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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6. 2024

상실감에 대하여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제목만으로는 논문인지 과학책인지 알 수 없는 소설집으로 섬북동 멤버들을 사로잡은 소설가다. 그러므로 당연히 10여년 만에 나온 앤드루 포터의 신작 <사라진 것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실망했다'는 감상을, 아직 그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내 인생의 책"이라는 감상을 내놓았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미국의 한산한 소도시에서 2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부의 이야기다. 간혹 아이를 낳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도 있고, 커플 사이에 낀 사람도 있고, 첼리스트나 화가 등 예술가의 연인도 있다. 그들은 대부분 반짝이던 젋은 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그것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느낀다. 소설들의 정서는 대체로 쓸쓸하며, 섬북동 멤버들의 평균 나이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유난히 질문이 많았던 이번 책 리뷰, 시작해본다.  

전체 질문


1. 전체적인 감상과 단편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이 소설집은 첫 작품 '오스틴'에서부터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며, 그 찬란한 젊음을 놓친 쓸쓸함과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단편 자체의 감동은 있지만, 계속 비슷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단편집이라는 형식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재즈의 변주처럼 느껴져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실감에 대해 '힙지로에 간 나'처럼 느껴졌다는 사람, 거리감이 일종의 배려로 느껴졌다는 사람, 태어나 한번도 담배를 안피워봤지만 왜 담배를 피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오스틴이나 라인벡, 맥주집이나 베란다, 거리가 머릿 속에 떠오르며, 거기 함께 있고 싶었다는 감상을 전했다. 

첫 소설인 '오스틴'이 가장 좋았다는 의견이 2표나 있었고, 미스터리 스릴러 읽는 느낌으로 조마조마하게 읽었다고 했다. 그 외 '히메나'(젊은 예술가에게 느끼는 부러움과 씁쓸함), '라인벡', '숨을 쉬어'가 각 2표를 획득했으며, '넝쿨식물'은 작가의 전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감동을 파괴해서 인상적이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ㅋㅋ


2. 전체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비호감) 주인공은?

아들이 물에 빠졌을 때는 아무 짓도 하지 않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이차성 익사의 걱정만 하고 자빠진 '숨을 쉬어'의 아버지가 가장 많은 득표수를 획득하였고, '벌'의 우울증에 걸린 아내도 한표 획득했다. 여기 나오는 모든 교수가 다 싫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3.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의 한 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나에게 그런 빛나는 시절은 언제인가?

은 _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한 순간에 그 시절로 돌아간다. 방학이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런 이야기 끝에,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공부할 것인가, 영어 공부를 더 할 것인가 하는 주제가 나오는데, 결론은 그 시절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놀거야'로 난다.

광 _ 군대 가기 전의 대학 시절이 좋았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밤새 토론하고, 밤새 술마시거나 클럽 가서 놀고도 다음날 멀쩡히 수업 들어가는 체력 좋던 시절이었다.

윤 _ 20대를 생각하면 찌질하고 가난하고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38살 때 1년 좀 넘게 우쿨렐레를 배운 적이 있는데, 돌아간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1년 이상 같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도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서로 묻지 않았고 그저 음악을 연주하고 그걸로 좋았다. 

정 _ 20대때, 30대때, 40대때 때마다의 빛나는 시절이 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놀러다니고 연애하고, 서울 올라와서는 광고 공부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공모전 준비하고 밤새 술 마시고, 그러다 시나리오 작가 모임이 생기고 등등. 그래서 생각해보면 항상 그때마다의 공동체가 있었고, 그 공동체 덕에 좋은 기억들을 가지게 된 것 같다.


4. 내 경험을 소설로 쓰는 사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소설은 일본 소설로부터 시작된 어떤 경향인데, <사라진 것들>이 그 경향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온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소설이라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자기를 통과한 글이 '찐'일 때가 많으므로, 사소설을 긍정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을 침해(예를 들어 김봉곤)하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의견, 자기연민에 빠져 우울한 정서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때의 한국소설에 대학원생들만 나왔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고, 사소설을 싫어하지만 앤드루 포터가 10년 뒤 아이들을 다 키운 뒤에는 또 어떤 소설을 써낼지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5.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담배, 라임, 고추 등의 엽편소설은 어떤 의미일까? 

음식 먹는 사이에 물 마시는 역할 (넘어가지 않는 걸 넘어가게 해준다), 도비라 같은 역할, 버리기 아까워서 넣었다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실제 한번에 쭉 읽은 독자의 의견에 의하면 '아...더 이상은 못 읽겠다' 할 때 딱 이 엽편 소설들이 들어가 있어 전환을 시켜주고,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딱 정확한 위치에 포기하지 않도록 놓인 1~2페이지짜리 소설들이다. ㅋㅋ

각 단편에 관련된 질문 


6. '넝쿨식물'의 제목은 왜 '넝쿨식물'일까?

달 _ 같은 공간에 살면서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의심이 자라서 담을 넘어간다는 의미로 넝쿨식물이라고 짓지 않았을까?

