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신 ep.7 길

by Celloglass

이 공간에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스케치를 이어갔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건축사가 뭐라고, 내가 뭘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 자만에 빠지지 않았나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그냥 이사를 들어가자. 사무실을 옮겨보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한 층의 절반이라면 혼자 지내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 이곳에 몸을 두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며칠 뒤, 미리 전화 약속을 잡고 부동산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는 덜컥 임대차 계약을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다음날, 나는 부동산 2층으로 출근했다. 일단 청소부터 시작했다. 바닥을 쓸고 닦고, 창문을 닦으며 생활할 공간부터 만들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보내온 책상과 작은 회의 테이블 하나를 들였다.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부동산 내외분이 올라와 이미 치워진 모습을 보고 놀라셨다.


공간이란 누구에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내가 들어와 내 공간을 만들고 거주하다 보면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길 것만 같았다.


어둠이 깔리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도시의 낮과 밤은 모습이 다르다. 화려한 무대 위와, 스텝들만 아는 무대 뒤의 모습처럼.


건물 뒤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얼마 걷지 않아 사거리 길에 닿았다. 낡은 현수막. “머시 경축이라는 건지.” 뒤돌아 본 골목에는 불 켜진 곳 하나 없었고, 가로등도 온전치 않아 범죄 영화에 나올 법한 어둠뿐이었다.

마음은 무거웠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이곳의 과거를 뒤졌다.


자료를 찾던 중, 옛 지도를 하나 발견했다. 지금 지도와는 사뭇 달라 보였지만 어딘가 닮아 있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길의 형상이 시장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었고, 지금보다 더 합리적인 거리 체계로 보였다. 현재 지도를 겹쳐보니 건물 사이 길들을 연결하면 비슷할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시장으로 이어진 길보다 훨씬 짧은 동선. 그 길이 해법의 실마리처럼 다가왔다. 구부러진 길들이 사람을 머물게 하고 모이게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건축의 시작은 길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없이, 길은 건물의 방향과 표정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믿음을 증명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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