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

by Celloglass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화재가 났다.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물은 지하 1층 노래방, 지상 1층 고깃집, 지상 2층 호프집, 지상 3층 당구장이었다.


그날 인근 학교 축제를 마친 중·고등학생들로 호프집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날이다.


내부 수리 공사 중이던 지하 1층 노래방에서 신나와 석유를 가지고 불장난한 게 시발점이었다. 가연성 내장재와 페인트 등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화염은 유독가스와 함께 내부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이동했다. 이럴 경우 계단은 거대한 굴뚝이 되어버린다. 아파트의 피난계단실 방화문을 어둡다는 이유로 열어두는 게 그래서 큰 화를 부른다.


화재 신고 접수 후 30분 만에 완전 진압을 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2층 호프집에 진입했을 때의 모습은 참혹했다고 전해진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어 있었다.


개폐가 가능했던 창문은 답답하다는 이유로 통유리로 바꾸었고, 그마저도 간판을 달겠다는 이유로 합판으로 막아버렸다. 비상구 유도등은 정전 시 유일하게 탈출구를 찾을 수 있는 장치였지만, 어이없게도 화장실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피난하려던 학생들에게 술값을 계산하라며 술집 매니저가 문을 막아버리면서 피해는 더 커졌다. 상황이 커지자 자신만 아는 비상문을 통해 달아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57명 사망, 86명의 부상자.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 사망하였으나, 비행청소년이라는 낙인으로 사회적 관심조차 받기 어려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다중업소를 설치하고자 할 경우 특별히 이 법의 저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의 피난계단실 방화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최소한 우리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은 방화문을 열어두지 않는 것이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 사용은 어렵다. 그 자체가 굴뚝 역할을 하게 되므로 무조건 피난계단으로 탈출해야 한다. 만약 화재가 난 층에서 방화문을 열어놓고 가버린다면, 위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시간의 흐름으로 잊혔다. 그리고 여전히 피난계단실의 방화문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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