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ep.12 법의 경계

by Celloglass

건축물의 화재는 확산 방지, 초기 진압, 피난 탈출로 구성된다. 건축물에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할 장치들은 뭐가 있을까.

방화문, 방화셔터, 피난계단, 대지 안의 피난 통로 등 많은 수단들이 있다. 그래서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피난계단에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가 불법인 것이다. 화재가 나면 유일하게 피난할 수 있는 공간이 피난계단인데, 출입문이 열려 있다면 연기때문에 윗층에서는 피난계단을 이용할 수 없다. 무심코 열어둔 방화문으로 당신은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생명과 밀접하다. 이런 중요한 시설 외에도 비상용 승강기, 고층 건물인 경우는 피난용 승강기,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 유도등, 경보기 등 많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 눈에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비상시에는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각 부처나 행정 부서들이 자신들의 관련 법에 따라 허가 시 도서를 검토한다는 점이다. 사용 승인 때 점검도 마찬가지다. 위 나열된 시설들 중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 유도등, 경보기를 제외하면 모두 건축법에 해당된다. 화재 시 소방관들이 진입하는 비상용 승강기조차 건축법의 범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허가를 진행해도 소방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한다. 점검 또한 마찬가지다.
(※ 비상용 승강기는 이삿짐을 나르는 용도가 아닌, 화재 시 소방관들이 진입하기 위한 소방용 승강기입니다.)

설치 기준과 관리에 대한 사항은 부처 간 협의로 이뤄지겠지만, 현장에서는 타 부서의 일이 되어버린다.

10년 전 업무시설 리모델링을 진행할 때다. 1층 로비가 답답해 보인다는 이유로, 비상용 승강기 출입문과 특별피난계단 방화문을 방화유리문으로 교체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방화유리문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험 성적서나 인증서를 확인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관할 소방서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의를 했다.

소방관께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문제는 없는데, 굳이 하셔야겠습니까.”

그 말 한마디에 건축주를 설득해서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비상용 승강장의 출입문은 방화문으로 하는 게 맞다. 우리가 건축물에 갇혀 있을 때 목숨 걸고 들어오는 소방관들의 진입 통로다. 우리도 구조가 된다면 그곳을 통해 나와야 한다. 시험 성적서와 인증서가 기준에 적합하더라도 만의 하나의 불상사는 늘 존재한다. 그래서 적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시설들임에도 건축법에 속해 있는 까닭에 소방서는 관여하지 못한다. 권고만 할 뿐이다.

모든 법이 완벽할 수는 없다. 기존의 법을 모두 바꾸기도 힘들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가치들이 존재한다. 힘들더라도 법을 만들겠다면 어디에 우선을 둬야 할지는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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