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알게 되는 인생의 의미
몇 년 전부터 나에게 생긴 습관이 있다면 힘들 때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등산을 취미라고 말하지 않고 습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관성처럼 산을 찾기 때문이다. 물론 등산이 좋아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순간만큼은 나는 살기 위해서 산에 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작은 산이 두 개 있다. 두 개의 산이 멀지 않은 위치에 나란히 붙어 있어 하나의 산을 오르내리고 또 다른 산을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산을 오르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그런 동네 뒷산이다.
얼마 전 나는 또 습관처럼 산에 올랐다.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 잠시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어른들이 등산을 간다고 하면 힘들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산에 왜 올라가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세상에 등산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등산을 시작하면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걷기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내 나이는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그 어떤 것도 산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산 아래 내려두고 앞만 보고 걷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나무와 꽃과 하늘과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등산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출발점부터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고 낭떠러지 같은 내리막 길을 내려가게 된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지난달,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라산에 올랐다.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 등반에 도전했다. 날씨가 좋아야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 한라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들 오로지 앞만 보고 자신만의 속도로 계속해서 그 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숨이 넘어갈 듯 괴로운 순간도 스스로 버텨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고 싶은 순간도 극복하며 정상을 향해 그렇게 나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중의 한 명이 되어 포기하고 싶은 몇 번의 고비를 이겨내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정상에 도착해서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며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을 축약해 놓은 것이 등산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거센 바람에 휘청이기도 하고,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큰 바위를 밧줄을 잡고 간신히 올라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고 그 모든 순간을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그게 인생이다.
얼마 전 갔던 산은 차갑던 겨울을 보내주고 따뜻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만 보며 걷던 산 위에서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을 보게 되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단풍잎은 그 자리에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리가 다른 계절을 쫒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해왔던 모든 일들은 다 내 인생에 남아있다. 그 어떤 힘든 일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역경이 감히 내 인생에서 나를 사라지게 만들 수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건 나의 착각이다. 내가 다른 무언가를 쫒느라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오르막에서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도 되고 내리막에서 무릎이 아프면 그대로 주저앉아도 된다. 하지만 다시금 일어나 계속해서 그 길 그대로 걷기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자신만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그 어떤 정상이라도 괜찮다. 한라산이든 동네 뒷산이든 내가 올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가 인생에 남기는 나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습관처럼 모든 것을 산 아래 내려두고 산을 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냥 걸을 것이다. 아무 생각도 아무 걱정도 없이 그냥 산의 공기, 산의 소리, 산의 향기를 맡으며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며 내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산 정상에 도착해서 나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