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약속 장소를 정하고 한 분씩 찾아뵙기로 했다. 기본 계획안과 그간 준비했던 자료들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젊은 분이 나왔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연로하셔서 본인이 직접 나선다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15년 넘게 멈춰 있었으니 세대교체가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계획안 도면과 요약서를 펼쳐 카페에 앉아 20분간 설명을 이어갔다. 듣기만 하던 아들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게 뭔가요.”
“이곳이 길을 따라 사람들이 다시 찾는 거리가 된다면, 죽어 있던 건물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살아난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되묻자 순간 당황했다.
“그럼 건축사님에게 좋은 건 무엇인가요.”
“저에게 좋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이 폐허 같은 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당장 제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용 허가만 해주신다면 언제든 요청하실 때 원상 복구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일정이 있어 대화는 짧게 끝났다. 일주일 안에 부모님과 상의 후 연락 주겠다는 말만 듣고 헤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이익 없는 선을 믿겠는가. 눈 뜨고도 코베이는 세상은 이미 오래고, 눈 감아도 다 빼앗기는 세상이다. 믿음을 상실한 시대에 당연한 반응이다. 그나마 부동산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문전박대를 당했을지 모른다.
나는 하루하루 명확한 답변 없이 건물주들을 만나 설득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에 밟히는 걸 어쩌겠는가.
한 어린 기자의 질문으로 시작된 내 어리석음에 대한 자각. 그게 시작이었다. 내 직업의 바른 길을 찾기도 전에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시작은 해봐야 한다.
저녁에는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공사 계획을 시나리오로 다듬었다. 설계안을 들여다보다가, 밖으로 나가 직접 길 위를 걷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수정했다. 더 나은 안을 위해 계속 덧붙이고 고치고 있었다.
설계란 원래 고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업에 몸담는 이유는, 완성된 무언가가 주는 성취감일 것이다. 매일같이 법규와 도면을 씨름하며 수도 없는 수정을 반복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다.
나 역시 지금, 그렇게 온몸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