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도감 #.020 에필로그

by Celloglass

이 글은 과거 직장에서 수행하던 업무가 기존 건축사사무소와 계약 타절을 이유로 내가 다시 온 프로젝트다. 온전히 마무리하고 퇴사를 진행했으면 좋았겠으나 회사 내부의 갈등으로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다.


공사 시작 1년 반 만에 다시 현장에서 마주하게 된 그 건축물은 많은 오류와 분쟁 속에 어렵게 한걸음 한걸음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결정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현장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을 하기 위해 시작된 관여가 시공사와 분쟁으로 이어졌다.


수도 없이 바로 잡고 싶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수는 다 보였기에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막지 못했다. 시행사의 무지함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대부분 시행사는 갑의 지위를 이용해 경험치의 지위도 우위를 점하려 한다. 직업적 구조상 건축설계가 경험치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인정치 않는다. 그 결과는 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감리자의 역할 부재가 제일 컸다. 그래서 감리자를 고발하길 원했지만 이 또한 시행사는 묵살했다. 공사기간 중 어떠한 역할을 해줄 수 없는 설계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해결해 주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실망스러웠다.


감리자는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해야 된다. 상주감리의 감리원을 대부분 계약기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감리자는 현장을 들여다봤어야 한다. 감리원도 소속감이 없더라도 은퇴 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자처한 거라면 그 소임을 다했어야 했다. 둘의 무지함과 방관이 수많은 수분양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시행사와 건설사의 눈치를 볼게 아니다. 그 건물의 주인은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갈 수분양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말의 도덕적 책임 없이 현장을 마무리했다.


공사가 진행되면, 건설사들의 횡포는 심해진다. 과거는 건축사 무서운 줄도 알았는데 요즘은 동네 개 쳐다보듯 한다. 건설사의 문제인지 부도덕한 건축사들의 문제인지 알지 못하나 둘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다.


건설사는 설계도서 오류라는 이유로, 자재 수급기간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장마와 동절기가 길었다는 이유로 온갖 이유를 핑계 삼아 설계변경을 요구한다. 대부분 사전에 건축주를 설득시켜 놓는다. 더 싸고, 더 좋다는 이유로.


여러분들이 많은 비용을 지불한 건축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현장 소장 공사현장 하나 마무리할 때 건축사들은 그들보다 더 많은 현장을 설계하고 경험한다. 그 경험치는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건축주들은 설득당하고 건축사를 외면한다. 그리고 불신한다.


선택은 마음이지만 그 책임까지 지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현장은 이 모든 집합체로 이뤄져 기괴한 모습의 건축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없어야 할 기둥이 지하주차장 경사로를 간섭했고, 값싼 자재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내부의 천정 높이는 건설사의 입맛에 맞게 스스로 낮췄고, 도면대로 했다고 우겼다. 감리자는 눈뜬 봉사처럼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목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리고 건축물은 사용승인이 완료되었다.


일반인들은 묻는다. 그런 상황이면 사용승인이 처리 안되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규정을 지켰다면 구청에서도 거절할 사유가 불분명하다.


지방 도시 내 하이앤드 아파트에 문과 설비배관의 간섭으로 변기가 설치되지 않아도, 수십억 오피스텔 현관 신발장에 신발이 들어가지 않아도 불법은 아니다. 그래서 사용승인이 허가된다.


건설사와 감리자는 기억해야 한다. 당신들의 빚어낸 현장을. 당신들의 행동을 반성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수분양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당신들은 모두를 속이려고만 했지, 반성은 없었다.



*본 연재글은 현장 경험과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문제 제기 시 녹취와 회의자료를 포함한 관련 자료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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