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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으니 Apr 11. 2024

이런 게 수학인 줄 알았더라면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 매트 파커

* 이 글은 발제자 '라'의 시점으로 작성된 글입니다_ 옮긴이의 말

이 책을 발제하기로 한 게 작년 연말이니, 책을 산 지도 3개월이 지났으나 먹고사니즘에 바빠 모임 3일 전부터 부랴부랴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갔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엄두도 못 내고 넘긴 페이지가 많아서... 아차 싶었다. 이제 와서 책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두 번 읽는다고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발제자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표면적인 질문만 몇 개 뽑아 모임 공지를 올렸다.


날짜는 4월 첫 번째 토요일 오전 10시 반, 장소는 어반플랜트 합정점.

산뜻한 봄날씨에 입구부터 풀내음 향긋, 초록초록한 인테리어의 카페 분위기가 어우러져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었다(응?). 멋진 브런치 한 상 차림(옥 감사:))까지 더해지니 여기가 섬북동인지, 킨포크인지, 헤헤.

일단 맛있는 음식+커피로 배부터 채우고, 간단한 사전 질문 몇 가지와 함께 본격 토론을 시작했다.


Q. 수포자였던 분 손?

A. 수학을 좋아해서 고3 때 수학의 정석을 풀었던 옥 빼고 전원.

Q. 책에서 수학 수식이 나오면 같이 풀면서 책 읽으신 분 손?

A. 없음

Q. 이 책을 읽는 동안 웃은 적 있으신 분 손?

A. 전원(심지어 2명은 깔깔대며 웃었다고.)


1. 저자가 책에 고의로 심어둔 실수가 3가지 있다고 하는데 찾으셨나요?

집단지성을 통해 우리끼리 꼽아 본 실수 3가지는 다음과 같다.

✓    거꾸로 쓰인 페이지

✓    9장 아니고 9.49장

✓    랜덤하게 쓰인 12장 챕터명

맞는지 확인차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보았으나 답변은 아직...

P.S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


2. 전반적인 독서 후기 및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영 : 책을 읽는 동안 영국에서 뮤지컬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들 웃는데 나만 못 웃던 그때... 그리고 서머타임 등 일상에서 수학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그 원리나 개념을 정확히 알진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책에서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룬 것을 보고 수학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정책을 펼치면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 축구장 표지판의 축구공 그림이 잘못되었다며 관련 부서에 연락을 하고 청원을 하는 에피소드를 보고는 이수열 선생님께서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는 걸 발견할 때마다 편지를 쓰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도 맞춤법 틀린 카톡 같은 것 볼 때 거슬리는데, 저자도 그렇고 아는 만큼 얼마나 더 신경이 쓰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옥 : 기존의 수학 관련 책들은 이론을 많이들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사진도 곁들여가며 실생활과 맞닿아있는 수학 이야기를 들려줘서 재밌었다. 허점을 지적하는 부분들도 좋았는데, 특히 무심코 잘못 사용하는 톱니바퀴 이미지나 4명이서 하는 하이파이브, 나사가 그대로 노출된 자물쇠 사진 같은 걸 보고는 깔깔 웃었다.

톱니바퀴 에피소드*에서는 '수학과 예술의 화해'를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비주얼을 통해 '협력'과 같은 관념을 종종 표현하는데, 톱니바퀴를 3개 이상의 홀수로 놓을 경우 톱니바퀴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1998년 영국 2파운드짜리 동전을 새로 디자인을 할 때 톱니바퀴 - 기술의 발전을 표현- 가 19개 들어갔는데, 저자가 디자이너에게 직접 문의한 결과, 원 디자인에는 톱니바퀴를 22개 넣었으나 자리가 부족해서 3개를 뺐다는.

"이건 동전에 들어가는 디자인이지 실제 설계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중략)...
이 문제는 예술가와 엔지니어의 차이를 요약해서 보여주네요.
저는 분명 아티스트입니다!"
- 블루스 루신(2파운드 동전 디자이너)의 답변 중


"브루스는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시각을 재확인해 주었다.
나는 제약이 창조성을 키운다는 말을 열렬히 지지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나는 그의 답변이 만족스럽다.
창조성은 늘 있을 것이다.
세심한 것을 따지는 사람들이 늘 항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트 파커,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중

또한, 스위스 치즈 모델의 개념 등을 알 수 있어 좋았고, 누군가의 눈에는 이런 게 다 보이는구나 싶어 신선했다. 어쩌면 '수학'은 세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언어'였는데, 우리는 너무 '공식'으로만 받아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읽기 잘했다. 잘 읽었다.


