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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으니 Nov 17. 2022

죄송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어느날의 이야기.


한강 벤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가만히 기다리는 게 지루한지, 일정 구간을 왔다갔다하며 걸었고, 나는 그 사람의 걷는 모습을 멍때리듯이 바라보게 되었다. (편의상 그 사람을 B라 칭하겠다.)


하필, B가 걷던 구간은 자전거 도로가 공사중이어서 그 길엔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많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B는 자꾸 길을 비켜줘야만 했다. B는 길을 비켜주면서 라이더들에게 여러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B의 표정과 행동이 어떤 인사를 받았는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길을 비켜준 B에게 라이더가 "감사합니다."하며 지나가자, B는 그 다음에 지나가는 라이더들에게 더 친절하게 길을 비켜주었다. (미묘하지만 확실히, 더 티나게 길을 잘 비켜주었다.)

그 후, 또 다시 B의 옆으로 지나가는 자전거. 그때 라이더는 "죄송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B의 표정이 달라졌다. 미묘하지만, 확실히 짜증나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으며 발걸음도 툭툭 달라졌다. 또한, 그 직후에 울리는 "띠링~" 자전거 소리에는 비켜주는 반응도 느렸다.  


순간, 앞서 잘 비켜주던 사람과 지금 비켜주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는가 의문이 들었다. 아니, 길을 비켜줘야하는 상황은 같지 않나? 근데 어쩜 앞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거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도 B의 곁을 지나가는 수많은 자전거들. 그러다 알게되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리에, B가 친절해진다는 것을,

'죄송합니다'라는 소리엔, B가 불쾌해진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우리는 무언가 양해를 구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상대방에게 '죄송합니다' 혹은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이때 돌아오는 상대방의 반응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를 때도 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에는 종종 "그니까 죄송할 짓을 왜 해!", "죄송할거면 아예 안하면 되잖아"라며 더 큰 화가 따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짜증스러운 반응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B처럼 반응했던 것 같다. 최근에 걸어서 퇴근하다보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내 옆을 많이 지나쳐갔고,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받는다. 특히 대교 위를 건널 때엔 더 그렇다. 길을 비켜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들을 땐 '별 것도 아닌 일에 감사까지야.. (훗-)', '당연히 비켜줘야할 상황에 감사는.. (뿌듯)'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반대로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들을 땐 (매번 그러지는 않지만!) '대교는 원래 자전거 탑승 금지인데...', '아 사람이 지나갈 땐, 최소한 속도는 줄여라!!'라며 속으로 궁시렁거렸던 것 같다.  


같은 상황임에도 말 한마디로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본 후, 놓치고 있었던 감정이 떠오르면서 말의 무게가 엄청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래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앞으로, '죄송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왕이면 '죄송합니다' 보다는 상대방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도착했던 어느날의 이야기.


(ps. 그렇다고, '죄송합니다'를 꼭 말해야하는 상황에 감사를 표했다가는 역풍을 맞을지도...)  


작심삶일 / 글: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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