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축구부와 노인네를 제외하고
곰이 나왔던 문 속으로 다 같이 들어갔다.
따로 보자는 것은,
남들이 들으면 곤란한 얘기겠지라 생각한다.
그간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전 건축사사무소에서 자꾸 실수가 있었고
그 사무실 실장이 너무 모르고
대응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설을
나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나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이럴 땐,
늘 선별해서 들어야 한다.
듣고 있다 보면 다 옳은 말 같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동정이 가지만
세상은 사실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내 생각이다.
늘 그랬다.
사람들은 자기 위주로 얘기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허점은 철저히 감춘다.
그런 사람들은 참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늘 뒷담화에 익숙한 사람들.
대화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호응해 주다 보면 옳고 그름은 없다.
그 상대가 예수든 부처든
그날은 제삿날이다.
그렇게 의미 없는 첫 상견례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잘못됐고,
누가 잘못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스스로 감별사가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라도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된다.
그게 건축사다.
이 상황에서
건축사, 즉 설계자가 개입하는 이유는
공사현장에서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설계변경을 통해 시공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공사에 일방적 유리함으로
공사비 절감과 시공성 향상만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건축주에게 유리해야 한다.
공사비 절감은 시공사의 이익이 아니다.
건축주의 사업비 절감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공성 향상으로 이어지더라도
이는 공사비 절감의 부분적 요소일 뿐이다.
이 부분 또한
건축주의 사업비 절감과 매칭되게 하는 것이
설계자의 덕목이라고 본다.
누구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냐.
그건 건축주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대목은 이거다.
그럼 감리자는?
왜 갑자기 공사 도중
설계자가 개입을 시도하는가?
그 의문이 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월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오지랖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이걸 조율하러 간 것이다.
이럴 땐
건축주가 나서서 설계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애초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눴던 설계자가
건축주의 의도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설계자는 건축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게 건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