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이 모든 계획의 시작과 끝은 사회 공헌에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지역으로 들어가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 자체가 스스로 소생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 낡고 오래됨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면 거부감이 생긴다. 그 거부감은 이방인을 향하고, 결국 실패로 이어진다.
영향력 있는 외식사업가가 지역 활성화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시스템부터 외관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동참을 거부하는 이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참여의 발길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 열광은 “새로움은 늘 좋은 것”이라는 주입 효과였다. 그의 유명세와 권위가 하늘을 찌르자 말 한마디가 곧 진리요, 법이 되었다.
위신.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높아질수록 그 사람의 말은 진리로 변질된다.
그는 변화의 절반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웠고, 원주민들의 삶을 부정했다. 쇠퇴는 그들의 무능 때문이라는 판단이었다. 새로운 절반이 나머지를 이끌어 새로워지길 바랐지만, 결과는 자멸이었다.
도시재생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억지로 잡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게 돕는 것이다. 지역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배려도 부족했다. 잘못된 이해로 출발했기에 기업 유치만 강조했다.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젊은 사람이 모이면 활력이 넘친다는 단순한 공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지역 재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조선업 전성기에도 거제는 서울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조선업 불황이 닥치자 지역은 산업과 함께 몰락했다.
외부 자본과 기업 유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이 스스로 서지 못한다면 호황의 빛은 짧고 불황의 그림자는 길다.
이 센터는 억지로 변화를 강요하는 곳이 아니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반과 분위기를 만드는 곳이다. 향기는 원주민들의 몫이다. 그들의 향이 짙어질수록 옛 향수가 살아나고, 사람들은 그리움을 따라 다시 모여든다.
센터는 단지 불을 밝히는 역할만 한다. 그 길을 걷는 이는 원주민이어야 한다. “밥상 다 차려놨으니 먹기만 해라”는 방식의 재생은 진짜 재생도, 소생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말했듯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식일 뿐이다.
지역은 무지해서 몰락한 것이 아니다. 인구가 줄면서 활력을 잃었고, 노인이 남으니 힘이 약해졌을 뿐이다. 그 노인들에게 젊음을 되찾게 한다며 매스를 들이댄다고 해서 회춘이 가능한 것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 기업은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 지자체도 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업가는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메뉴 하나 개발하는 데 수억이 드는데, 지역축제에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십 가지를 동시에 테스트할 수 있다.” 그 말속에서 지역은 단지 실험장이었고, 본인은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지역 활성화, 도시 재생.
이해와 고민이 없는 이에게 맡겨서는 시기만 늦출 뿐 성과는 없다. 당장은 더디더라도, 원주민이 주체가 되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재생은 되살리는 것이다.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