은: 초반에는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숫자를 반으로 나누라고 했을 때 나누기로 계산하면 '숫자' 아니면 '문자'라는 설명**에 무릎을 치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후부터 슬슬 읽어나갔다.

**12345678을 반으로 나누라고 했을 때, 이게 숫자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2를 하게 되고, 숫자로 된 문자(예를 들면 전화번호 1234-5678)라고 생각하면 1234/5678 이런 식으로 나누게 된다는 내용.

저자가 스프레드시트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서는, 평소 엑셀을 스케줄러로 쓰는 등 수식과 관련된 기능을 거의 안/못 쓰고 있는데 잘 알고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 : 이 책을 읽으며 수학, 과학이 왜 필요한지 학교 다닐 때는 왜 말을 안 해줬을까 생각했다. 수학이 '사고'와 관련된 학문이었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아쉽다.

한국인 최초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도 어느 인터뷰에서 수학을 잘하려면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논리성과 창의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이 책을 보고 수학은 공식을 달달 외워서 푸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수학에 대한 오해가 풀린 책.

"수학자는 수학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학의 어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 매트 파커,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중


라 : 책 제목과 광고 카피에 당했구나 싶었다. 수학에 대한 낭만이 담긴 책, 수학을 하나도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는 책을 기대했는데, 모르는 건 역시나 모른 채로 넘겨야 하는 페이지가 많아서 독서를 했다고 봐야 할지 의문이었다.

중간중간 흥미로운 예시나 에피소드가 있었기는 하나 기대한 것에 비해서는 밍숭맹숭한 느낌이었는데(그래서 발제를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다른 분들의 감상평을 듣고 나니 '그런가'하면서 마음이 기울어 좋아진 책.


3. 수학을 잘 못해서 or 잘못해서 실수를 했거나 아쉬웠던 경험이 있는지? (잘하셨던 분은 잘해서 도움이 되었던 순간)

은 : 수학을 잘해서 득을 봤던 경험은, 학창 시절 수학 성적을 높여서 부모님께 휴대폰을 선물 받았을 때. (수학을 잘하면 자다가도 폰이 떨어집니다, 여러분! - 발제자 주)

반대로 아쉬운 점은, 평소 건축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수학을 잘하는 친구는 내가 멋을 느끼는 지점에 적용된 수학 원리 등을 언급하며 다채롭게 표현할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나는 이 감동을 '멋있다' 한 마디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때.

: 조립식 가구를 때마다 다들 간단하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 추리물,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데, 논리에 따른 트릭을 발견하거나 직접 만들지 못할 아쉽다.

: 과학을 좋아했는데, 수학을 못해서 이과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라: 경제적인 부분, 세금 계산 등에서 빠릿빠릿하지 못해 손해 보거나 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


4. '세상에서 ○○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써 보고 싶을 만큼 나만 열광하는 분야가 있다면?

원래는 저자가 수학에 미쳐(?) 있듯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시큰둥하더라도 본인은 막 신이 나서 할 말이 많은 '덕질' 분야가 있는지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는데, 전원 그 정도로 '덕통사고'가 난 분야는 없고 좀 더 관심이 많아서 이런 책을 한 권 써 본다면 이런 주제로 써 보고 싶다로 수위를 살짝 조정한 후 답변.


영 : <세상에서 사투리가 사라진다면>

            '아무튼, 사투리' 없지? 내가 빨리 써야겠다! (다들: 쓰세요! 쓰세요!)

은 : <세상에서 영어가 사라진다면>

            영어 싫어, 한국어 좋아!

라 : <세상에서 카피가 사라진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도 본능적으로 살피고 감탄하고 혼자 평가하고 있는 건 '카피' 애증!

옥 : <세상에서 발끈이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키토식이 사라진다면>

                개인적으로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키토식'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을 써 보고 싶고, 나와 달리 남편이 발끈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사는 삶에 대해서도 한번 보고 싶다.

광 :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신자유주의가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노동이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경쟁이 사라진다면>

                정말 사라졌으면 하는 것들.

