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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ry Nov 13. 2020

#2. 행복의 무게, 고통의 무게

하지만 난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처음엔 몰랐다. 내가 그렇게 아픈 사람인 줄. 내가 그렇게 의지할 사람을 바라고, 또 바랐다는 것을 말이다. 보육원을 퇴소하고 나서 알았다. 내가 정말 용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퇴소 후 5년까지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했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만 빼고 가족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에게 차가운 분노를 보냈다. 나의 마음은 차게 식었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청개구리같은 거라, 마음이 차게 식으면 식을수록 더 많이 사람을 고파했다. 다행히도 나는 대학생이었고, 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도 나름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됐다. 모두가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는 것. 이것이 내가 깨닫게 된 첫번째 구원의 지혜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취직한 후 새로운 상황에 놓였다. 직장 내 인간관계라는 것인데, 이건 다칠 수 밖에 없는 칼 위에 올라 끊임없이 조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숨막히는 하루가 계속됐다. 나는 가만히 아무 말 않고 있어도 상처를 받았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나는 주말에 엄마, 아빠랑 놀러 다녀왔어요.'

'어제 엄마랑 맥주 데이트했어요!'

'엄마가 저녁에 맛있는 요리해준다고 했어요. 쌤은 오늘 저녁 뭐 먹어요?'


모두가 가족이야기를 하는 공간에 나는 늘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라 늘 당황했고, 긴장했다. 상처를 받지만 받는다고 말을 할 수 없는 내게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인걸요. 그걸 못하게 할 수는 없어요.. 그냥 시간이 흘러서 서로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그 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말은 일부 맞고, 일부는 틀렸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친밀해지면서 나는 직장 내 인간관계의 한계를 알았고, 내가 그들에게 가졌던 행복한 가정이라는 명작은 사실 갖지 못한 내가 꿈꾸는 환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울한 직장생활의 연속이었던 어느 출근길,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고통의 무게가 다르듯, 행복의 무게도 다르지 않을까? 사실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나를 구원하게 될 두번째 지혜였다.


여전히 나는 부모님이 있는 친구가, 선생님이 부럽다. 내가 평생 가져보지 못할 저녁을, 주말을, 명절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는 그 사람들이 부럽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불행하다.


그렇지만 나를 가족이 설명해주지 못하듯, 나는 '나'로서만 설명할 수 있으니까 다시 나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행복의 무게가 다르다는 말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마음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아프다. 그래도 분명한 희망이 존재하니까 분명 나는 행복해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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