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변경
보통 인허가 단계를 마치면 건축주는 건설사를 찾아 나선다. 몇 달 전부터 미팅을 해왔지만, 마지막으로 조건을 확인하고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공사비가 확정되고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면 이제 착공만 기다리게 된다. 철거공사가 끝나면 건설사는 땅을 파고, 가설 펜스를 친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드디어 시작된다는 설렘과 기쁨이 밀려온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던 현장은 매일 방문으로 바뀌고, 다른 미팅도 현장 근처에서 보길 원한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대운이 들어 건물을 짓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장에 올 때마다 건축주는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마음은 이미 회장님이 된 듯하고, 그들은 늘 안심시킨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이런 거 전문입니다. 걱정 마세요.”
입발림이 이어질수록 건축주는 더욱 신뢰하게 된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감사의 기도마저 올리게 된다.
하지만 터파기가 마무리될 무렵, 건설사는 슬며시 이야기를 꺼낸다.
“원래 설계만 하는 애들은 현장을 몰라요.”
“땅이 제각각인데 도면이 어떻게 딱 맞아요. 그런 현장, 제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마디가 건설사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건축사는 뭣도 모른다.”
그 순간 건축사는 무능한 인간이 되고, 건설사와 건축주의 관계는 더 끈끈해진다.
가설 기둥이 하나둘 서갈 즈음, 설계 변경이 하나씩 터져 나온다. 건축사의 도면은 현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건축주의 “자네가 다 알아서 해~.”
그 한마디로 건축사는 다시 한번 무너진다.
설계변경은 이제 쉬워졌다. 건축사가 무슨 말을 해도 이미 신뢰는 없다.
그러다 보면 당초 합의와는 전혀 다른 변경들이 숨어 들어온다. 이유를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다.
“건축주랑 다 얘기됐습니다.”
그냥 말뿐이다. 문서는 없다.
이 상황에서 건축주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건축사도 손을 놓아버린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설득과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많은 변경 끝에 공법도, 자재도 달라지고 만다. 그리고 결국, 설계한 나조차 낯설 만큼 변해버린 모습으로 사용승인을 맞이한다.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