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주 감리에 대해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감리 제도에서 “상주”는 현장에 머무는 감리를 전제로 하고, “비상주”는 머물지 않는 감리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머물지 않도록 설계된 제도에 “머문 것과 같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데 있다.
내가 과거에 썼던 문제의식은 단순했다. 비상주 감리를 없애고 상주감리로 통일하자는 것. 그리고 감리의 품질과 책임이 개인의 윤리와 성실성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공공이 관리하는 감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시장에 맡겨 둔 채 “책임”만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조용히 굴러가다가 사고가 나는 순간 한 사람에게 모든 화살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법에서 정한 비상주 감리의 업무 범위는 명확하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라면 5개 층마다, 철골 구조라면 3개 층마다 검측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대로만 움직이면, 통상적인 비상주 감리의 현장 방문은 기초에서 한 번, 중간 구조 진행 중 한두 번, 그리고 지붕층까지 포함해도 총 2~3회 수준으로 수렴한다. 그 자체가 “상주”를 전제로 한 감리 감독의 밀도와는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제도는 낮은 방문 빈도를 예정하고 있고, 계약과 비용 구조도 그 빈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법적 문제가 생기면 상황은 뒤집힌다. 조사기관은 감리자를 소환한다. 현장을 상시로 관리했는지, 위험을 발견했는지, 감독을 했는지, 왜 막지 못했는지 묻는다. 질문의 형식은 단순하지만, 그 질문이 전제하는 감리의 모습은 상주감리에 가깝다. 비상주 감리라는 이름으로 설계된 제도, 법으로 정해 놓은 방문 간격, 그에 맞춘 계약 비용과 시간 구조는 그 순간 배경으로 밀려난다.
남는 건 “감리”라는 단어 하나와, 책임을 질 사람 한 명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제도의 부당함이 ‘제도’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고가 나면 제도는 책임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수렴시킨다. 가장 먼저 특정되는 사람은, 현장에 있었던 적이 있고, 서류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법적으로 ‘감리’라는 역할을 수행한 자다. 그들이 이 구조를 몰라서라기보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감리·감독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자”를 찾는 행정의 방식은, 제도의 한계를 설명하는 문장보다 개인의 이름을 적는 문장을 더 빠르게 만들어 낸다.
결국 이 문제는 반복된다. 비상주 감리는 제도적으로 낮은 개입을 전제로 운영되고, 사고 이후에는 높은 개입을 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재단된다. 이 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감리는 품질 관리의 장치가 아니라 책임 전가의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늘 문제제기를 했다.
“법과 제도는 늘 책임질 누군가를 규정하기에 바쁘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름만 바뀐 책임자만 계속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