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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ry Nov 13. 2020

#1.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해."

그렇게 쉬우면 네가 해라.

회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들었다. 결국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가 중요하다고 콕 찝어주신 강사님. 편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하고, 부당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책임은 사용주, 즉 고용주의 의무라는 것이 귀에 쏙쏙 박혔다.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성희롱을 당한 건 아니지만 무척이나 억울한 일을 겪었다. 상사가 화가 나서 나의 다이어리를 훔쳐보고, 그것도 모자라 다이어리를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하던 일이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난 사회초년생이었고,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참이었다. 평판 좋은 그 사람이 나의 흉을 보고 다닐까,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이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없을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안 그래도 인격적이지 않았던 회사에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개인사정"이라며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나서야 회사를 퇴사할 수 있었다. 상사는 마지막까지 내게 실망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그 이후 몇 개월 밤잠을 설쳤다. 시간이 지나 내 자존감이 회복되면서 사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 틀렸던 것에 틀렸다고 말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나를 깎아먹었던 순간들이었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하루는 용기를 내서 생전 딱 한 번 봤던 사람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가 숨막혀 죽을 것만 기분이 들었던 까닭에.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화가 나. 그런데 어쩌면 너보다 그 상사의 상황이 더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조금 더 이해해."


처음엔 이해됐던 이 답변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분노를 더 들끓게 했다. '그래도 나한테 그러면 안 됐던거 아닌가? 상황이 어려우면 예의없이 굴어도 되나? 이렇게 한 사람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짓밟아도 된다는 건가?'


모두에게 괜찮은 척했지만 난 사실 아직도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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