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아저씨와 벚꽃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기면, 다른 더 좋은 것을 굳이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중학교 1학년 때 늦은 밤 호기심에 보기 시작한 섹스 엔 더 시티이고 한 회를 몇 백번이나 보며 서른한 살이 된 지금까지 보고 있고, 좋아하는 책은 책장이 닳을 때까지 읽는 편이며, 마음에 와 닿는 노래가 있으면 질릴 때까지 듣는 편이고 그 질림 마저 즐길 정도로...,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는 영화는 대사를 외울 때까지 보는 편이다. 특히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몇몇 메뉴가 정해져 있어 그 외 음식은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거기에서 오는 편안함과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탐험하는 노력과 긴장 시간 대비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향이 되었다.
그렇게 난 하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참 신기하게 한 번, 두 번, 세 번.. 일 년, 이 년, 삼 년,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보면 그때의 나의 감정적 상태, 외부적 상황,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이고 특별하게 다가오는데 그 인지의 깊이와 폭이 달랐고 곱씹으며 내가 유도해 끄집어내는 즐거움이 그때그때 다르 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꽃 중에서는 벚꽃을 참 좋아했다. 벚꽃이 피는 계절에 태어난 탓일 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보다 흩날리는 형태가 따뜻한 날 내리는 눈과 같고 색깔 또한 인위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분홍이었다. 물 탄 흰색에 분홍 한 방울 떨어 뜨린 색이라 주변마저 수채화로 만들어 내는 은은한 색이 참 좋았다. 또 떨어지는 꽃잎을 받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그 전설 까지도... 그런데 요 몇 해 벚꽃이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마 회사가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젠 인파로 인해 주차장에 사람이 붐비고 복잡해 짐에 따른 교통 체증과 익숙함에 따라 바뀐 게 아닐까. 좋아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던 나인데, 처음으로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차가 생긴 이후로 택시를 잘 타지 않았다. 기사님과의 가끔 불 필요한 (특히 피곤할 때) 대화가 나에겐 힘들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게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 무뚝뚝하게 대하거나 이어폰을 꽂아 처음부터 대화를 차단하는 편이다. 며칠 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여느 때와 같이 문을 열고 목적지를 말하는 짧은 대화에서 본능적으로 기사님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어폰을 꽂아야 하나 파악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목소리 톤에서 아버지 같은 다정함에서 편안함을 찾아내고 이내 안심하게 되었다.
여의도 윤중로를 지나고 있었다. 잠깐 정차 한 틈을 타 오래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시던 기사님은 조심스레 웃으며 혼잣말 같은 말을 건네셨다. "나이가 드니까 꽃이 이쁘더라고.. 옛날엔 안 그랬는데.. 참 아름다워." 60대 중반? 아마 다른 일을 하시다 퇴직을 하시고 택시일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기사님이셨다. 그래, 꽃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 분과 대화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으로 택시 아저씨와의 대화가 흥미로워졌다.
"옛날에는 벚꽃을 그냥 봄에 피고 이내 지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지 아니, 벚꽃이 예쁘지도 않았어... 이렇게 무심한 나였는데, 이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예쁜 벚꽃 풍경이 있으면 찍게 되더라니까.. 이게 나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아가씨도 나이 들어봐 이런게 예쁘다니까? 참 아름다워. 이 직업도 장점이 있어. 원 없이 벚꽃 구경이야 허허"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 감수성이 풍부해지기도 한다지만, 그간 택시 아저씨에게 어떤 일이 생겨 같은 사물을 보고 다르게 인지하게 되는지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단순 나이가 들었다고 인지하지 못했던 사물에 대한 아름다움을 즐기게 된 것일까. 벚꽃이 그를 위로 하게 된 것이 단순 시간의 지남일까.
대게 사물은 그대로다. 내가 어떤 것을 감상하고 느낌에 대해 달라지는 것은 이전의 어떠한 이벤트가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나에게는 옛사람이 그랬고, 내가 어린 나이에 겪은 신체적 아픔이 그랬고,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이 그러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인지는 현재의 내 감정과 겪고 있는상황이 변화 됨으로 생기는 것이고 과거의 나를 괴롭히던 것 혹은 몰두하게 하는 것들이 만들어 낸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인지하고 있는 사물은 그대로인데, 과거의 무엇과 지금의 상황에 영향을 받고 있는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벚꽃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길에 보았던 벚꽃은 외로웠고
헤어진 후에 흩날리는 벚꽃은 나와 함께 울어주었는데
오늘 너와 함께 볼 벚꽃은 얼마나 예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