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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5.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고

2017.09.21~2017.09.24 두번째 이야기③

by Luna


그렇게 바츨라프 광장의 슬픈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프라하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10여분이 채 못되게 걸어가자 나온 구시가지 광장(올드타운 또는 얀후스광장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이곳은 소매치기 핫스팟(?) 지역이니 소지품 주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나와 내 친구에게 소매치기가 따라붙기 일쑤였고, 어떤 소매치기범이 관광객 가방에 손을 집어 넣는 등의 행위를 목격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바츨라프 광장이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하였다면 구시가지 광장은 중세시대의 역사와 함께한다.

또한 각기 다른 건축양식으로 건축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곳의 건축물을 살펴 보는것도

꽤나 매력적일 것이다. 수세기에 거쳐 각기 다른 양식의 건축물들이 집합하여 있으니 말이다.


31.jpg ▲구시가지 광장


유럽 중세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종교와 함께 흘러온 역사이다.

종교개혁.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는 가?

아마 대한민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보통 10명중 9명은 루터와 칼뱅을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루터와 칼뱅처럼 성공한 종교개혁가가 아닌 실패로 끝나버린, 그러나 이들보다 100여년이나

앞서 부패하고 타락한 성당과 가톨릭 지도자들을 비판한 얀 후스라는 인물은 아마 대부분 알지 못할 것이다.


30.jpg ▲얀 후스 동상


'면죄부 판매 사건'

중학교때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면죄부 판매 사건'을 수년이 지난 오늘, 그것도 여행지에서 듣게될 줄이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대로 당시의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 지도자들은 사치와 타락에 눈이 멀어 부족한 돈을 '면죄부'를 판매함으로써 충당을 하려고 하였고, 이 사건이 유럽의 종교개혁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얀 후스가 타락한 성당과 가톨릭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부르짖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면죄부 판매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체코의 군주였던 바츨라프4세는 얀후스가 아닌 가톨릭 사제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로 인하여 얀후스는 체코 남부지역으로 쫓겨가게 되어 자신이 몸담았던 틴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스위스의 콘스탄츠 종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 즉시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다

결국 화형에 처해지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구시가지 광장의 얀후스 동상의 시선은 틴교회에 머물러 있다.


32.jpg ▲틴 교회


프라하 시내 어디에서든 보인다는 틴교회

고딕양식으로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올라가 있는 탑이 인상적인데 쌍둥이인듯 쌍둥이가 아닌 것 같은 탑은

남, 녀를 각각 상징한다.

그래서 사진상 왼쪽에 보이는 탑은 살짝 작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들어가는 입구쪽이 어딘지 모르게 건물로 가려져 뭔가 어색해 보이는데 사실, 원래 얀후스가 머물렀던 교회였는데 후에 가톨릭교회로 바뀌면서 후스파의 신도들이 화가나서 저 앞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버렸다고 한다.


잠시 맑았던 하늘에 비가 쏟아지고 우리는 급하게 우산을 사서 다녔는데, 유럽의 비오는 거리도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오는 날은 신발이 젖는것도 싫고 습한게 싫어서 비오는 날은 별로 좋아하질 않은데,

유럽은 비오는 날이 어딘가 모르게 좀 더 운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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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씨앗, 그리고 후에 1, 2차 창밖투척사건 등의 크고 작은 종교갈등의 무대에는

늘 이 곳 구시가지 광장에서 이루어졌었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의 이곳에는 이렇게 많은 관광객과

프라하 시민의 결혼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무대가 되다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곳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얼굴에 미소 한가득인 신랑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찰나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저마다 셔터를 눌러주기 시작했다.

낯선곳의 모르는 이들이지만 언제나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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