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사기전세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5년,
수만 세대가 집을 잃고도 책임질 사람은 여전히 없다.
그동안 수많은 피해자가 울고 웃었지만,
해결은 지지부진하고,
누군가는 지금도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빌라왕, 깡통전세.
우리 사회는 이런 이름 하나로 모든 상황을 함축해 버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치밀하고 오래 준비된 사기의 설계도가 존재한다.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전세보증보험 제도가 있다.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보증보험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대신 지급한다.
임차인은 그 돈으로 빠져나오고,
보증보험공사는 임대인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시작한다.
문제는, 임대인이 파산 신청해 버린다면,
보증보험이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공매.
대상 물건을 공매에 부쳐 채권을 회수하는 방법뿐이다.
그 순간 회수율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국민 세금으로 메운다.
왕족들이 이 또한 계획한 범죄라면?
계약 전부터 명의만 빌려주는 ‘허수아비 임대인’을 세워두고,
보증사고가 나면 곧바로 파산 절차로 빠져나간다면.
계획된 시나리오 속에서 피해자는 탈출하고, 국가는 세금으로 구멍을 메운다.
이보다 완벽한 범죄 설계가 있을까.
실제 보증사고 건수에 비해,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마저도 허수아비들 중 일부만 보여주기식으로 처벌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 같다.
정작 사기의 설계자들은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간다.
법원과 은행을 뛰어다니면서도,
늘 같은 질문을 했다.
“임대인은 도대체 무슨 책임을 지는가?”
돈이 없어서 못 돌려준다면,
법은 그걸 어떻게 사기로 입증할 수 있는가?
수백, 수천 세대 보증사고를 낸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
몇 세대 보증사고를 낸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을까?
결국 많은 임대인들이 피의자 신분조차 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증보험공사가 임차인에게 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몇 달간의 악몽 속에서
겨우 도망치듯 떠났을 것이다.
더 이상 법적으로 엮이길 원치 않는다.
보증보험공사는 수많은 임대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조차 벅차게 된다.
보증보험공사는
“법적 절차에 맞춰 채권회수를 진행하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추심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몇 년이 흘러 공매 절차로 절반만 환수하고, 나머지는 세금이 메운다.
나 또한 피해자이자 국민으로서,
이렇게 국민의 혈세가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현실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기록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는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사기를,
그리고 그 사기를 가능하게 만든 허술한 제도를.
그리고 이 기록이,
다음 피해를 막는 최소한의 방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