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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이나 Jul 23. 2020

나의 다도는(02)

2020년 6월 25일

호코엔 - 宝亀(호우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이후로 어제오늘만큼 시원하고 또 추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과할 정도로 쏟아지던 비가 그친 후로도 냉기는 가시질 않아, 물을 올리면서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물이 빠르게 식겠네’ 같은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날씨가 어떻든 차를 준비하고 우려내어 마시는 일상의 습관엔 변화가 없습니다. 늘 그렇듯 예열을 하고 다건을 접어 닦고 적당히 풀어서 마십니다. 막 격불을 마친 다완을 들어올립니다. 편한 차림을 하고 있는 맨다리로 찬기가 스미는데 반해 아직 완은 따뜻하기에 손끝은 열기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차성이라고도 부르는, 차가 갖고 있는 인상이나 이미지를 봤을 때, 말차는 그렇게 따뜻한 느낌은 아닙니다. 아무리 뜨뜻미지근한 물로 우려도 녹차는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이렇게 흐리고, 써늘하고, 그래서 못내 쓸쓸하기까지 한 날에 따스함을 줄 것 같지는 않지요.

이런 날에 어울리는 차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차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나니 굳이 다른 차가 아닌, 오늘 왜 말차여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겨울에 바다를 가는 것 같이요. 짭짤한 감이 파도마냥 코끝을 스쳤다가 귀밑으로 빠져나가는 감각 속에 덩그러니 유영하는 기분입니다. 외롭거나 힘들다고 침대 위에서 생각할 때보다 피부에 와닿는 실제 겨울 바다의 차가움은 감상을 제외한 자연 그것뿐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매서운 바닷바람과 냉기에 오히려 사람이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서 세계로, 세계 속의 나로 잠시 옮겨갑니다. 그 안에 저는 그냥 존재하는 것뿐이라, 감상에 따라 그게 무척 슬프다가도 그것이 특별한 감각이 아닐 것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그와 비슷합니다.


바깥에선 파도소리 대신에 자동차가 지나가고 청명한 공기에 대비되듯 진하게 올라오는 매연 냄새도 섞여있습니다. 습하진 않지만 바람은 부산스럽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슬퍼집니다. 세계가 저를 지나치는 것 같아서요. 그 대비 속에서 차를 마십니다. 비록 향이 전부 살아나지는 못했지만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차가 나왔습니다. 뜨거운 온도와 별개로, 따뜻하거나 벅차오르진 않는데, 그래서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날씨에 사람은 어떤 감상이든 갖기 마련이나 그건 사람의 기분일 뿐이니까요.

그 덤덤한 사실을 깨우는 점이 좋아서, 오늘도 말차를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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