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도감 ep.1

감리란 무엇인가?

by Celloglass
백일도감(白日都監)
'햇빛 아래의 도감'
'숨지 않고 공개적 책임을 지는 감리자'


그림자 도감 연재 이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설계자로서 바라봤던 수많은 현장들.

설계자가 아닌 감리자로서의 얘기도 하고 싶었다.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던

감리로서 느끼고 보았던 내용들을 글로 옮긴다.


감리라는 직업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장을 점검하는 사람 정도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법이 부여한 권한을 들여다보면, 감리는 건설 현장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언론에서 감리가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권한이 있음에도 실제로는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다.


감리의 주된 임무는 설계도서대로 시공이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법은 위법한 공사가 발견되고, 시정명령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감리가 공사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계약 구조상 ‘을’의 위치에 놓여 있는 사업자다.


건축주가 계약을 맺고 감리비를 지급한다. 이 때문에 권한을 행사하는 순간, 경제적 불이익이나 계약 해지가 따라왔다.


예전에는 감리비 미지급이 흔했다. 까다롭게 감리를 하면 잔금을 주지 않는 식이었다. 지금은 사용승인 신청 시 감리비 완납 증빙이 의무화되었지만,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아 여전히 모르는 이들이 많다.


결국 법으로 강제해야 할 만큼 우리 건설업의 관행은 공정하지 않았다.


권한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결국 갑과 을 구조 때문이다. 감리가 건축주에게 고용된 상태에서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진짜 감리가 사회가 기대하는 감리로 기능하려면, 건축주와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안되는 제도가 공공감리제다.


건축주가 아니라 허가권자가 무작위·비공개 방식으로 감리자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공공이 감리자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업무 수행 평가와 교육도 함께 관리한다면, 감리는 비로소 공공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산업재해와 부실시공도 줄어들 것이다.


감리란 무엇인가.
대중이 잘 모르는 권한을 가진, 그러나 현실은 제약받는 존재.


지금 필요한 것은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