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영역

by Celloglass

내 분야에서 건축 행위는 건축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문구로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건축은 개인이 짓는 것이고, 개인이 책임지는 게 맞다. 그런데 허가를 받는 과정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공공의 의무’들이 있다.


대지면적이 200제곱미터 이상이면 대지 안에 조경을 설치해야 한다. 연면적이 5,000제곱미터가 넘으면 공개공지를 설치해야 한다. 미술장식품 설치도 있고, 경관조명 설치를 이유로 별도의 심의를 받기도 한다.


대형 건축물을 짓는다는 이유로 교통영향평가를 해야 하고, 서울시는 8미터 이상 굴착하면 굴토심의를 요구한다. 지하 굴토가 있으면 지하안전영향평가도 받아야 된다. 경관지구나 간선도로변에 건축물을 짓자면 경관심의도 받는다. 일정 용도와 규모에 해당되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용도와 규모에 따라 공중화장실을 개인이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혜택을 준다지만 공유차량 설치를 심의기준이나 허가조건으로 사실상 강제하기도 한다.


여기까진 그래도 ‘법에 적힌 의무’라는 형식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법에서 금지하지 않는 발코니 설치나 특정 용도 건축을 지자체에서 허용하지 않는다. 법에서 허용하는 기계식 주차장 설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거나, 비율을 정해 제한적 설치를 강요한다. 그런데 수요조사나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순간이다.


과거 OO시 OO구에서 공유오피스 시설을 설계하려고 심의를 접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접수 자체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용승인 이후에 오피스텔로 변경해서 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당기간 거절당했다. 오히려 차라리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라는 강요를 받았다. 부서 내에서 담당자가 그렇게 밀어붙였지만, 어느 누구도 제재하지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근거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순간이 있었다.


억지 해석과 강요가 공공의 이름으로 작동하는데도 제재는 없었다. 공공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어느 순간 자기 권한으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늘 나는 묻는다.


법은 왜 존재하는가.


국민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가, 국민을 탄압하고 처벌하기 위한 것인가.


특정 규모와 용도로 건축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성격을 띠는 시설을 개인에게 100% 책임 전가하는 게 맞는 방식인지도 묻고 싶다. 개발부담금처럼 일부 부담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 경관을 이유로 공공성을 담보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옳은 방식인지는 따져 묻고 싶다.


과연 지속가능한 방식일까.


오히려 개인의 일부 부담금을 가지고 공공이 설치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사항이 아닌지, 나는 계속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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