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해체공사 감리 ep.7 해체계획서

소규모

by Celloglass

해체공사 심의와 허가 제도가 도입되고, 해체감리자가 본격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는 발 빠르게 해체계획서 작성 업무를 사실상 독점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이 특정 주체에 독점되기 시작하면, 언제나 부작용이 뒤따른다. 1년에 한 번 하기도 어려운 해체공사 감리를 위해 해체계획서를 직접 작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초기 선점자에게 자연스럽게 일감이 몰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국토안전교육원은 해체계획서 작성 및 검토 기준을 수차례에 걸쳐 배포했고, 서울특별시 역시 별도의 작성 기준을 마련했다. 상호 간 서로의 규정을 차용하기도 하며 보완해 나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 규정의 방향이다. 우리 제도는 중간이 없다. 좋다고 판단한 기준을 소규모·중규모·대규모 구분 없이 모두에게 일괄 적용한다. 제대로 된 ‘큰 기준’ 하나를 만들어 놓고, 각자의 사업 규모에 맞게 선택하라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실무자에게 혼란을 준다. 복잡한 규정 속에서 오히려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규모 건축물은 오히려 해체 업무 수행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부지 여유가 있고, 인접 건물이나 도로와 명확히 구획되어 있어 안전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반면 도심지 내 소규모 건축물은 다르다.


협소한 대지, 복잡한 작업 동선, 인접 건물과의 거리 문제로 인해 공사 자체가 훨씬 위험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규모의 크기만으로 규정과 기준을 정리하다 보니,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소규모 건축물은 오히려 제도적으로 등한시되기 쉽다.


일부 건축사사무실의 해체계획서 작성 독점은 결국 ‘기본 틀에 내용만 바꿔 넣는 작업’으로 작성되고 있다. 여러 현장을 해체감리 하다 보면 유독 자주 보이는 건축사 이름이 있다. 하지만 처음 접했던 해체계획서와 최근의 계획서를 비교해 보면, 내용은 오히려 퇴보한 느낌을 받는다. 해체공사자의 편의에 맞게 세부 디테일이 삭제되고, 불리한 내용은 감춰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외부 비계 설치 시 하부 고정 방법이 누락된다.
벽 이음부 중 개구부로 인해 고정이 불가능한 구간의 대체 고정 방법은 표시되지 않는다.
잭서포트 설치 시 슬래브 천공 방지와 하중 전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바닥판 표기는 빠져 있다.
상부 고무판을 설치해 미끄럼을 방지해야 함에도, 이런 디테일은 대부분 계획서에서 사라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해체계획서는 해체 순서가 구조역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건축사든 구조기술사든, 실제 현장을 직접 확인하거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가장 심각한 점은 이러한 해체계획서가 해체 심의와 해체 허가를 모두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그 책임은 결국 해체감리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아닌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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