쌓여있는 눈과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 곳.

어디선가 엘사가 같이 눈사람 만들자며 뛰어올것만 같은 동화마을.

이 아름다운 장관을 반짝이는 두 눈에 가득 담고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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