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야옹야옹
아침 9시.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이쯤 되면, 내 일정을 매일 확인하는 듯하다.
곰, 이 사람.
확실히 집요한 성격이다.
급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점점 선을 넘고 있다.
나는 건축주와 계약된 관계지
본인들의 하청업체는 아니지 않은가?
가끔 공무과장과 언쟁이 높아지면,
투자운용사 과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중재하기 위해서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면 결국 건축주가 손해가 된다.
하지만, 투자운용사도 알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까다롭게 대응하는지.
현장이 크든 작든,
진행 과정은 비슷하다.
토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시작하면,
건축주는 이미 마음속으로 건물을 다 지었다.
분양도 다 끝났고, 수익까지 계산이 끝났다.
그래서 인허가 과정에서 제동이 걸리면,
공사비 이슈라도 생기면,
건축주는 예민해진다.
불안해서다.
자신의 꿈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다가, 착공에 이른다.
그러면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다.
더디기 그지없는 현장.
공사기간은 이미 알고 있지만,
장마가 길다느니,
올해는 무더위가 심하다느니,
뉴스 한 줄에 조급해진다.
건축주는 이제 사무실보다 현장을 더 찾는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건축주가 현장에 나타나면,
현장소장이 접근한다.
“공사 잘 되고 있습니다.”
“도면이 현장과 안 맞아서 저희가 조정하며 맞춰가고 있습니다.”
“도면은 도면일 뿐이고, 그 사람들은 현장을 몰라요.”
오~~ 그럴듯하다.
건축주는 안심한다.
현장소장이 늘 곁에서 설명해 주니,
이제 이 사람이 가장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건축주는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에 안심하게 된다.
건축주는 이제 현장 관계자들이 너무 가족처럼 편하다.
일주일에도 여러 번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슬그머니 자신들의 민원을 얘기한다.
“설계 변경”
“자재 변경”
“공법 변경”이 따라온다.
“요새는 다들 이렇게 합니다.”
“이게 더 싸고, 공사기간도 훨씬 단축됩니다.”
“도면만 그리는 사람들이 뭘 알아요?”
건축주는 결국,
‘이 사람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설계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
“내 돈만 탐내는 사람”으로 변질된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계약 직후, 투자운용사 본사에서 들은 이야기.
현장소장의 농간이 있었다.
공사비를 명분 삼아 설계를 바꿨고,
패키지로 다른 변경 사항들도 슬쩍 추가했다.
나는 그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속으로 판단이 끝났다.
이건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