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가 생겨요!
회사는 수평 문화를 지향했습니다. 직급은 존재하지 않았고, 영어 이름을 사용했고, 자유롭게 회사 내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대표에게 미팅을 요청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뭐든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 한창 수평 문화를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꽤 수평적인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멋지다고 생각한 이 모습들은 길지 않은 시간에 여러 문제들을 겪으면서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존중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존중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하는 입장이었기에 존중에 대한 적응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은은하게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존중한다면 좋겠지만, 존중을 받은 대상이 존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K와 함께 일을 하면서 이 존중과 수평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된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수평적이라고 해도 회사는 일을 해야 하는 곳. 그리고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죠. 의견은 모두 다를 수 있고, 속도도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계획을 정하고 가능하다면 계획에 맞춰서 일을 합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계획한 범위 내에서 일을 진행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일을 조절하죠.
K는 이런 부분을 매우 잘해주셨습니다. 고쳐야 할 것도 많고, 해야 될 것도 많은 곳이었음에도 잘 조율하고, 잘 이끌었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협조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K의 존중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K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회사의 문화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회사에는 독특한 문화가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높은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 시간. 자신의 업무만 잘한다면, 빈 시간은 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키친에는 빵과 우유, 커피가 늘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일하다 배고프면 언제든 먹어도 되었습니다. 커피가 먹고 싶다면, 아니면 간식을 사러 가고 싶다면, 산책을 하고 싶다면 따로 허락받거나 이야기하지 않고 다녀와도 되었습니다. 정해진 회의 일정과 출퇴근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만 지키고 정해진 일정 내 업무만 완료된다면 나머지는 매우 자유로웠죠.
저도 F 가 있을 때, 자주 키친에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고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나온 아이디어로 개선을 진행하고, 방향을 잡아갔죠. 아마 이런 긍정적인 방향을 원해서 만들어뒀던 문화일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제어 장치가 없는 문화는 조용하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그리고 하필 저희 팀에도 그 소수의 인원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출근한 뒤 30분 ~ 1시간씩 사라지는 일이 잦았고, 업무량을 줄이고 그 시간에 자유를 즐기는 행동을 합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K는 이 또한 존중하며 어떻게든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개발자들은 야근을 많이 합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마지막까지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획된 내용을 보고, 작업을 하고, 문제없는지 확인하고,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그리고 문제가 또 없는지 지켜보고. 그러니 팀에서 야근을 한다고 하면 당연하게도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야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K는 항상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야근하는 인원은 늘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근하는 원인은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정한 원인들은 자유를 즐기던 소수에 의해서 발생했습니다. 업무의 속도나 질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태도에 의한 문제임을 발견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K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지만, 저와 K는 소수에 의해서 잘 유지된 문화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K는 소수와 면담을 통해 개선을 요청했고, 저는 프로세스적으로 개선할 부분들을 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근을 줄이고, 업무 속도는 늘리고, 잘못된 태도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였죠.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변하지 못합니다. 잠시 나아지는 듯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는 저와 K에게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나 이 수평 문화라는 이름이 저희들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말로써 설득하는 게 거의 다였습니다. 이곳은 수평 문화를 위해 너무 많은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죠. 그로 인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거든요. 자유로운 게 아닌, 문제들이 방치되던 곳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납니다. 자유를 즐기던 소수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권고사직이 되게 됩니다. 야근을 하는 사람은 저녁 식사를 제공했는데, 야근을 하지 않음에도 저녁 식사를 신청해서 식사를 하고 갔던 겁니다. 당시에는 별도의 승인이 없어도 석식 신청이 가능했었거든요. 문제는 따로 감시되는 내용이 아니니, 누구든 할 수 있었고 계속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식사를 하시고 음식맛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요리사분이 우연히 들으셨던 모양입니다. 속상함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왜 석식을 드시고 가셨지?로 바뀌고, 여러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권고사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되면 좋겠지만.... 또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 저와 K는 좋은 문화들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정말 수평적인 팀을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 이후부터 면접 볼 때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