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과 4 사이의 평화, 노란 속살의 위로
시간강사의 삶은 늘 숫자에 쫓긴다. 강의 시간, 시급, 논문 통과율, 재임용 확률, 그리고 통장 잔고. 숫자가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이 도를 넘어서는 탓에, 어느덧 세상을 짝수로 맞추는 강박에 갇혀버렸다. 양말의 줄무늬 개수가 맞아야 하고, 발걸음은 보도블록 두 칸씩 끊어 가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조금 전, 내 손에 들린 군고구마 봉투 속에는 불길한 숫자 ‘3’이 들어있다.
군고구마 장수는 무심하게도 세 알을 한 봉지씩 포장해 담아주었다. 하나를 더 사서 4를 맞출까 고민했지만,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에너지를 아끼기로 했다. 버스에 올라타 가장 구석진 자리에 몸을 구겼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였지만, 봉투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콤하고 진한 냄새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사람들의 코끝이 들썩일 때마다 나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몸을 잔뜩 웅크렸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냄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밀폐된 공간 속 악취 같은 냄새일지도 몰라.’
정류장 수를 하나씩 거꾸로 세어가며, 겨우 요양원 문 앞에 도착했다. 1층 로비의 소독약 냄새를 뚫고 할머니의 방 문을 열었을 때, 그곳은 시간이 멈춘 듯 평온했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아, 내가 오는 길의 고단함 따위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지수 왔니?”
침대에 걸터앉아 식어가는 고구마 봉투를 열었다.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았던 숫자 3. 홀수의 불완전함이 머릿속을 여전히 괴롭혔지만, 할머니는 고구마의 개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할머니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껍질을 벗겨내자, 노랗다 못해 꿀색으로 번들거리는 속살이 드러났다.
“아이고, 색깔 참 곱다. 얘, 어서 한 입 먹어봐라.”
할머니가 내민 노란 속살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버스 안에서 나를 옥죄던 타인의 시선도, 봉투 안의 고구마가 홀수라는 불편함도, 다음 학기 강의 자리를 걱정하던 불안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 입안에 머무는 것은 오직 압도적인 달콤함뿐이었다.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고구마 말랭이, 맛탕이 생각났다. 그때의 할머니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한 움큼, 혹은 넉넉히 한 접시. 할머니의 요리에는 강박 대신 온기만 가득했다. 숫자가 나를 증명하고 서열화하는 세상 속에서, 할머니의 공간은 유일하게 숫자가 힘을 잃는 무풍지대였다.
“할머니, 이거 한 봉지에 세 개밖에 안 들어있는데 괜찮아요?”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달고 맛있는데.”
할머니는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짝수와 홀수를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절, 세상이 정한 규격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아도 그저 존재 자체로 환대받던 그 시절로.
나는 오늘, 할머니 곁에서 잠시 숫자를 잊기로 했다. 3이라는 숫자의 불완전함보다, 내 앞에 놓인 노란 위로의 맛에 온전히 집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