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천천히 가는게 안 맞을수도 있어요!

by 펠릭스

스타트업에 다녀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금 더 자유롭다? 아니면, 조금 더 특색있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이죠. 회사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달라서 "모든 스타트업은 이렇다!!" 라고 정의 내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다녔던 스타트업은 모두 열정적이고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말해봐야 세 군데지만요. 이번에는 두번째로 다녔던 스타트업에서 배웠던, 천천히 가도 괜찮았던 것에 대해 적어보려고 해요.




이전에 다녔던 곳에서 약 2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사소한 이유로 이탈했지만, 제가 직접 선택해서 이탈을 결정했었죠. 그리고 이직합니다. 그다음 이직도 스타트업. 첫 번째 스타트업이 너무 재밌었고, 즐거웠기 때문에 당연하게 스타트업을 알아봤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을 찾아봤고, 그 중 한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매우 특이한 근무조건이 맘에 들어서였죠.


전에 다녔던 스타트업 대표님은 회계 법무법인을 다니시다 창업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방향성 설정이나 리더십이 뛰어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용력도 좋으셨고, 미팅을 해도 깔끔했습니다. 새로운 곳의 대표님은 젊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의미로 도전적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혁신적이기 까지.


지금 주 4.5일제와 같은 이야기를 논의하고 있죠? 이 스타트업은 주 4일제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10년도 더 전인데 말이죠. 매주 수, 토, 일을 쉬었습니다. 월, 화, 목, 금 만 일했죠. 거기다 하루 6시간만 근무했습니다. 9시에 출근했다면? 4시에 퇴근했습니다. 10시에 출근하면 5시, 11시에 출근하면 6시 퇴근. 아주 일찍부터 주 4일제를 경험해봤습니다.


입사가 결정되고, 여권 사본을 요청받습니다.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뭘 할까? 하다, 디지털 노마드를 경험해보자!! 하고 해외에서 개발해 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입사하자 마자 태국으로 갔습니다. 인생 첫 태국 여행이자 해외 개발 경험이 생겼습니다.


이곳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흔할 수 있는데, 당시에 매우 신선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태국에서 미국인 친구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모두 한국말을 잘하셔서 "태국에서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외국인과 한국인" 의 모습을 연출했었습니다.


이곳은 느림의 미학이 있었습니다. 급하지 않았고, 바쁘지 않았습니다. 매우 느렸고, 그럼에도 빨랐습니다. 이곳의 사업 목표는 명확했고, 하고자 했던 서비스도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느려도 잘 나아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적응하지 못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을 쉬는 삶은 어떨까요? 저는 처음에 어색했고, 끝까지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집 / 회사 할 거 없이 몰입하며 지내다 갑작스럽게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너무 큰 여유. 매주 수요일이면 뭘 할지 몰라서 당황했었습니다. 아니, 퇴근 자체가 어색했습니다. 이렇게.... 밝은데, 집에 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의 연속.


수요일마다 뭘 할지 몰라, 책을 사서 카페를 가거나 어떻게든 그 시간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쉬는 법을 몰랐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일하고 있던 날이고 시간이니,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쉬질 못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제각각인 것도 어색했습니다. 자유가 매우 높은 곳이었으니, 출퇴근 시간도 모두 제각각. 잘 활용하시는 분은 오전에 학원을 다니시고, 오후에 출근하셔서 일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면 그분과 저는 인사하고 이내 헤어집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됩니다. 전 이런 것들이 어색하고 어려웠습니다.


전체 미팅도 대부분 오후에 합니다. 사실 미팅도 많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해야 할 것과 목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큰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를 가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설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제 기준에선 소통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너무나, 느렸습니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서 회사에서 이탈했습니다. 수습에 통과하지 못했었죠. 그들에게 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너무 다른 세상이었고,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수습에 통과하지 못한 게 제게는 기쁜 소식이 되어버렸거든요. 수습 종료 이야기를 하시던 중, 대표님이 "지금까지 중 제일 표정이 밝으시네요" 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 다시 선택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습이 종료된 날,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풉니다. 그리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계획된 듯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10년간 연락 한번 안 하고 지냈던 친구 한 명이 전화를 걸어온 겁니다!!




- 사회 초년생 때는 뭐든 제가 선택한다는 느낌으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나를 선택 해줬다!!', '회사가 나에게 일을 맡겼다!!' 란 생각과 기분으로 살았죠.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 듯합니다.

- 이 시기에 죄와 벌이란 문학책을 처음 접했습니다. 다른 스타트업과 미팅을 하다 이 책을 추천받았었거든요. 실로 충격적인 작품이였지만, 정말 재밌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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