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도감 ep.9

콘크리트 이야기

by Celloglass

설계 일정은 허가 완료 시점을 기준으로 역산한다. 허가 완료 시점은 늘 공사기간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짧고 경제적인 공사기간을 원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은 날씨다. 장마철과 혹한기가 대표적인 피해야 할 시기다. 건축주는 늘 장마가 끝남과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거나, 장마 전에 지붕을 올리길 바란다.


그래서 설계 일정은 대부분 그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항상 여유가 없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실제 공사기간이 중요하지, 설계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사기간을 결정짓는 콘크리트 공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다 보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장마철에는 방수포를 덮어 빗물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게 해야 하고, 혹한기에는 타설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보온 장치를 이용해 양생을 도와야 한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공정이다.


철근 배근이 완료되면 감리가 직접 검측을 한다. 이상 없이 통과되면 현장 소장은 레미콘과 펌프카를 발주한다. 당장이라도 타설 하고 싶겠지만, 레미콘 공급 시간이나 근로 시간 제약으로 인해 당일 타설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타설이 끝나면 콘크리트는 양생이라는 굳히기 과정을 거친다. 소규모 공사현장은 일주일도 안 되어 다음 공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표준시방서에 따르면 소규모는 7~14일, 중·대규모는 14~28일 정도의 양생을 권장한다. 현장은 늘 시간에 쫓기니 최소한만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 전 감리 중이던 다세대주택 현장에서 일주일 만에 다음 층 슬래브 검측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자신들은 일주일을 지켰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주에 비가 사흘이나 왔다. 추가로 일주일 더 양생을 시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기에, 나는 3일 뒤 검측을 다시 하자고 하고 타설을 연기시켰다.


감리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환경과 현장 여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특히 일 평균 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면 양생 기간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 영하에서는 타설을 해서는 안 된다.


물이 0℃ 이하에서 얼어붙으면 수화작용(시멘트와 물의 화학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 이는 곧 콘크리트의 균열로 이어진다.


감리란 이런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감리 세부 규칙에는 이에 대한 규정이 없고, 법적으로도 배근 검측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정확한 매뉴얼이 없는 탓이다.


결국 감리자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도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현실이다.


감리의 역량이 천차만별이라면, 상황별 매뉴얼을 통해 최소한의 기준을 맞추고, 평준화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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