옥 _ 이 소설에는 넝쿨식물과 다육이가 나온다. 주인공 바리스타는 다육식물 같은 사람이다. 집주인인 예술가 라이어널은 누구에게나 집적거리는 넝쿨식물 같은 사람이다. 그 사이에 낀 예술가 마야는 처음엔 자신이 다육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넝쿨식물임이 밝혀진다. 그 변화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7. '넝쿨식물'에서 라이어널이 술 마시다 나(남자)의 손을 잡은 순간이 있었다. 이건 뭘까?

대부분이 라이어널을 양성애자(남녀 가리지 않는 놈)로 판단. 하지만 달은 라이어널이 남자의 손을 잡은 순간이, 남자의 여자친구가 라이어널에게 넘어간 날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너의 여자친구가 나에게 왔으니, 이제 나는 권력자이고, 너를 도와줄 수 있다, 시혜를 베풀 수 있다는 티를 낸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탁월한 해석으로 보여진다.


8. '라인벡'에는 삼각구도를 이룬, 커플 사이에 낀 한 사람이 나온다. 이 남자를 어떻게 보는가?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섬북동에는 커플 사이에 끼어 이용당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인 즉, 성적 긴장감을 주거나 위험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고 안전한 사람이라 커플들이 불러내서 함께 놀았던 것. ㅋㅋ 이렇게 안전한 사람 모임이라니! (그래서 이 모임이 오래가고 있다는 자가진단도 나옴) '라인벡'의 리차드는 배우 김상경이나 휴 그랜트 같은 느낌을 주며, 전형적인 회피형이다. 이에 대해 유일한 남자 회원 왈 "회피형이 아니라 그만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남자는 여자를 헛갈리게 하지 않으니까. 


9. '실루엣'에서 아내 에이미가 폴에 대해 비난한 것은 가스라이팅인가? 아니면 남편의 편이 되어준 건가?

이 소설을 읽은 기혼자는 이 질문을 받을 때까지 에이미가 한 행동이 가스라이팅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확실히 기혼자와 미혼자의 답이 다른 작품이었다. 남편의 상실감을 위로하기 위해 한 행동이지만, 남편은 폴을 좋아했고, 아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관계가 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부인의 자격지심에 의한 가스라이팅이 아니겠느냐는 중론이었다. 


10. '실루엣'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부부에게 더 행복하다고 나온다. 그치만 아이가 있으면 행복이라는 논제는 무관해진다고 한다. 또한 '담배'에서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마치 이 소설들의 핵심 주제 같다. 아이와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아이가 없는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우리 중 유일한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세상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기쁨을 느끼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후자이기 때문에 아이와 행복은 별개라 느끼며, 무협지에서 '팔을 내주고 심장을 취한다'는 대사처럼 아이를 얻게 되며, 그렇게 아이를 얻으면 내가 모르는 세계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 문은 도로 닫힐 수는 없다. 모르는 세계이므로 매일매일이 여행인데, 문제는 내가 여행을 싫어한다는 것.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기 이전까지 10여년 이상의 세월을 두 사람 몫으로 살아야 하는 게 힘들고, 그런 힘듦 사이사이에 초코알처럼 행복이 콕콕 박혀 있다.

11.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라는 '포솔레'의 구절처럼, 나에게 '포솔레' 식당 같은 은신처가 있는가?

영 _ 이른 아침의 스타벅스. 이른 아침에 문이 열려 있고, 어디에나 있는 곳. 여기서 많은 일을 했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옥 _ 키토식을 하기 때문에 밥을 빼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한다. 회사 근처의 함박 스테이크 파는 식당은 내가 몇번 가지 않았을 때도 주문하면 "밥 빼고 드릴까요?"하면서 센스있게 나를 기억해줬다. 그곳 창 옆에 2인석이 있는데, 거기서 혼자 먹는 점심을 좋아한다. 5월이면 회사가 이사가기 때문에 그 식당과 헤어지는 게 아쉽다. 이사 간다고 인사 드려야겠지?

은 _  지금은 망해서 없어졌는데, 크림치즈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가 있었다. 나는 커피도 잘 못마시는데 순전히 그 케이크 먹으려고 그 카페에 드나들었다. 주인장이 나를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가 오면 앉는 골방 지정석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의 수다 듣는 것을 좋아하셨다. (카운터 근처라 잘 들림) 그래서 내가 왔을 때 골방을 다른 손님이 차지하면 우리보다 더 아쉬워하셨다. 어느 날 갔더니 낼모레 문을 닫는다며 케이크를 주셨다.

정 _ 지금은 없어진 명동의 시애틀 베스트 커피숍. 2층에 앉으면 신록 푸르른 가로수가 보여서 너무 좋았고, 카페모카도 맛있었다. 직장 다닐 때 매주 일요일 오전, 그곳에서 시나리오 지망생끼리 모임을 했다. 카페 분위기도 좋았고, 내가 뭔가 다른 목표를 갖고 글쓰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 외 다른 분들은 '집'이라고 대답함.


2024년 3월 23일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참석자 _ 정, 광, 옥, 영, 달, 은, 윤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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