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도감이란,
건축과 수리 업무를 총괄하던 사람을 수선도감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현장소장과 감리단장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 둘을 합쳐 ‘도감’이라 칭했고,
그들의 실체 없는 통제를 빗대어
‘그림자 도감’이라 부르기로 했다.
손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너무 피곤하다.
새벽 4시 반.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공항.
오늘은 현장사무실에서 첫 미팅이 있는 날이다.
지난달 체결한 설계계약 이후 처음이다.
기존 설계자와 시행사, 시공사 간 갈등이 길어지며
셋이 합의 끝에 계약을 해지했고,
나와 재계약을 진행했다.
솔직히 말해,
남이 하던 설계를 공사 중간에 이어받는 건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투자운용사에서 함께하자는 요청이 있었고,
마침 나도 한가했다.
현장사무실 도착.
삭막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슨 남자고등학교에 온 기분이다.
단체복 입은 직원들.
조폭인가? 조기축구회 같기도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처음 방문한 현장이라 모든 게 낯설었다.
나도 한 인상하지만
여기 있는 축구부원들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짬은 있어선지
누가 대빵이고 누가 선발인지는 구분이 된다.
시공사 직원들이 먼저 자리를 채우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다음은 투자운용사.
내 건너편엔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감리단장이라 한다.
그냥 고집 센 노인네처럼 보였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고,
명함만 짧게 주고받았다.
자리가 거의 찼을 무렵,
대빵처럼 보이는 곰 한 마리가
촌스럽게 랩핑 된 문을 열고 등장했다.
아— 현장소장이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기에
대학교 레크리에이션 하듯 우측 방향으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왜 맨날 밥 먹는 손 방향으로 도는지 모르겠다.
닭살 돋았다.
다 늙어서 뭐 하는 건지.
설계자 교체 후 첫 미팅이었지만,
사실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공사비 조정.
내용도 파악 안 된 나에게
설계 변경 사항을 줄줄이 읊어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기존 도면이 잘못돼 있다며
무조건 바꿔야 한단다.
건축사가 공사할 수 없는 도면을 그렸단다.
현장도 모르면서 도면을 그렸단다.
우락부락한 축구부원들이
하이에나처럼 나를 둘러쌌다.
혹시… 다구리?
그간 전 건축사사무소 실장과 수차례 미팅을 했지만
잘 못 알아듣더란다.
사실, 계약 해지된 건축사사무소는
내가 전에 다녔던 직장이다.
내부 사정으로 허가 완료까지만 마치고 퇴사했는데,
초안은 내가 직접 계획한 것이다.
그래서 투자운용사가 나에게 부탁한 것이기도 하다.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당시 어렵던 상황에서도 허가까지 마무리했던 걸 기억해 줬다.
무엇보다…
개업할 때 화분도 보냈다.
물론 지금은 사망 직전이지만.
이 축구부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이래라저래라 하지만
큰 틀의 내용은 내가 더 잘 안다.
담당 실장이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용 파악도 없이
무조건 바꾸자고 떼쓰는 건 아니다.
그냥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르겠다.’
그런 심정이었다.
얼른 이 하이에나 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건설사 직원들과 대화할 땐
두서도 없고 자기 얘기만 한다.
“저 건축과장인데요.”
“설비팀장입니다.”
“전기과장이에요.”
“토목담당인데요.”
건축공사는 다양한 축구부원이 필요하다.
이 모든 걸 조율하는 게
건축사의 역량이자 덕목이다.
이렇게 떼로 덤비면
일단 ‘이해했습니다’라는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정답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안 되는 일은 애초에 안 되는 것이고,
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무엇보다
건축주의 이익이 우선이다.
내가 이 일로 돈을 받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도
건축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게 건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