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ep.6 자격사항

by Celloglass

건설사는 건설현장이 생기면 현장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파견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현장소장은 법적으로는 현장 대리인이라고 부른다. 건축주를 대신해 현장을 대리한다는 의미다.

착공 신고를 할 때 공사금액을 신고하고, 금액에 적합한 기술등급을 갖춘 현장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공사금액이 100억 이상이면 중급 기술자, 500억 이상~700억 이하면 고급 기술자, 그 이상이면 특급 기술자와 추가 기술자를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자격자는 단순히 현장에 배치되는 의미일 뿐, 현장소장의 보유자격을 뜻하지 않는다. 자격을 갖춘 직원 한 명을 현장대리인으로 지정해 현장을 개설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우리는 기술자 보유 여부만 묻지, 현장 책임자의 자격은 따지지 않는다.

문제는 더 있다. 건설사에서 현장소장 자리에 기술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배치하지 않는다. 필요한 기술사는 본사에 두고 회사 자격사항 유지 수단으로만 활용할 뿐, 실제 현장에는 기술사가 없다. 대부분 건축기사 자격 수준이다. 당신이 1000억짜리 건설공사를 맡겨도, 그 현장을 책임지는 사람의 자격은 건축기사 정도가 일반적이다.

모든 설계자는 건축사와 기술사가 아니면 자격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건설사는 왜 이렇게 문턱이 낮은가. 아마도 건설사의 입김이 세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기술등급을 나타내는 특급, 고급, 중급, 초급은 검정을 거친 자격이 아니라 경력 연수에 따라 주어진다. 물론 집체교육이 이뤄지고 일부 시험을 통해 통과 여부를 확인하긴 하지만, 고난이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건설공사에 가장 큰 자본이 투입되고 가장 실질적인 공정이 일어나는 곳은 현장이다. 그런데 책임자들의 자격은 그 무게에 걸맞지 않다. 단지 경력기간으로만 그 자격을 대변한다. 아마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나 때는”이란 말이 남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늘 문제가 생기면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치고, 책임자를 둔다. 그리고 처벌조항을 만들어 처벌한다. 그 누구도 시스템 자체를 탓하지 않는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제도를 수립하는 사람도, 그 누구도. 그저 책임질 사람만 찾는다.

시공상 부주의로 사고가 나면 현장소장, 감리자, 안전관리자만 찾아낸다. 그리고 본보기처럼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이 사람들처럼 된다”고 말한다. 동종업에 종사한다면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이라 말할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부주의와 기술 부족을 탓하지 않는다.

그만큼 주어지는 자격은 무거워야 한다. 단지 근무일수만으로 지급되는 특급 기술자는 무자격자를 양산하는 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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