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많은 자폐아와 함께 하는 삶
여행의 마무리는 언제나 화로 끝난다.
세상 착하고 너그럽던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대할 때면 분노를 참지못하는 중년의 남자가 되었고
매일 아침 오늘도 잘해보자 사무치게 다짐하는 엄마였던 나도
아이가 언제 또 무슨 사고를 칠까 노심초사하느라 심장까지 쪼그라든
그러다 공황장애까지 생긴 아줌마가 되었다.
외식의 끝은 항상 화로 끝난다.
오늘은 좀 더 심각했다.
아이는
돼지고기를 먹으러 가면 소고기 먹고 싶었는데.라고 말하고
소고기 집에 가면 뷔페가고 싶었는데.라고 말한다.
세 살 때부터 항상 그래왔다.
엄마 아빠가 부정적이거나 강압적인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의 눈초리 같은 건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화가 많은 자폐아와 함께 하는 삶이 어떤 것인 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의미가 없다.
같은 자폐아나 발달지연 엄마들끼리도 아이의 성향에 따라 말이 잘 안 통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언감생심.
감정책을 보여주고 표현방법을 가르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어디를 가기 전에 미리 오늘 있을, 혹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 언질을 주고
책에 나온 방법, 선생님께 배운 방법, 교수님께 들은 방법 등등등
오만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며 산다.
우리의 삶은 그렇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도 안되고 꺾이는 일상이 당연한 삶.
매일매일이 버거운 그런 삶이 우리 가족의 숙명이고 일상이다.
남들처럼 화목하고 온화하고 휴식이 있는 주말을 보내고 싶은데
그런 삶이 이젠 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알려주는 방법들이 잘 통하는 날도 어쩌다 있지만 아닌 날이 당연히 더 많다.
그 무엇을 한들 아이의 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는 토요일 아침부터 내내 화를 내었다.
여름휴가 다녀오는 길부터 그랬다.
언제나 여행의 끄트머리는 화였기 때문에
_여행의 즐거움이 끝나는 아쉬움일 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싫은 것일 수도, 그냥 변화를 잘 못 받아들여서일 수도_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오늘 아침의 화는 11년간 이 아이와 함께 산 우리 부부에게도 쉽지 않았다.
맥락 없는 화와 분노.
앞 뒤 연결되지 않는 대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아이는 오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폭발을 한 후 마치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듯 잠시 잠잠했다가
다시 오후가 되면서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말을 무한반복했다.
외식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분 좋게 나갔다가 또 막상 식당에 들어가면 맘에 안드는 것들이 생길 수 있고
또 이거 싫고 저거 싫고 할 것이 뻔해서 미리 단속을 했다.
"짜장면 먹으러 나가자. 하지만 탕수육은 못 먹을 수도 있어. "
아침에 한바탕 난리를 피웠어서인지 아이는 순딩순딩하게 알겠다고 했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우리도 외식이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었다.
항상 화내면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나가서 뭔가를 먹긴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아이의 화가 많아지기도 했고 여행 후 아이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망설여지긴 했다.
분명히 경고를 했건만
식당에서 아이는 소자 탕수육을 저 혼자 싹 다 먹어치우곤 칭얼대기 시작했다.
몇 번의 경고 후 빠른 식사를 마치고 나왔으나
다음 주 아이 학교에 보낼 간식이 필요해서 과일을 사러 마트에 갔을 때 결국 아이는 폭발했고
온 가족이 다 같이 험한 말을 쏟아내며 차를 몰고 집에 오면서는
아.. 우리 가족은 이러다 스트레스도 다 같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 남편이 흥분해서 화내다가 사고 나서 다 같이 죽는 게 먼저일 수도.
라는 생각을 또 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이 많아진다.
아이에겐 자극이 독인데
악순환이 반복되는 삶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화가 많고 충동성이 있는 우리 아이는 3살 때부터 센터를 다니며 치료수업을 받았고
대학병원에 가고 유명하다는 교수님께 진료를 받고 (병원은 자주 가야 하니) 동네의 소아정신과를 다니며 꾸준히 약을 먹고 있다.
지금도 방과 후에 주 5회 치료수업을 받고 있지만
오랜 시간 아이를 지켜봐 온 엄마 입장에서 보면 이런 치료로 인해 개선된 부분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애초부터 지능은 또래 평균 안에 들었었기에 머리가 큰 만큼 경험과 인지가 늘어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부분이 조금씩 늘어날 뿐, 타고난 성향_ 화, 분노 따위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머리가 크면 화도 줄어든댔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
오히려 힘이 세지고 체격이 커지니 다루기 버거워졌을 뿐.
기억력이 좋은 애라 여기저기서 얻어 배운 욕들, 나쁜 말들을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다.
엄마 빨리 죽으세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이런 말도 거침없이 한다.
남의 감정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성향의 자폐이기 때문이다.
(자폐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며 모두 다르다)
이런 말 하도 들어서 괜찮을 것 같지만 아니야 나 안 괜찮아.
내 가슴에도 피멍이 든다. 피멍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자폐아를 낳아 키운다고 해서 키울 수 있는 능력도 주는 것은 아니거든.
아이가 세 살 때
자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엔
그 독특한 행동들. 폭발하듯 나오는 분노가 너무 이해되지 않았었다.
다른 애들도 다 이런가? 궁금해서 여기저기 어린이집 선생님 소아과 샘께 여쭤보면
남자아이는 원래 이래요~
하지만 엄마인 나는
분명 뭔가를 느끼고 있었었다.
3살 가을 초입에 일반 정신과에서 발달검사를 받은 후 경미한 자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신과 의사샘은 아이가 지능이 있으니 일단 언어치료 열심히 받으며 지내다가 몇년 뒤 다시 검사해보자 했고,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선 40개월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지역에 소아정신과가 따로 없었고 딱 한군데 있던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는 일년 이상 대기였기에 일단 재활의학과부터 문을 두드리고 발달검사를 해준다는 일반 정신과를 수소문해 찾아갔던 참이었었다.
자폐가 뭔지 발달지연이 뭔지, 재활의학과와 소아정신과의 차이가 뭔지
그런 걸 전혀 모르던 시절이라 그땐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명확하게 얜 자폐니 당장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라고 했다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었다.
분명 검사는 받았는데 그런데 앞으로 뭘 어찌하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던 대혼란의 시기였다.
어찌되었든 언치가 좋다고 하니 즉시 언어치료를 늘렸다.(병원 가기 전에 이미 다니기 시작했었음)
언어 인지 감통 나중엔 그룹치료도 받았다.
경미한 자폐라는 건 정상으로 갈 수 있다는 말로 잘못 이해했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장황하다.
너무나 길고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다섯살에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일반학교 도움반에 들어갔으나
온갖 일들을 겪으며 학교를 두 번이나 옮기고 특수학교에 정착하게 된
우리 아들과 우리 가족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군분투 애 많이 쓰는 이야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진행형 고생담들.
조금씩이라도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