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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솔 Oct 29. 2021

점점 혼자가 편해지는 이유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혼자가 편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나쁘지 않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떠나 여유로움도 느껴보고,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된다. 한편으로는 외롭기도 한데, 그 외로움이 막 아주 싫지는 않다. 예전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죽도록 싫어 하루도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었는데 현재의 나는 집을 아주 사랑하는 집돌이가 되어 있다.



20살 무렵 돈도 없고 백수였던 시절 가장 친한 친구들과 과장 하나 안보태서 같이 살고 있었던 우리 부모님보다 더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집에 있는 게 싫어서 매일 잠에서 깨면 씻고 나가서 놀다가 새벽에 들어왔다. 정말 노는 게 미친 듯이 좋았고 미친놈처럼 놀았다. 맨날 보는 애들이랑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당구만 쳐도 재미있었고, 카페 가서 수다만 떨어도 즐거웠다. 또 저녁쯤에는 배가 차지도 않는 15000원짜리 찌개 하나에 마시는 소주가 날 행복하게 해 줬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차를 샀던 친구가 있었는데 만나서 할 게 하나도 없어도 일단 그 친구 차를 타고 어디든 나갔다. 시내 한 바퀴를 돌던 갑자기 동해바다로 쏘던 일단은 집 밖으로 나가고 나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같이 시내를 돌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 매일 만나던 친구들이었으나 우리는 언제나 서로 말이 끊기질 않았다.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서라도 개그를 치고 놀아서 카페에서도 2-3시간은 기본으로 있었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 이 친구들과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서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하거나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니다. 그냥 점점 그렇게 되어갔다. 서로 할 말이 없어지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자리가 재미가 없어졌다.



우리가 점점 철이 들어갔던 것일까? 그 이유는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도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깨달았던 건 예전에는 친구들과 의리, 우정, 그저 노는 것이 우리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취업을 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나 역시 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고 그렇기에 시간이 무의식적으로 소중해진 것이 아닐까? 친구들과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투자하면 그 시간들로 인해 내가 했던 계획과 루틴이 틀어지기 때문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자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맞다. 어찌 보면 엄청나게 이기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시간에 있어서는 한껏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나의 전적인 권한이기에 누구도 머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점점 혼자가 편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이유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 번째는 누구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조금씩 양보를 하고 협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혼자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두 번째는 혼자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당장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생각들을 잘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설계하는 생각들을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세 번째는 스트레스가 적다. 이 건 첫 번째와 연관된 말이기도 한데 누군가와 같이 생활을 하거나 시간을 보내면 결코 모든 순간이 좋을 수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스트레스와 공존하고 사람은 그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러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아주 큰 장점이 존재한다.



어쩌면 나는 벌써 조금은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이 있어 나는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어야 했고 그들 앞에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았으나 나 스스로 광대가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망가져 가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쓴소리나,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나였지만 정작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는 아주 화가 많은 아이였다. 다른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괜히 엄한 쪽에 푸는 건지 ,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이 이렇게 지 x 맞은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나는 주변에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그 소리를 들을수록 착해야 한다는 강박장애도 머리에 같이 자라났다. 실제로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나의 고정관념과 맞물려 남들에게 착함 코스프레에 강박적인 행동은 더더욱 늘어만 갔고 남들 시선 의식에 갇혀 나의 소신대로 살지 못했다.






좀 더 나를 위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난 지금 혼자인 시간을 더 가지는 거일 수도 있는 듯하다.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지?' '아 이때 이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날 별로 안 좋아하겠지?'와 같은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쉴 새 없이 침투해오는 이런 사고방식을 단절하기 위해 지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간혹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팩트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니 진짜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쳐도 사람들은 나에게 나의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이 건 내가 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존재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진리일 뿐, 당장 나 또한 그렇다. 대인관계 중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자고 나에게 다짐하려고 지금 이렇게 글로 정리해서 타자를 친다. 이 글은 내가 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기 때문에 두서가 없을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미친 사람일 수 있으나 저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미친 사람일 수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서로를 피해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난 어떤 관계는 어쩌면 멀어지는 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어떠한 관계라도 들어오면 안 되는 선이라는 것이 있고 그 선에 침범하려 할 때 멀어진다. 그 선이라는 것이 바로 신뢰이고 존중이다.



아직 28살, 난 앞으로 만났던 사람보다 만날 사람이 더 많다. 내가 혼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아마 다음에 만날 사람들을 조금은 더 편하게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하는 시기라고 스스로 생각하겠다. 좀 더 나다운, 좀 더 편한 사이가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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