5. 실수로부터 배워서 다시는 하지 않게 된 실수가 있다면?

광 : 다시는 하지 않게 된 실수는 없다. 애초에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당연시되는 말에 의문을 품는 편). 실수는 더 큰 실수를 낳을 뿐이고, 성공은 수많은 시도를 통해 만들어 내는 것이라 믿는다.

예전에 숫자를 다뤄야 하는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일할 때 숫자 '0'을 빼먹는 실수도 많이 했다. 사실 내가 10자리 이상 넘어가는 숫자에 취약하다. 이런 실수를 통해 배운 건 딱히 없고 그냥 숫자 관련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엑셀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은 : 어릴 때는 무작정 참고 참다가 폭발하는 성격이었는데, 몇 번의 마찰을 통해 참는 것만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능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싫은 건 싫다고, 참고 있는 걸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고만 있지는 않은 성격이 되었다. 그 외 말실수를 통해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한 게 많은데 막상 말하려니 기억이 안 난다.


영 : 지적을 많이 하는 회사 상사가 있는데, 지적하는 내용이 일, 태도 등 광범위하다. 너무 많은 지적을 받다가 어느 날 이걸 다 고치다 가는 내가 나다움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깨달았는데, 지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은 해 보겠지만 그냥 실수하자, 나답게 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옥 : 오래 다닌 피부과가 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고 기분 좋게 예약하고 피부과에 간 날이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 30분쯤 기다리게 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은 눈치였고, 나중에 들어온 원장님한테서는 음식 냄새도 났다. '나 여기 기다리고 있다'고 어필을 하자 그제야 시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처음에는 모처럼 맞이한, 여유 있는 저녁이 생각과 달리 꼬인 것에 화가 났는데(너무 친근해져서 이제 만만한가 싶기도 하고), 나중에는 별것 아닌 걸로 화를 낸 것 같아 미안해졌다. 또 회사에서 이런 정도의 일로 성질부리는 사람을 보고 '왜 저래?' 싶었는데, 내가 똑같이 그랬구나 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라 : 나도 '은'과 마찬가지로 '말실수' 때문에 반성하고 고쳐나간(똑같은 실수를 전혀 안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이 많은데, 막상 언급하려고 하니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앞으로 확실히 안 할 것 같은 실수는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뜨끔했던 게, 예전에 기획서 쓸 때 '톱니바퀴'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거나 통계자료를 내가 임의로 계산해서 인포그래픽용 원고를 만든 적이 많았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지적한 실수를 많이 저질렀을 것으로 예상된다. (확인할 길 없는 게 다행.) 이런 실수들은 다시는 안 저지를 수 있을 것 같다.


번외 질문 1. '이 책에 쏟아진 찬사'에 이어 4,294,967,278p에 각자 이 책에 대한 한줄평을 추가해 보자면?

영 :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필독서로 권하는 책

은 : (이런 분들)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라, 나는 박수만 칠 테니.

광 : 수학의 필요성을 증명한 책

라 : 같이 웃지 못해 문송하다!

옥 : 패스!


번외 질문 2. 내용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책도 읽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짧은 토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들 필요하다고 생각.


라(발제자) : 이 책을 발제하려고 골랐을 때까지만 해도 독서를 다양하게 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확신과 긍정이 있었다. 그런데 쫓기는 일정 속에서 발제를 위해 이 책을 펼쳤을 때, 분명 한국어 또는 숫자로만(?) 적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게다가 이해해 보려 노력할 엄두도 차마 못 낼 시간을 보내며 과연 이게 현명한 선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번외로 덧붙인 질문이었는데, 다들 입을 모아 필요하다고, 별로인 책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반교사 할 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놀람과 동시에 왔다 갔다 하던 마음의 중심이 다시 잡히는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너무 팔랑귀인가? ㅋㅋ).


같이 읽게 해서 미안했던 책이

같이 읽어서 다행인 책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며

발제를 마쳤다.


화창한 봄날, 절정을 살짝 넘긴 합정 벚꽃길을 함께 산책하고 4월 첫 섬북동 모임은 마무으리. (남은 멤버들끼리 점심 먹고 파한 건 안 비밀.)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 매트 파커(이경민 옮김/다산사이언스)

2024년 4월 6일(토) 오전 10:30

참석자 : 라, 영, 은, 옥, 광 (총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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