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도감 ep.19 현장 정리

by Celloglass

학창 시절부터 공사현장에 관심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1학년 공통 수업을 듣고 2학년부터 설계와 공학 분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었다. 전공을 선택할 즈음 친구들은 물었다. 어느 곳으로 지원할 거냐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건설회사로 가게 되면 다시 건축사사무소 취업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건축사사무소로 가면 언젠가 건설회사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설계를 택했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 몇 년간 업무를 수행하며 적응할 때쯤 이직을 결정했다. 그 건축사사무소는 소규모 형태였지만 인테리어 공사를 겸하는 곳이었다. 늘 현장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그곳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경험을 쌓으며 내 능력치를 키워왔다.


현장 관리를 하다 보면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고소 작업도 많지만, 인테리어 공사라는 이유로 안전장구 하나 없이 현장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목공용 톱은 작업 편의상 안전 커버를 씌우지 않았고, 핸드 그라인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장을 돌면서 바닥에 방치된 그라인더는 전선을 뽑아두었고, 바닥이 어지럽혀져 있으면 치웠다.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내 눈에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베테랑 행세를 했다. 자신들의 경력은 서류로 증명되지 않음에도 모두 말뿐인 베테랑이었다. 그들에게 안전장구는 초보 티를 내는 장치처럼 보였다.


그러다 작은 못 하나만 밟아도 파상풍에 걸린다며 주저앉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을 온전히 다 받았다. 그 부당함을 얘기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안전을 말하면 하수 취급을 하면서, 정작 본인 몸에 티끌만큼이라도 다치면 곧바로 드러눕는 모습은 내 눈엔 오히려 더 초짜처럼 보였다.


그 시절 공사현장에 감리를 가면, 새참시간이나 식사 자리에서는 소주와 막걸리가 오가는 게 일상이었다. 나이 어린 감리가 오면 최소한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보란 듯이 원샷을 들이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널브러진 자재들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이 놈의 현장은 감리가 오나 마나 술이나 쳐 잡수시네.”


나이 어린 직원이 감리랍시고 나와 반말을 하니 기분은 나빴겠지만, 그들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술이 금지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원칙과 규정을 무시하면서도 빠른 공사 속도를 이유로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말한다.


미국에 갔을 때 알게 된 사실이다. 미국은 공사현장 감독을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사람 중 선별해 공무원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뉴얼에서 정한 시공 방법과 기한을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 한국처럼 공사 기간을 마음대로 당겨 끝내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대형 건설사들은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저렇게 큰 빌딩을 가장 빠르게 완공했다.”

아마 미국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일 것이다.


늘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현장 정리는 가장 중요하다. 걸려 넘어지기 일쑤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사다리 작업은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1군 건설현장이 아니라면 대부분 무시된다. 안전 커버가 없는 핸드 그라인더가 오작동하면 허공에서 칼춤을 춘다.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상시 상주하는 건설현장의 인력들과 관리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장이고 가족일 텐데, 정작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다.


오늘도 빠르게, 내일도 여전히. 그렇게 한국의 현장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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